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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파크] 절반의 성공, 김지운과 아놀드 슈왈츠네거의 <라스트 스탠드>

강동희 기자 승인 2018.04.27 08:58 의견 0

이미 알려진대로,지난 2월 21일 개봉했던 영화 <라스트 스탠드>는 김지운 감독의 헐리우드 진출작이자 아놀드 슈왈츠네거의 복귀작입니다. 이 두 사실 만으로도 개봉 전부터 국내 관객들에게 큰 관심을 모았죠. 그러나 저는 요란한 수식어들 다 빼버리고 이 영화를 그냥 이렇게 부르고 싶군요. '수작'이라고.

미국에서 흥행에 참패했고,심지어 국내 성적마저 그다지 좋지가 않습니다. 그 원인이 김지운 감독의 연출력 부족이란 말들이 있고,주연배우의 스캔들 탓이란 얘기도 있습니다. 글쎄요. 전 영화의 배급이나 홍보,흥행에 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어 여기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을 드리진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패인 분석이'그렇기 때문에 슈왈츠네거와 김지운 말고 다른 이가 이 영화의 각본을 맡았어야 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그것만큼은 단호히 '아니'라고 말하고 싶군요. 김지운이나 슈왈츠네거,이 둘 모두 흥행 실패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겠지만,역설적이게도 이 영화는 슈왈츠네거와 김지운이 아니면 절대 나올 수가 없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흥행이야 어떻든 그 결과물은 상당히 훌륭해요. 서부극으로서도,'김지운 영화'로서도,'아놀드 슈왈츠네거 영화'로서도 영화는 모두 합격점입니다.

먼저 내용부터 볼까요. '가브리엘 코르테즈'라는 이름의 사내가 악역으로 등장을 합니다. 감옥에 수감돼있던 이 남자는 죄수 이송 과정에서 FBI의 철통 경호를 뚫고 탈주합니다. 그는 남미로 도망칠 계획인데,이미 군경이 대열을 갖춘 국경을 직접 뚫는 대신'서머튼'이라는 작은 마을을 통할 생각입니다. 서머튼의 보안관 아놀드 슈왈츠네거,아니 '레이'는 가브리엘의 계획을 알아채고 FBI에 보고하지만,무시당하고,병력도 지원받지 못합니다. 결국 레이는 부하 보안관 서너 명과 마을 사람들을 모아다 옹기종기 힘을 합쳐서,군부대 하나를 통째로 갖다놔도 못 막을 이 사내를 막아내야만 합니다.

자,무척 익숙한 내용입니다. 예고편이나 영화의 홍보 전단에 이미 나와있는 내용만을 말씀드렸음에도,어떤 장면들이 나오고 어떤 결말을 향해 갈지 다 보이지않습니까실제로 영화는 관객의 예측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우리편'과 '악당'모두 무기를 정비하고 힘을 모으는 전반부,양측이 패싸움을 하는 후반부,그리고 우리 쪽 '큰형'과 악당 애들의 '두목'의 외나무다리 일대일 싸움으로 마지막되는 결말까지,영화는 서부극의 이야기 진행 방식을 고스란히 따라가지요.

그러나 기본적인 설정이나 이야기가 익숙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대단히 신선합니다. 일단 연출자 김지운을 포함해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영화의 진행 방향을 관객들도 다 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여 서부극을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것들을 신속 간결하게 정리해 얼른 보여주고, 그 나머지는 '김지운의 정서'로 채워버려요.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코르테즈는 죄수복을 입고 탈주를 합니다. 그리고 FBI를 교란시키기 위해 자신이 입었던 것과 같은 죄수복을 입은 사내들을 자신의 탈주로에 미리 뿌려놓지요. 이런 류의 영화에서 흔한 설정이죠. 그러나 영화는 이 '흔하지만 필요한 설정'을 밀린 숙제하듯이 얼른 마무리짓고 곧장 '김지운식 농담'으로 넘어갑니다. 오렌지색 죄수복 차림으로 거리를 돌아 다니며 코르테즈를 도운 사내들을 몽땅 잡아다 한 공간에 밀어넣고는 '네덜란드 축구팀'어쩌고 하는 코미디를 만들어 내는 거지요.

