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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이야기(46)] 마음만은 주지마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5.16 11:53 의견 0
“야, 상무야 요즘 경기 좋나”

 

“아이구, 형님 오랜만입니다. 요즘 사업은 어떠세요 저희 가게에 안 오시는 걸 보니 아직도 많이 힘드신가 봅니다. 어서 형님 경기가 풀려야 되는데……”

 

정말 오랜만에 상무를 만났다.우리 집 앞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출근하는 길이었나 보다. 상무는 나보다 세 살 어린 동네 후배다. 이 친구는 덩치가 좋아서 동네 건달들과 함께 룸싸롱 지배인 등 동네 해결사 노릇을 하다가 빅토리아 호텔 나이트클럽에 스카우트 되었다.

 

상무를 처음 만난 건 친구들과 동네 룸싸롱에 놀러 갔을 때였다. 주사가 있는 친구 놈 때문에 술집에서 시비가 생겼었다. 남자 종업원들이 달려와서 분위기가 꽤나 삭막해지고 있는데 지배인이란 친구가 달려왔다.

 

“뭔 일이여”

 

달려온 지배인의 산만한 덩치와 험상궂은 얼굴을 보고 우리 일행은 주사를 부리는 친구를 달래서 자리를 피했다. 물론 얼마 마시지도 않은 술값도 다 지불하고 말이다. 술집을 나오는데 지배인이 따라 나왔다. 우리 일행은 순간 엄청 긴장했다.

 

‘이거 그냥 피할 수 없는 자리가 되겠군.’라고 생각하는데 그 지배인이 자기 명함을 내게 건네 주는 게 아닌가

 

“형님 술은 잘 보관할 테니 다시 시간 내서 오십쇼. 잘 모시겠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직장 동료들과 술자리를 갖다가 2차로 그 술집엘 가게 되었다. 지배인을 부르니 지난번 그 친구다. 외모와는 천양지차로 너무 살갑게 구는 거다.

 

“아이구 형님 오셨습니까”

 

“나를 기억하나”

 

“지난 번 친구들과 오셔서 술 남기고 가신 형님 아닙니까 제가 형님 명함도 아직 갖고 있습니다.”

 

“아 그래 내가 명함을 주었던가”이 친구 서둘러 술상을 차리는데 술이 새 병이다.

 

“분명 우리가 그때 술병을 따고 몇 잔 마신 걸로 기억하는데”

 

“하하하, 형님 이렇게 다시 찾아주신 기념으로 첫 번째 술은 제가 쏩니다.”

 

그 미끼 때문에 얼마나 많은 양주를 마셨는지 다음 날 출근도 못했다. 상무는 퇴근길에 가끔 마주친다. 내가 지나 다니는 골목길에 그 친구의 직장이 있고 내 퇴근 시간이 그 친구의 출근 시간이기 때문이다.

 

“형님 저 자리 옮겼습니다. 이젠 빅토리아에서 일합니다. 한번 오세요. 잘 모시겠습니다.”

 

나는 바로 아래 동생과는 3살 터울이다. 막내와는 4살 터울인데 둘째와 마음이 더 잘 맞는 편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막내 동생이 아직도 막내 티를 내는 게 부담스러워서 그런 것 같다.

 

둘째와는 술자리를 자주 갖는다.한 달에 한번 꼴로 본가를 방문하는 동생과 만나는 날은 거의 소주 한 짝이 나갈 정도로 우리 형제는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신다. 둘째가 집에 온 날 우리는 둘이 나가서 한잔 마시기로 했다. 동생과 동네 소주 집에서 가볍게 한잔 마시고 나니 상무 녀석이 생각이 나는 거다.

 

“야, 우리 좋은데 가서 한잔 마시자. 형이 살게.”빅토리아에 가서 김상무를 찾았다.

 

“아이구 형님 오셨습니까 오늘은 정말 화끈하게 모시겠습니다.”

 

큼지막한 룸에 자리를 잡았다.

 

“형님, 임페리얼이죠”술을 내오면서 어떤 아가씨가 좋겠냐고 묻는다.

 

“형님 지난번 일하던 데랑 달라서 여긴 아가씨들이 많으니 맘에 안 들면 말씀하세요.”

 

이런 곳을 즐겨 찾지 않는 동생은 어리둥절한가 보다.“형, 너무 비싼데 온 거 아니야”

 

“야, 형이 너한테 이런 거 한번 못 쏘면 되겠냐 오늘 한번 찐하게 마시자.”

 

동생과 나는 여자를 옆에 끼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밴드를 불러 노래도 부르고 폭탄주도 만들어 권하며, 동생은 신기하기만 한가보다.

