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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련 기행(9) - 디알로그 사 강당에서의 파티 그리고 백야

주동식 칼럼니스트 승인 2018.06.30 09:00 의견 0

▲ 디알로그 사 강당에서 가졌던 파티 장면 ⓒ 주동식



우리 일행은 방에 대충 짐을 풀어놓고 좀 쉬다가 그 숙소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쏘련에서 처음 먹어보는 식사. 메뉴는 소박 소탈 그 자체였다. 갈색빵과 베이컨, 그리고 순대 비슷한 음식이 나왔던 것 같은데 그게 정말 순대였는지 소시지였는지, 기억이 아슴푸레하다.

나로서는 그냥 먹을 만했고, 별로 불만이 없었다. 쏘련에 머무는 동안 나는 쏘련 사람들이 자기 나라 음식에 대해 갖는 불만을 여러차례 들을 기회가 있었고, 그때마다 이 사람들이 뭔가 착각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는 경험을 해야 했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디알로그 사 사옥으로 이동했다. 멀리에서 온 우리를 위해 파티를 준비했다는 얘기였다. 디알로그 본사에서는 20여 명의 직원들이 넓은 강당에 테이블과 음식, 술병을 벌여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어도 잘 안 되는 내가 그들과 무슨 대화를 제대로 나눴을 리는 없다. 아무튼 나도 소개를 받았고 여러 사람이 인사말을 했고, 또 많은 사람이 다가와서 다정하게 악수도 하고 껴안기도 했다. 하지만 나야 뭐 그다지 편한 자리는 아니었다. 차라리 술이나 열심히 마시는 게 나로서는 제일 편한 행동일 수밖에하지만 술로 이 친구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전략이었다.

거의 논스톱으로 술잔을 비우는 친구들 덕분에 나도 꽤 빨리 취했던 것 같다. 고래처럼 마신다는 표현은 좀 과장이라 해도 아무튼 강철같은 체력이라는 느낌은 들었다.

게다가 쏘련 친구들은 원래 주당으로서의 자세가 몸에 배인 듯, 술자리가 무르익자 어떤 친구가 기타를 들고 나왔고, 노래가 이어졌다.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자 춤판이 벌어졌다. 동구권 민족들이 즐기는 그런 춤, 그러니까 두 사람이 팔짱을 끼고 빙글빙글 돌고 또 한쪽 방향으로 마치 군인들처럼 착착착 발길질을 하며 걸어가다가 갑자기 방향을 홱 바꿔 반대편으로 나아가는, 민속춤 가까운 형태였다. 뭐라고 그 이름을 들은 적도 있을 텐데, 아무튼 그 이름이 뭔지는 중요치 않았다.

나는 원래 춤이니 뭐니 하는 것에 질색인 편이지만 쏘련 친구들이 억지로 끌고 나가는 바람에 그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선보여야 했다.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쳐대는 그 분위기에서 더 이상 사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A사장이 또뭘 그리 뺍니까이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아마 12시 넘어서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던 것 같다. 나는 나중에 그 자리에서 그냥 잠이 들어서 디알로그 사 직원 하나가 나를 업고 숙소까지 데려다 준 것으로 들었다.

, 하나 신기했던 게 있었다. 술자리를 시작한 것이 저녁 8시가 훨씬 넘은 시간인데도 바깥이 훤했던 것이다. 신기해하는 나에게 A사장이 일러주었다.

D기자, 백야라고 몰라요

이런, 설마 내가 백야를 모를까. A사장에게 나는 졸라 무식한 기자로 포지셔닝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어쨌든 백야였다. 백야라니,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쏘련이었구나. 더 신기했던 것은 저녁 10시가 넘어가자 어느 한 순간에, 어스름 황혼이니 뭐니 하는 중간 형태 없이 순식간에 마치 검은 보자기를 덮어씌우듯 천지에 어둠이 내려덮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순간, 천지가 한꺼번에 어두워지는 그 순간을 잡아내지는 못했다. 쏘련에 있는 내내 그랬던 것 같다.

1991 7, 쏘련, 모스크바의 첫날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이 글에서 쏘련 공항의 입국 수속을 담당하던 사람들이 군인이라고 썼는데, 페친이신 진정욱 님이 그 사람들이 실은 군인이 아니고 군복처럼 보이는 유니폼을 입었을 뿐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군인이 민간공항의 입국 수속을 담당하는 경우는 없다고 하네요. 그 분 지적이 맞는 것 같습니다.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다만, 본문은 이미 오래 전에 쓴 글이고 새로 고쳐쓴다는 것도 불필요한 일인 것 같아 사실만 알려드리고 표현은 그대로 둡니다. (필자 설명)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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