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파크] 프로페셔널의 아름다움, <감시자들>
강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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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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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들을 추적·미행하는 경찰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 <감시자들 >을 보았습니다 . 재미있더군요. 근래에 보기 드문, 두 명의 감독이 연출한 영화인데요, 두 감독의 개성과 재주가 대단히 잘 녹아든 , 아주 개운한 뒷맛의 영화였습니다 .
장점이 많습니다만, 저는 무엇보다도 영화가 그려내 고자 하는것이 분명하고 또 그것에 대한 집중력이 상당하다는 점을 먼저 언급하고 싶군요. 그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란 게 무어냐, 바로, 프로페셔널의 미학입니다. 보통 무시무시한 범죄집단 과 그들을 검거하려는 이들이 나오는 영화들은, 대치하는 두 집단 중 하나를 바보로 만들어 버리기 일쑤입니다. 범죄집단을 골리앗으로, 군 , 경을 다윗으로 만들어 관객들 애간장을 태우거나 , 반대로 경찰들을 영웅으로 만든 후 범죄집단은 그들의 샌드백 으로 기능하게끔 해 보는 사람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주거나 . 대개는 둘 중 하나인거죠 . 범죄자들과 ' 감시자들 '이 ' 힘의 균형 ' 을 이루는 영화는 생각보다 흔치 않아요 . 아무거나 생각나는 범죄영화 하나만 떠올려보세요 . 아마 마찬가지일겁니다 . 경찰이 바보이거나 , 범죄자들이 샌드백이거나.
그러나 <감시자들 >은 다른 길을 갑니다 . 뻔한 로맨스나 구질구질한 눈물 장치는 없어요. 대신, 영화는 범죄집단과 그들을 잡으려는 감시자 그룹 중 하나를 바보로 만드는 대신 , 두 집단 모두를 엄청난 프로페셔널로 그려내고 있어요. 이 영화엔 '다윗 경찰'이나 '샌드백 범죄자' 는 없습니다 . 대신 관객들은 막강한 범죄자들과 탁월한 감시자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 상영 시간 내내 우리편이 뛰면 범인은 날아다니고 , 나는 범인 위엔 기지를 발휘해 다시 범인의 머리 꼭대기에서 노는 우리편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 박빙의 대결에서 필요한 것은 결국 '전문성' 이겠죠 . 하여 들키지 않고 범인을 감시하기 위한 , 또는 경찰을 따돌리고 범행을 저지르기 위한 온갖 전문적인 장치들과 두뇌싸움이 등장하는데 , 그걸 보는 재미가 상당합니다. 영화가 로맨스나 구질구질한 눈물 장치 다 뜯어내고 하나 남긴 것이 바로 그것이죠 . 네 , 이 영화는 오로지 ' 프로페셔널이 주는 쾌감' 하나만 믿고 갑니다. 그리고 그 효과는 대단히 큽니다. 말하자면, '선택과 집중'의 승리인 겁니다.
물론 하나만 붙들고 내달리는 동안 놓치는 것들도 있습니다 . 대표적인 것이 아이돌그룹 2PM의 멤버 준호가 연기한 인물, '다람쥐'의 등장과 퇴장일 겁니다. 배우 이준호의 연기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만 , 더 깊은 감동과 여운을 위해선 지금보다 배역의 비중과 분량이 조금 더 많았어야 해요 . 정우성이 연기한 제임스 역시 좀 더 멋진 악역일 수 있었습니다 . 깊은 내면묘사까진 아니더라도 , 그의 내면에 도사린 고독을 배우가 조금만 더 잘 연기했더라면 지금의 예측가능한 결말이 조금은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그러나 붙어있었어야 더 좋았을 곁가지에 대한 아쉬움보다 , 구질구질한 곁가지들을 과감하게 쳐낸 데서 온 속 시원함이 더 크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영화가 극복한 '한국식 고질병'이 한 둘이 아니거든요. 저는 특히 이 영화가 그 시작부터 끝까지 주인공 한효주에게 '여배우 ' 연기를 시키지 않는다는 데 주목합니다. 설경구가 연기한 '송골매'황반장은 꽃사슴 한효주의 생김새에 아예 관심이 없고, 꽃사슴과' 다람쥐 ' 의 로맨스도 기껏해야 눈인사 정도입니다. 영화의 관심은 오로지 프로페셔널이고, 한효주, 그러니까 꽃사슴도 '여자'이기 전에 '전문가'로 묘사돼요.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 여배우의 미모에 별 관심이 없는 영화의 무심한 태도는 그를 더욱 ' 예뻐보이게' 만듭니다 . 군더더기가 없는 건편집이나 플롯 뿐만이 아닙니다 . 촬영감독출신 김병서 감독의 화면엔 구차한 미장센이 없고 , 음악은 관객의 감정을 앞서나가지 않습니다 . 이런 한국영화, 보기 드물어요 . 리메이크작임에도 불구, 시리즈물로서의 가능성이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보기 드문 말끔함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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