 

동생은 사업을 크게 하지만 술 접대를 안 한다. 아니 식사를 곁들인 술자리는 갖는 편이지만 룸싸롱 같은 데서 접대하느니 접대비만큼을 돈으로 주는 게 훨씬 좋다고 믿는 편이다. 룸싸롱 경험이 처음은 아니겠지만 형과 이런 자리를 갖은 게 좋았던지 연신 싱글벙글 댄다.

 

“형 눈치 보지 말고 옆에 있는 아가씨랑 재미있게 놀아라.” 자식이 얼굴까지 벌게진다.

 

웨이터에게 상무를 오라고 시켰다.“응, 그래 상무야. 이리 와서 내잔 한잔 받아라.”

 

“네, 형님 감사합니다.”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데 동생이 상무를 빤히 쳐다본다.

 

“상무 김상무 혹시 신일 중학교 나오지 않았어요” 동생의 질문에

 

“네, 형님 저 신일 나왔습니다.”라며 대답을 한다.

 

“야, 나야 나 모르겠어 중3때 같은 반이었는데 나야, 부반장 이명환이야”

 

“어 이명환”

 

“야 너 살 많이 쪘구나.”

 

둘이 중학교 동창이었던 거다. 술을 한참이나 마시다 보니 어느덧 새벽 4시가 됐다. 일을 마친 상무가 따라 나선다.

 

“저, 형님 죄송하지만 명환이랑 둘이 소주 한잔만 더 마시고 가겠습니다.”그렇지 않아도 이미 취기가 머리끝까지 오른 나는 더 마시자고 해도 마실 입장이 못됐다. 집에 들어가 바로 골아 떨어졌다.

 

마음만은 주지 않으면 잠깐의 일탈 정도는 이해해준다는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사진 : 이정환)

 

 

“이혼하자니까. 이젠 당신하고 더 이상 못살아.”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깼다.

 

“동서 남자들이 그럴 때도 있지.” 이건 내 아내의 목소리다.

 

“형님은 빠지세요. 우리부부 문제니까요.”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가니 동생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술에 취한 채 우두커니 서서 변명조차 못하고 있는 거다. 마침 시간이 아버님과 어머님이 성당에 미사 보러 갈 시간이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아버님의 불같은 성정에 이혼 운운하는 소리를 들었으면 집안이 발칵 뒤집혔을 게 뻔하다..“당신 잠깐 나랑 얘기 좀 해요.”나도 잔뜩 긴장한 채로 아내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왜 혼자 들어왔어요 서방님이랑 같이 들어오지.”

 

자초지종을 들은 아내는

 

“아무튼 이씨 집안 남자들은 못 말린다니까. 술이라면 사족을 못쓰니” 혀를 찬다.

 

여자 나오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아침이 다 되어 들어온 남편을 용서할 수가 없다는 게 제수씨의 입장이란다. 제수씨는 나를 아버님만큼이나 어려워하는 편이라 내가 진화에 나섰다.

 

“제수씨 명환이는 친구를 우연히 만나서 한잔 더 마시고 들어온 겁니다.”

 

“아주버니, 아무튼 여자 끼고 술 마신 건 사실이잖아요 전 그런 사람하고는 못살아요.”

 

“여기서 이러다 아버님 알게 되면 난리 나니까 일단 집에 가서 해결하세요. 이혼하던지, 말던지.”

 

하지만 차를 가져온 명환이는 술이 깨야 집에 갈 수가 있었다.

 

“얘들아 가자” 제수씨가 조카들 옷을 입히며 나선다.

 

말려도 소용이 없다.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동생이 일어났다.

 

“야 제수씨 한 성깔 하던데” 그런데 이놈 정말 걱정이 태산인가 보다.

 

사실 룸싸롱 영업 접대를 안 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제수씨가 그런 부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단다.

 

“형 정말 큰일인데. 아마 자기네 친정으로 아이들 데리고 갔을 거야. 전화도 안받네.”

 

“일단 빨리 집으로 가라.”

 

동생이 자기 집으로 간 후 아내는 내게 또 다짐을 받는다.

 

“난 다 이해해. 여자 만나는 것도 좋고 딴짓 하는 것도 좋은데. 들켜도 철저하게 오리발 내밀어 그게 예의야. 그리고 다 줘도 좋은데 마음만은 주지 마.”

 

아내와 나는 영화사에서 같이 일하다 사내 결혼을 했다.

 

자유분방한 회사 분위기 상, 회식 때는 룸싸롱에 남녀 직원들이 함께 가기도 한다. 남자들 노는 꼴을 다 본 아내는 그런 부분에는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항상 내게 다짐을 받는다.

 

"마음만은 주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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