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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민_이야기(26)] 미국에 건너온 한국 청년들

칼럼니스트 봉달 승인 2019.04.07 14:12 의견 0

기자 노릇하며 어영부영 살다보니 아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고 음주가무 또한 자주하게 됐다. 사무실에 또래인 77년생들이 많아 회사 끝나면 같이 쏘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만 해도 무비자 제도 전이라 별 기술도 없는 한국 젊은이들이 관광비자나 학생비자만 받고 미국으로 많이들 건너왔다. 호프집 서빙 알바만 뛰어도 월 3천 달러 이상 가져가던 좋은 시절이었다.

신분에 신경 쓰는 인간들은 나처럼 구멍가게 한인업체에서 취업 스폰서를 받았는데 세금 떼고 뭐 떼고 하다보면 손에 쥐는 돈은 별로 없었다.

친구는 사랑 찾아 떠났고 나는 한인 용자 아재 지하실에서 나와 회사에서 조금 더 먼 곳에 단칸방 스튜디오를 얻었다. 그 전에는 가끔 시카고에 있는 한인 순교자성당에 나갔는데 집을 옮긴 이후로는 넘 멀어서 가기가 힘들었다.

순교자성당은 주로 유학 온 대학생들이 많았고 또래는 별로 없어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듣기로 새로 이사 간 아파트 근처 정하상성당은 내 또래 청년들이 매주 흥청망청 지화자 엉망진창이라고 하길래 솔깃해서 찾아갔다.

가보니 듣던 대로 또래가 많고 유학생보다는 나처럼 x알 두 쪽만 차고 미국 건너와 빌빌거리고 사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참 좋았다.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같이 놀면서 외지에서의 외로움도 달래고 하니 인생 참 살만했다.

당시 성당 청년회장이었던 B는 나보다 한 살이 어렸는데 미국에는 1년인가 먼저 왔고 학생비자를 유지하며 웨이터 알바 뛰다가 뷰티서플라이에 취직했다. 업무로 여기저기 출장 세일즈를 하며 돈도 꽤 많이 버는 능력자였다. 이 인간은 내가 이사간 아파트 옆동에 살았는데 그의 집에서 매일 같이 벌어지는 술파티에 나도 꼽사리를 껴서 재미있게 놀았다.

주말 청년부 미사가 있어 가보면 소년 청년 장년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다. 요새는 한국에서 젊은 사람들이 잘 못오니 청년부도 쪼그라들었지만 그때만 해도 복작복작 이놈저년이 지지고 볶고 왁자지껄했었다.

나는 어릴 적 세례를 받은 천주교인이지만 영성은 별로 없다. 한국서도 그랬지만 미국에 와서도 성당에는 술이나 먹으러 갔다. 홀리홀리한 청년들이 보기에 뭐 저런 놈이 있나 싶었겠지만 신앙의 형태는 여러가지가 아니겠는가.

정하상성당 청년부 부회장은 나와 동갑인 여자 C였다. C는 S라는, 이국주 저리가라 할 뚱땡이와 같이 다녔다. S는 너무 꾸미는 게 문제였다. 여자가 자기를 꾸미는 거야 당연하지만 얘는 그게 아니라 뭐든 꾸며내기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시 유행하던 싸이홈피에 한국의 유명 연예인을 남친으로 소개해놓고 깨가 쏟아지는 댓글을 좍 달아놓지만 현실에선 아무도 실제로 그 남친을 보지 못하는 식이다.

S의 개구라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본인이 시카고대 의대생이고 한국의 유명한 연예인들 태반은 자기와 친하며 돈도 쓰고 넘치게끔 많고 뭐 어쩌고저쩌고 그랬다. 뭔 놈의 의대생이 성당에서 봉사한답시고 하루종일 색종이나 오리고 있는지 딱 봐도 구라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의외로 청년회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글쓴이: 봉달(필명)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한국에서 상사 근무 후 도미, 시카고에서 신문기자 생활. 물류업체 취업 후 관세사 자격증 따고 현재 캐터필러 기차사업부 Progress Rail의 통관부서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