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쏘련 기행(11) - 기자가 무슨 취재를 하건 그건 기자가 알아서 할 일 아니냐

주동식 칼럼니스트 승인 2018.07.07 09:00 의견 0

▲ 당시 모스크바 소프트웨어 전시회의 디알로그 사 부스. ⓒ 주동식

내가 쏘련에 도착해서 술 마시고 뻗은 다음날부터 직면한 현실은 그보다 2년 전 국회도서관에서 프라우다 지면을 보면서 받은 충격을 되살려냈다.

나도 경험이 많은 기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충 미국이나 한국 기업들이 기자들을 초대했을 때 어떻게 프로그램을 짜는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흔히 생각하는 접대 따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기자를 초대했으면, 언제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어떠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정밀한 스케줄을 짜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외국의 경우 대부분 통역이 따라붙는다. 통역의 경우 예외는 있지만 정말 예외에 속했다.

하지만 내가 모스크바 도착 다음 날 만난 디알로그사 관계자는 우리의 이런 요청에 대해 정말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의 역할은 당신들을 초대해서 숙식을 제공하는 것까지다. 기자가 무슨 취재를 하건 그건 기자가 알아서 할 일 아니냐 우리가 왜 그런 부분까지 챙겨줘야 하느냐

나의 기자 경험과 상식으로는 말이 안되는 얘기였지만, 또 굳이 원론적으로 따져보자면 사실 반박하기도 어려운 논리이기도 했다. 사실 제대로 된 기자라면 출국 전에 좀더 준비를 하는 게 맞다. 물론 당시 국내에서 쏘련 특히 그 중에서도 정보통신 관련 정보나 자료를 찾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기는 하다. 그렇다 해도 그런 노력은 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만한 경험도, 엣지도 없는 기자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과 취재와 마케팅 원칙을 놓고 왈가왈부 따질 여유가 내게 없다는 점이었다. 어떻게든 대안을 마련해야 했다.

A사장은 내게 솔직한 충고를 했다.

“어차피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취재를 하긴 어려울 거에요. 그러니 우리 일행이랑 적당히 시간 보내고 그냥 디알로그가 뭐하는 회사인지 정도만 취재해서 보도하세요. 그것만 해도 충분히 의미가 있어요. 그리고 이왕 쏘련에 왔으니 관광도 좀 하구요.”

B이사나 C차장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실제로 A사장과 선경의 관계자 일행은 그때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소프트웨어 관련 전시회에 출품된 제품들을 살펴보고 디알로그사와 제휴 관련 협의를 한 후 귀국할 예정이었다. , 3 4일 정도의 일정을 예상하고 왔던 것이다. 나 역시 애초에는 그 정도 일정이면 대충 취재를 마치고 귀국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A사장이 내게적당히 취재하고 귀국하자고 권했던 배경에는 나의 취재능력에 대한 불신이 꽤 깔려있었던 것 같다. 김포공항에서 보여준 모습이나 기타 여러가지 말하는 모양새가 영 미덥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당시에는 A사장의 그런 시선을 미처 의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쨌든 그런 식으로 대충 귀국하기는 싫었다.

일단 디알로그 관계자를 통해 디알로그 회사나 쏘련의 쏘프트웨어 산업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소개받되, 나는 혼자 모스크바에 남아 좀더 취재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런 내 계획을 디알로그 관계자에게 알리고 협조를 요청해달라고 A사장에게 부탁했다. 그 협조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취재해야 할 대상 업체를 소개해주고 인터뷰에 동반할 통역을 소개해달라는 것이었다.

A사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내 요청을 디알로그에 전달해주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디알로그는 특히 다른 업체를 내게 소개해주는 것에 무척 소극적이었다. 그건 당신이 알라서 하라는 식이었다. 대신 통역은 소개해주겠다, 다만 그 비용은 당신이 부담하라는 얘기였다.

나는 별수없이 모스크바의 소프트웨어 전시회에 참가한 업체들을 대상으로 브로셔 등을 수집하기로 했다. 그 업체들이 어느 정도 쏘련의 소프트웨어 산업을 대표하는 위상을 갖고 있는지는 알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그것을 전시회에 출품해 알릴 필요성은 느끼는 업체들이겠지

<다음편에 계속>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