강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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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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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스 2군이네."
"아닌데 미쓰에이랑 조금 더 비슷해."
"5인조니까 구성 자체는 현아 있던 시절 원더걸스 같은데"
JYP의 신인 걸그룹, ITZY(있지)가 데뷔했습니다. 팬들은 처음 보는 얼굴에서 익숙한 얼굴을 찾아내려고 안달이 난 상태고요. 데뷔와 동시에 역사성을 갖는 것, 무대에 처음 오르는 것도 떨려 죽겠는데 기라성같은 선배들과 비교까지 당해야 하는 것. 그것이 대형 기획사 신인들의 숙명이자 한계겠죠.
천하의 JYP가 이 사실을 모를리 없습니다. ‘있지’의 정체성을 아예 JYP의 4세대 걸그룹으로 잡아 두었더군요. 원더걸스, 미쓰에이, 트와이스의 계보를 따르는 아티스트라는 겁니다. 대중들이 걸그룹에게 기대하는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의 ‘있지’라고 하네요. 일반 기업으로 따지면 엑셀도 잘하고 커피도 잘 타는, 부장님이 바라는 모든 업무 능력을 갖춘 신입인 셈인데요. 정말이지 포부가 넘치는 자기소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신곡 <달라 달라>는 그런 기대들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곡일까요.
일단, 신선함이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한류 음악사에 유례없던 혁신적인 사운드를 선보이는 뭐 그런 곡은 아니에요. 전혀 다른 느낌의 멜로디를 거칠게 병치해 극적인 효과를 키우는 작법이야 소속사의 조상님이신 박지윤의 1997년작 <하늘색 꿈>에서 이미 보았던 것이고, 같은 멜로디를 여러번 변주해 곡의 감정선을 점층시키는 진행은 이미 살리에리가 17세기에 <라 폴리아>를 쓰면서 써먹은 장치니까요.
그런데 이 익숙함이 아주 잘 먹힙니다. ‘외모만 보고 날라리같다는 다른 사람들 시선엔 신경 안 써’라면서 남의 시선에 아주 정성스레 신경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도입과, ‘난 지금의 내가 좋다’면서도 자존감 높은 사람들이 안할 말을 하는 후렴구는 마치 완전히 다른 두 개의 곡을 무심하게 툭 가져다 붙인 것처럼 다른 색조로 서로의 인상을 더 강하게 만듭니다.
같은 멜로디를 힙합으로도 풀었다가, 트랩 랩도 넣었다가 하며 변주하는 방식 역시 단순히 곡의 지루함을 없애는 차원을 넘어 각 절에 새로운 맥락을 부여하고 있어요. 17세기에 살리에리가 목표했고, 1997년 외환위기 때 가수 박지윤 씨가 여린 목소리로 전달하려했던 정서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서로 충돌하는 멜로디라인이 ‘한 곡’으로 조화를 이루는 곡의 특성과, 서로의 개성을 존중할 것을 요구하는 가사의 내용이 아주 잘 맞아떨어집니다. 붙여두면 어색할 것 같은 두 개의 verse(절) - '남들과 달라도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아름답다'는 가사의 내용이 각자의 매력을 채워가며 강한 설득력을 자아내고 있어요.
저는 특히, 자기 긍정을 노래하면서 다른 사람을 비하하지 않는 비폭력성도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는 좀 못났어도 아름답다’면서 ‘그런데 니 패션은 못 참아주겠다’는 식의 이율배반적인 가사에 좀 질려가던 차였거든요.
물론 선배들의 흔적이 많이 보이기는 합니다. 프로듀서가 같으니 당연하겠죠. 하지만 동어반복으로 느껴지진 않아요. 현역 선배이자 현 대세인 트와이스와 주로 비교되는 모양새인데, 팬들의 반응 역시 ‘트와이스랑 다를 게 뭐냐’보다는 ‘트와이스에게서 보았던 매력이 이들에게도 보인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곡 제목처럼 정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만, 출발이 좋은 건 분명해 보이는군요.
▲ JYP 신인 걸그룹 itzy(있지) ⓒitzy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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