등장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에요. <라스트 스탠드>의 이야기는,말하자면 바위를 치는 계란,내지는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의 이야기인데,영화는 '일당백 액션'보다 유약하고 수적으로도 열세한 이들의 정서적 교감과 유대에 더 주목합니다. 이들은 영화 <300>에 나왔던,페르시아 군대에 맞선 삼백인의 스파르타 군인들과 달라요. 작은 마을에 살며 서로의 이름,서로의 성격을 모두 아는 이들은 자기 옆 사람 목숨이 자신의 목숨만큼이나 중요하고,코르테즈 일당들이 정말이지 너무나도 무섭습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이런 애틋한 감정과 적들에 대한 두려움을 대사로 직접 고백하기도 합니다. 일대 다의 싸움이라는 상황 설정은 서부극의 것이지만,이 서부극 상황은 간단한 설명으로 정리되고 그 나머지는 여타 서부극에서는 보기 어려운 개성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죠. 그리고,적들에 대한 공포에 공감해주고 '자기 사람들'을 다독여주는 레이의 모습에서 아주 전형적인 한국식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네,영화의 슈왈츠네거는 서부극의 마초가 아니에요. 그 점 역시,<라스트 스탠드>만의 차별점일 수 있겠군요.

그렇다고 일반적인 서부극과의 '차별점'만 있느냐,하면,그렇지는 않습니다. 영화는 '전형적인 서부극'으로 보아도 성공적이에요. 미리 언급한 바와 같이 영화는 서부극 장르의 필수 설정들을 신속 간결하게 처리하고 있는데,얼른 얼른 지나가긴 하지만 그래도 훌륭합니다. 서부극 설정을 시대에 맞게끔 고치기 위한 다양한 시도도 대부분 성공적이죠. 대표적인 것이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하는'스포츠카'입니다. 이는 전통 서부극의 '말'을 대신하고 있는데,이 스포츠카를 활용해 정통 말타기 액션을 패러디한 영화의'옥수수밭'장면은 그야말로 영화의 백미입니다. 보안관 레이와 코르테즈가 외나무다리에서 맞붙는 마지막 장면은 어떻습니까. 영화는 이들이 최후의 혈투를 벌이는 그 다리가 '원래 다리가 없는 협곡에 일부러 만든 가교'임을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서부극 패러디 장면을 만들어내기위해 없던 외나무다리를 일부러 만든것'임을 영화가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죠.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영화의 이 농담을 알아듣고 아마 한참을 웃었을 겁니다.

이렇듯 영화 <라스트 스탠드>는,서부극을 정확히 이해하고 쓰여진 각본과 김지운 감독의 강한 개성,그리고 아놀드 슈왈츠네거의 존재감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수작입니다. 아마 서부극이라는 점 때문에 많은 분들이 감독의 전작<좋은 놈,나쁜 놈,이상한 놈(이하 '놈놈놈'>과의 비교를 시도 하셨을텐데,사실 이 영화는 '놈놈놈'보다 <조용한 가족>이나 <반칙왕>같은 그의 초기작들에 더 가까워요. 그 사분사분하면서도 살짝 엇나가는 웃음 장치와,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강한 연대 같은 것들 말입니다.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김지운만의 정서,혹은 한국적인 '그 무엇'은 일부러 넣어야지 하고 연출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그냥 스며드는거죠. <라스트 스탠드>는 그 정서가 잘 스며든 예라고 볼 수 있겠고요.

영화의 흥행 실패는,김지운 감독의 향후 행보에 결코 청신호는 아닙니다. 김지운 감독의 작품 세계를 즐겨온 관객들이라면,그래서 그 안타까움이 더 클 겁니다. 그러나 전 김지운 감독이 평생 있을까말까한'헐리우드 진출 기회'를 허탈하게 소진했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드는군요. 헐리우드가 아니면 안 되는 자본으로,김지운이 아니면 안 되는 영화를 만드는 데 성공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