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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련 기행(13) - “인민 대중은 건강한데, 지도층이 썩어서 문제”

주동식 칼럼니스트 승인 2018.07.14 09:00 의견 0

▲ 모스크바는, 거창한 규모의 기념관 등이 많았다. 도서관, 미술관, 기념관 등을 흔히 볼 수 있었다. ⓒ 주동식

통역 최 노인은 60세가 좀 넘은, 조선인 2세라고 했다. 스탈린 시대에 극동에서 중앙아시아 쪽으로 이주한 조선인 부모가 자신을 낳았다고 했다. 사실 노인이라곤 했지만 실제 얼굴은 노년 초입에 접어드는 장년이라고나 할 인상이었다.

통역료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하루에 15달러 정도 주지 않았나 싶다. 최 노인 말로 서울에서 온 사람들 통역을 맡으면 보통 그 정도 받는다고 했다.

내가 소프트웨어 전시회에서 수집한 자료를 기반으로 디알로그 관계자와 상의해서 취재 대상 업체를 선정하면, 이들 업체에게 전화해서 취재 약속을 잡는 등의 일은 최 노인이 맡았다. 취재 약속이 잡히면 정해진 시간에 내가 최 노인과 동행해서 해당 업체를 방문하고 인터뷰이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최 노인은 내가 쏘련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가장 빠르게 자본주의의 물에 오염된 것처럼 보인 인물이었다. 말투, 태도, 표정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별히 행동에 문제가 있다거나 악의가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묘하게 부패한 느낌, 야비한 느낌, 비굴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도무지 근거를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었는데, 어느 날 이 분과 어떤 파티 자리에 갔다가 내 느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이틀에 한 번 정도는 디알로그를 찾아갔다. 취재 약속을 잡기 위해서도 협조를 얻어야 했지만 그게 아니라도 빈 시간에는 찾아가곤 했다. 하루 종일 취재 약속이 잡히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 두세 건, 많아야 서너 건 정도 인터뷰 약속이 잡히는데, 빈 시간이 한두 시간 정도라면 몰라도 서너 시간씩 빈 시간에는 숙소에서 죽치기도 애매했기 때문이다. 아침은 숙소에서 먹었지만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디알로그 직원들과 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최 노인은 나와 동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는 디알로그의 젊은 이사 M이 나에게오늘 중요한 사람이 주최하는 파티가 있으니 함께 가자고 제의했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쏘련 컴퓨터 분야에서 상당히 중요한 정부 인물이라는데, 정확한 직책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장차관급은 아니었고, 지금 생각해보니 산하기구의 책임자 정도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직급에 비해 컴퓨터 분야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한 것 같았다. 마침 빈 시간이 있어서 나는 동행하기로 했다.

▲ 중요 정치인들의 캐리커처가 이미 모스크바 길거리에서 팔리고 있었다. ⓒ 주동식

M과 나, 그리고 최노인이 차를 타고 찾아간 곳은 10층 정도 높이로 호텔처럼 보이는 건물이었다. 둔중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그다지 넓지 않은 방으로 들어가니 부페 식으로 음식이 차려져 있고 벌써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면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시간은 점심 때에서 한두 시간이 지난, 대낮이었다. 우리나라 컴퓨터 산업계도 호텔에서 이런 파티를 열곤 했지만, 대개 저녁 시간에 행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렇게 벌건 대낮에 파티를 열고 사람들이 술에 취해 있는 경우는 못 본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벌써 거나하게 취한 상태였다.

M이 나를 데리고 그 자리의 호스트라고 할 수 있는 그 중요 인물에게 인사를 시켰다. 나야 말이 통하지 않으니 명함을 건네주고 간단하게 영어로 인사만 건넸는데, M이 유력인사에게 뭐라고 내 소개를 하는 것 같았다.

그 유력인사는 사실 내가 인사를 건넬 때도 술이 거나해진 탓인지 이미 얼굴이 벌건 모습이었는데, M이 뭐라고 나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하자 갑자기 얼굴이 더 벌개지며 폭소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M에게 뭐라고 빠른 러시아 말로 떠들어대는데, 내가 그 발언의 의미를 알아챌 수는 없지만 결코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내가쏘련 인민 대중은 건강한데, 지도층이 썩어서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은 당시 파티의 경험도 영향을 주었다. 그 날 파티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어떤 기준으로 봐도 당시 쏘련에서 평범한 노동대중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옷차림이나 행색도 그러했고, 태도에서도 그런 여유 같은 게 느껴졌다. 대낮부터 그런 파티에 참석한다는 것 자체도 일반 노동대중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일 아니었을까 그 자리의 주빈이라고 하는 사람의 태도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술에 취해서 낄낄대는 모습이라니우리나라 고급 공무원들에 대해서도 좋은 인상을 가진 적이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대낮부터 취해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공무원들은 없었다.

그 주빈과 인사를 마치고 한쪽에 물러서서 살펴보니 최 노인은 다른 것은 일체 신경쓰지 않고 오직먹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집중한다는 표현이 적당할 수밖에 없는 게, 파티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체면 그런 것 일체 신경쓰지 않고 오직 먹는 것 하나에만 주력하는 사람의 모습은 나로서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최 노인은 그렇게 부지런히 먹다가 문득 고개를 나를 보더니 손짓을 해서 불렀다.

D선생님(나를 그렇게 불렀다), 이거 굉장히 귀한 음식들입니다. 많이 드십시오. 쏘련에서 이거 일반 사람들 구경도 못하는 음식들입니다. 저는 이런 음식 처음 먹어봅니다.”

나로서는 그 음식들이 뭐가 신기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정말 보지 못했던 음식들은 있었다. 바로 캐비어였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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