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_이야기(43)] 기백엄마의 입덧과 메론
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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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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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5년 전 일이다."정환씨 메론이 먹고 싶어"첫 아이를 임신한 후 입덧이 심해 친정에 머물고 있는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메론 메론을 어디서 팔지""응 백화점 과일매장에서 팔 거야."
지금은 이마트로 바뀐, 당시 신세계백화점 미아삼거리점으로 갔다. 과일매장에 메론이 보인다. 슬쩍 가격을 보니 3천 얼마 정도다. 하나를 집어서 계산대로 갔다.
"3만 2천8백원입니다 고객님.""헉! 3천2백 얼마가 아니고요"
지갑을 열어보니 만원 짜리는 딸랑 두 장 뿐이다. 카드로 계산을 하고 메론 하나를 들고 고덕동 처가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며 연신 속으로 "과일 하나가 뭐이리 비싸 차라리 참외가 먹고 싶다고 할 일이지"라고 꽁알거렸다.
미아삼거리 여관골목 혹은 모텔골목, 이 골목에 16개의 모텔이 있다. 늘 성업 중이다.
(사진: 이정환)
처가에 도착하니 둘째 처형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와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처형이다. 물론 처형도 나를 싫어하긴 매한가지다.
그 이유는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처음 인사를 간 자리에서 술상을 봐준 게 둘째 처형인데 소주 한 병을 주더니 말동무도 안하고 자리를 피하는 거다. 혼자 한 병을 다 마신 후 아내에게 "술이 모자라니 한 병만 더 가져오라"고 했다.
그걸 들은 둘째 처형 왈, "아니 네 신랑을 무슨 술을 그리 많이 마신다니 너도 앞날이 걱정된다."라고 아내에게 하는 소리를 듣고만거다. 물론 들으라고 한 소리가 분명하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아내에게 "짐 싸. 집에 가자."고 그대로 신혼집으로 왔다.
그 이후로 둘째 처형은 나를 데먼데먼 상대한다.아무튼 형식적으로 인사를 한 후 사가지고 온 메론을 아내에게 자랑스레 무슨 전리품처럼 내밀었다. 아내는 메론을 깎으며 연신 신랑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 가득한 눈빛을 발사한다.
매론을 깎아서 내게 한 조각을 건낸다. "아니 난 됐어. 메론 별로 안 좋아해" 라고 거절을 하니 둘째 처형의 장남인 준석이 놈이 달려들더니 "이모부는 안 좋아하시니 내가 먹을게요 라며 낚아챈다." 달디 달게 하나를 먹더니 "이모 더 주세요."라는 게 아닌가
결국 아내는 메론을 한 조각만 입에 넣었고 두 조카 녀석들이 다 나눠먹었다. 나는 속으로 열불이 나지만 '그깟 과일 하나에 쪼잔하다'라는 소리를 듣긴 싫어서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메론이 국내에서 재배가 되고 무지 저렴한 과일이지만 25년 전엔 귀하디 귀한 과일이었다.
메론만 보면 그 얄미운 둘째 처형식구가 떠올라서 열이 뻗친다. 둘째 처형식구는 지금 캐나다 캘거리에서 살고 있다. 안보고 사니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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