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운항이 시작된 2013년 3월 15일부터 침몰한 2014년 4월 16일까지 139회를 운항했다. 역산하면 청해진해운이 취득한 초과운임은 ‘29억 6,000만원’으로 추정된다. ⓒ 영화 <그날 바다> 스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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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법은 기업에게 안전을 지킬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청해진해운처럼 이를 지키지 않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기업이 안전 의무를 위반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이 크기 때문입니다. 현행법에서는 안전 의무를 위반한 기업들이 적발 돼 처벌을 받더라도 그 정도가 강하지 않습니다. 기업들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입니다.
◆기업은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다
지난 회에서도 언급했듯 청해진해운이 세월호에 화물을 과적해서 얻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익은 29억 6,000만 원입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에 대해 재판을 받아 나온 형량은 벌금 1,000만원입니다.
이마저도 세월호 침몰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명목이 아니라 해양환경관리법 제130존, 제127조 제1호, 제22조 제1항(과실선박기름배출)위반으로 선고받은 것인데요. 세월호가 바다에 빠지면서 유출된 기름에 대해 양벌규정을 적용한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양벌규정입니다. 양벌규정은 위법행위에 대해 행위자 외에 업무 주체인 법인이나 개인도 함께 처벌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산업안전보건법이나 기타 법률에서 양벌규정을 정한 경우에만 법인 처벌이 가능합니다. 이 경우 법인의 대표자나 종업원의 위반행위에 대해 법인이 감독하는 것에 있어서 과실이 있어야 한다는 요건이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기업에 소속된 개인이 범죄를 저지른 뒤에 기업에게는 “왜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어”라고 책임을 묻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처럼 기업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안전을 위반하는 시스템과 관행을 만들어서 재해가 발생했더라도 기업에 대해서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재해 사고에 관해 형사책임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또한 양벌규정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처벌은 벌금형만 가능하고 액수도 낮은 수준입니다.
◆‘이례적’인 책임경영자 처벌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이사는 세월호 침몰 재판으로 징역 7년과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기업이 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재해에 대해 기업의 대표가 형사책임을 진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이례적이라니 참 이상하지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업은 이윤 추구를 위해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가 많지만, 결정을 내린 기업의 책임경영자가 처벌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는 이야기입니다.
김한식 대표이사에게 선고된 형량은 세월호 참사와 직접 관련되지 않은 횡령·배임이 포함돼 선고받은 형량입니다. 횡령과 배임을 제외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업무상과실선박매몰죄, 선박안전법 위반만 적용됐더라면 형량은 더 낮아졌을 것입니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책임자에게 주어진 형벌로는 너무 가벼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현행법 규정, 기업 처벌에 한계 있어
세월호가 결국 침몰한 것은 청해진해운의 기업 경영 방침 자체가 ‘안전 의무를 위반하더라도 화물을 많이 실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재해를 일으킨 기업 및 경영책임자 처벌이 어렵다는 점이 현행법 규정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재해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자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나 업무상과실치사사상죄로 처벌되는데요. 현장소장이나 현장근로자가 처벌될 뿐, 안전관리에 최종 책임이 있는 경영책임자에게까지 형사책임을 물은 경우가 아주 드뭅니다.
처벌이 이뤄지더라도 몇 천만 원 수준의 벌금형에 처해지는 것이 보통이고 해당 기업에 대해서도 양벌규정에 의해 수백에서 수천만 원 정도의 벌금형이 부과되는 것이 전부입니다. 몇 천만 원이 적은 돈이냐 할 수 있겠지만 앞서 본 것처럼 안전의무 위반으로 29억이 넘는 돈을 벌어들인 청해진해운에게 1,000만원이 과연 큰 돈 일까요
더욱이 문제는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즉 대기업일수록 업무가 복잡하고 분업화 돼 있기 때문에 책임경영자의 과실을 따지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업 내부의 업무지휘 및 감독이 이뤄지는 구조가 세분화 될수록 법인 자체가 감독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도 어려워집니다.
다른 사건들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건에서 기소된 임직원 중 가장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은 리조트 사업본부장이었고 대림산업의 여수 산업단지 폭발사고에서는 대림산업 석유사업부 여수공장 공장장이, 현대제철 당진공장 가스누출 사고에서는 당진공장 생산본부장이 가장 높은 직책이었습니다.
현행법으로는 현실적으로 기업의 경영책임자가 재해 발생에 관한 형사책임을 질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만약 기업의 시스템 자체에 안전이 결여 됐더라도, 청해진해운처럼 암묵적으로 의무 위반을 이어가는 기업 문화가 있었어도 이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제임스 리즌은 <인재는 이제 그만>이라는 책에서 “오늘날 대부분의 대형재해 사건이 ‘조직유발사고’로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기업 내 시스템의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조직 외부에서 행해지는 안전규제 및 감독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원인을 하나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또 이런 재해는 주로 원자력,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 해양수송, 항공, 열차수송 등 복잡하고 고도로 분업화된 기술시스템을 사용하는 분야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한 번 발생하면 엄청난 피해를 야기하지만 드물게 발생한다는 이유 때문에 위험요인에 대한 안전보다 기업의 이윤논리가 강조되는 조직시스템이 구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합니다.
안전관리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 안전관리 조직문화를 책임지는 것은 기업 자체와 기업 경영책임자입니다. 하지만 기업의 조직 문화가 분업화 될수록 기업과 경영책임자의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결국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약하기 때문에 안전조치가 제대로 취해지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이로 인해 현행법의 한계를 보완할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라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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