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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련 기행(10) - 취재 관행에서 확인한 거대한 인식의 차이

주동식 칼럼니스트 승인 2018.07.01 09:00 의견 0

1989년 여름. 나는 국회도서관에서 당시 쏘련 정부 기관지라고 할 수 있는 <프라우다> 지면을 볼 기회가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나는 당시만 해도 내가 얼마 후 쏘련에 가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그때 내가 프라우다 지면을 살펴봤던 것은 신문 지면의 편집 기술을 좀 살펴보겠다는 의도였다.

내가 열람했던 프라우다 지면이 당시로서 최신 일자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시간을 좀더 거슬러 올라간 과거의 것이었는지는 기억이 분명치 않다. 어쨌든 내 눈에 비친 프라우다의 지면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신문의 편집을 그렇게도 할 수 있다니!

내가 알고 있는 신문 지면이란 굵은 활자의 제목이 가로 세로로 종횡무진 지면을 분할하고, 중간중간에 임팩트 강한 사진과 그래픽으로 화려하게 점철되어 있는, 두 손으로 활짝 펼치기도 어려울 정도로 넓은 지면을 좌상단에서 우하단으로 시선을 옮기며, 지난 하루 이 세상이 어떤 모양으로 진통하고 울부짖었는지를 일람할 수 있는 그런 종이를 의미했다. 제목도 그냥 쓰는 법이 없다. 지금 그 이름은 잊었지만, 새카맣거나 또는 이러저라한 무늬가 깔린 바탕을 깔고, 그 위로 선명하게 드러나 독자의 눈을 때리는 그런 제목이 대부분이었다.

▲ 디알로그 사 옥상에서 찍은 주변 모습. 숲속에 자리잡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주동식

디알로그 사 내부 모습. 대리석 건물로, 마치 무슨 미술관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세상에나내가 처음 펼친 프라우다의 1면은 단 하나의 기사로 신문 전면을 뒤덮고 있었다. 제목도 윗 부분에 그다지 크지 않은 글씨로 단 한 줄! 흔히 미다시라고 부르는 부제목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중간에 딱 하나, 무슨 군부대 마크 같은 게 자리잡고 있을 뿐, 흔해빠진 사진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흔히 5단 통광고라고 부르는, 지면 하단의 광고조차 없었으니 그 광활한 지면을 뒤덮은 단 하나의 기사가 주는 그 생경함이라니

대충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상품경제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독자의 눈을 현혹시키는 편집 기술이나 마케팅 기법 따위는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런 식의 편집이 정말 바람직한 것인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나도 당시까지 자신이 빨갱이라고 나름 자부하던 시절인데도 그랬다.

물론, 나도 세계에서 가장 요란 시끌 뻑적지근 현란하게, 편집 지저분하게 하는 신문이 일본 신문이고 한국의 조중동 등의 편집은 철저하게 일본 신문의 그 기술을 배워온 결과물이라는 얘기는 듣고 있었다. 그런 한국 신문의 편집 기술보다는 좀 다른 차원의 편집을 살펴보겠다는 의도에서 국회도서관까지 찾아가기는 했지만, 이건 좀 심한 것 아닐까

▲ 디알로그 사 내부 모습. 대리석 건물로, 마치 무슨 미술관 같은 느낌이었다. ⓒ 주동식

프라우다의 다른 지면은 그렇게까지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신문의 가독성이나 시각적 편의성은 프라우다의 편집 원칙에서 거의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 마케팅 개념 제로의 신문이었던 것이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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