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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이야기(48)] 보금자리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5.24 18:46 의견 0
많은 분들이 착각을 하는데 미아삼거리엔 집장촌이 없다. 소위 <미아리텍사스>라고 불리는 집장촌은 길음역 근처 하월곡동 88번지다.

 

사진과 같은, 이런 류의 찻집들이 줄나래비를 섰던 곳이 이제는 미아삼거리 먹자골목으로 바뀌었다.

 

"정환아, 좋은 찻집이 하나 생겼다. 나와라."동네선배인 용철형의 전화를 받고 나간 곳은 철지난 스타일의 <보금자리>라는 이름의 카페였다.하루에 한 테이블만 받아도 그날 매상이 끝나는 그런 류의 술집이다.그런 찻집은 보통 건달 하나씩을 끼고 영업을 한다.

 

보통 화류계 퇴물인 중년의 아줌마가 주인인데 보금자리 주인은 생각보다 젊었다.자리에 앉아서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주고 받는데 용철이형이 주인의 귓속에 뭐라 속삭였다. 그러자 주인의 안색이 변하더니 냅다 소리를 친다.

 

"나가세요. 내가 화류계 생활을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됐지만 한 때는 일본에서 잘 나가던 마담출신인데... "

 

하지만 용철형도 만만찮은 인물이다. 평생 겁이란 걸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고 성인용품 관련 사업과 사채놀이로 이골이 난 인물이다. 그리고 미아리골목 주먹쪽에선 나름대로 내력이 있는 사람이다."야! 없는 걸 달라는 것도 아니고 있는 거 뻔히 아는데 그거 한 번 못주냐"결국 옥신각신하다가 옆자리 손님들의 만류로 자리가 정리됐다.

 

그로부터 며칠 후 용철형한테 전화가 왔다."정환아, 보금자리로 와라.""형, 거기 지난번에 시끄러웠던 집인데 찝찝하네요. 그냥 탱자씨네 포차에서 소주나 한잔 마시죠"

 

굳이 나오라 몇번을 우기기에 나갔다. 왠일인지 형하고 주인아줌마가 도란도란 얘길 나누며 무지 친한 척 하며 술을 마시고 있는 게 아닌가!

 

(이정환 작가)

 

"어서와라 정환아. 알고보니 이 친구가 우리 숭곡초등학교 새까만 후배더구나. 앞으로 여기서 술 좀 팔아줘야겠다."

 

그후로 두어번 더 갔었나 용철형과 나는 맥주나 몇병씩 팔아줬다. 원래 이런류의 찻집은 손님들이 오면 가짜양주에다 안주들로 바가지를 씌우며 먹고사는 집이다.

 

당연히 우리 같은 선후배 관계의 손님이 반가울 리가 없는 거다. 게다가 용철형도 후배네 집이란 걸 알고난 후엔 찝적대기도 뭐하니 비싼 돈내고 술을 마실 리가 없으니 자연히 발길을 줄이게 됐다.

 

서너달 그렇게 흐르다가 결국엔 주인이 바뀌었고 보금자리 자리엔 호프집이 들어섰다. 후배인 보금자리 여주인도 미아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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