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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련 기행(16) - 두 배 빠른 에스컬레이터와 이화여대역 보다 깊은

주동식 칼럼니스트 승인 2018.07.22 09:00 의견 0

모스크바에 처음 도착해서 들은 일본인 관광객의 사례도 있고 또 비용 부담이란 점에서도 나는 택시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디알로그 직원들이 승용차에 태워주는 경우 외에는 모두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것 같다. 전부터 명성을 익히 듣고 있었던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우선 놀란 것은 지하철 플랫폼의 깊이였다. 내가 서울에서 본 지하철 역 플랫폼 가운데 가장 땅속 깊이 들어가는 곳은 이화여대역이었다. 하지만 모스크바의 지하철 역들은 대부분 그보다 훨씬 깊었다. 전쟁 특히 핵전쟁에 대비해서 대피호를 겸한 용도였다고 하니 이해할 만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깊은 지하철역이 존재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게다가 그렇게 깊이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왜 그리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지서울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에 비해 역시 두 배 가량 빠른 것 같았다. 나중에 디알로그 M이사에게그렇게 에스컬레이터가 빨라도 불편하지 않으냐고 물어봤더니할머니들도 불편없이 잘 이용한다고 가볍게 일축해서 나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빠른 것은 또 있었다. 지하철 차량 출입문의 열리고 닫히는 속도가 그것이었다. 우리나라 지하철 차량과 달리 문이나 내부 장식에 목재를 많이 사용한 것 같았는데, 그 출입문의 닫히는 속도와 위력이 장난 아니었다. ~ 만일 출입문 두 쪽이 딱 부딪히는 그 지점에 목이라도 대고 있다면 그대로 부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정말 놀란 것은 지하철의 운행 간격이었다. 휴일이 아닌 평일 낮 12시쯤에 지하철 역에서 사람을 만나기로 하고, 플랫폼에서 기다린 적이 있었다. 약속 장소에 좀 일찍 도착해서 20분 가량 기다리는데 느낌이 어쩐지 이상했다. 일일이 시간을 재본 것은 아니었지만, 지하철 차량이 도착하는 빈도가 너무 잦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서울 지하철의 경우 출퇴근 시간에도 지하철 차량이 그렇게 자주 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한쪽 방향에서 오는 차량이 몇 분 간격으로 도착하는지 체크해봤더니 정확하게 2분에 한 대씩 차량이 도착하는 것이었다. 러시아워도 아닌 평일 낮 12시쯤에 이렇게 지하철을 자주 운행하다니 이걸 갖고 M이사에게 물어봤다.

“이렇게 지하철을 자주 운행해도 상관없나

그러자 M 이사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앞에 가는 차량에 문제가 생기면 뒤에 오는 차량이 자동으로 속도를 늦추거나 정지하도록 시스템이 되어있기 때문에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모스크바 지하철 생긴 이래로 단 한번도 그런 사고가 난 적이 없다. 그러니 그렇게 자주 운행해도 문제가 없다.”

내 질문의 요지는사람들이 별로 많이 다니지도 않는 평일 낮에 저렇게 지하철을 자주 운행해도경제적으로별 문제가 없느냐하는 것이었는데, M에게는 내 질문의 의도가 전혀 다르게 전달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하철 운행간격에서 경제성을 먼저 고려한 나의 질문보다당연하게승객들의 안전 문제를 먼저 떠올린 M의 대답이 더 올바른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약간 특이한 의미의 우문현답이었다고나 할까.

생각해보면 그때 평일 낮 모스크바 지하철 차량은 결코 한산하지 않았다. 미어터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빈 자리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차량 하나에 서 있는 승객이 10여명은 됐던 것 같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평일 대낮에 일하지 않고 빈둥빈둥() 지하철 타고 돌아다니는 인간들이 왜 그렇게 많았을까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때 그 모스크바 지하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딱히 업무차 돌아다니는 사람들 같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모스크바 지하철의 차표는 그냥동전이었다. 쏘련에서 이용하는 공식 동전을 개찰구 구멍에 넣으면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 지하철에서 종이 티켓을 이용하던 내게는 그것도 참 신기하게 보였다. 만일 차비를 인상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동전을 두 개 넣어야 하나 그것은 차비를 무조건 100% 인상해야 한다는 의미 아닐까 이 문제도 M에게 물어봤는데, M은 이 질문의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것을 봐서 그렇게 짐작했다.

지하철처럼 자주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시내버스를 탄 적도 있었다. 이때는 디알로그의 젊은 직원 S와 동행했다.

S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버스비를 내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었는데 어느새 버스비를 내도록 되었다며 분개하며 말했다. 세상이 갈수록 타락해간다는 듯한, 일종의 도덕적 분노가 느껴지는 어조였다. S는 버스표라며 조잡한 갱지(7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시험지라고 불렀던)에 역시 조잡한 글씨가 인쇄된, 과거 우리나라 버스 회수권 2배 정도 크기의 종이를 나에게 주었다. 옛날 우리나라 버스 회수권은 그래도 컬러 인쇄였는데, 모스크바 시내버스 차표는 그냥 중고등학교 시험지을 가위로 대충 자른듯한 느낌의 조잡한 흑백 인쇄였다.

그런데, 이 차표를 누구에게 내는 것일까 붐비는 버스 안에서 내릴 때가 되어 S의 눈치를 봤더니 그는 사람들을 밀치며 버스 창문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버스 창문 쪽에는 묘하게 생긴 장치가 붙어 있었다. 종이 구멍을 뚫는 일종의 펀치가 거기 장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 버스에 탄 사람들은 자신의 표를 그 펀치로 구멍을 뚫어야 했다. 그렇게 차표 한 장에 구멍을 뚫으면 버스에 한번 탔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그 차표는 버리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종이에 구멍을 뚫는지를 살피는 사람은 없었다. 버스에서 내리려는 사람들은 서로 밀치며 그 펀치로 가까이 가서 구멍을 뚫고 있었다.

나는 궁금했지만 S에게 차마 “(양심 불량인) 사람들이 차표에 구멍을 뚫지 않고 내리면 어떻게 하느냐 아니, 아예 차표 없이 차를 타도 누구 하나 점검하는 사람이 없던데, 그걸 악용하는 사람은 없느냐고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내가 살아온 생활, 내가 살아온 사회가 어떤 것인지 폭로되는 것 같아서 창피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모스크바에 대해, 쏘련에 대해, 사회주의에 사는 사람들에게 놀란 사건은 따로 있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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