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말라야>의 흥행세가 무섭습니다. 크리스마스 연휴에만 167만 관객을 동원, 헐리우드 대작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와의 경쟁 속에서 400만 관객을 돌파했고, 당분간 이 기세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도 이번 연휴에 영화를 봤는데요, 감동적이더군요. 많이 웃었고, 많이 울었습니다.
영화는 '포스터에 황정민 얼굴만 봐도 영화 다 본 것'이라는 농담이 돌 만큼 전형적인 한국 영화였습니다. 그 점 때문에 비평적으로 그다지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상업적으로 본다면 이게 꼭 단점인것만은 아니죠. 웃기다가 울리는 한국 영화의 전통적 흥행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고, 수많은 산악 영화에서 익히 보았던 장면들을 한국인 배우들이 재연하고 있으며, '형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같은 뻔하디 뻔한 대사도 쉼 없이 쏟아집니다. 하지만 이는 영화가 울다가 웃고 싶고, 산악 영화의 스릴을 한국어로 즐기고 싶어하는 관객들의 주머니를 정확히 저격하고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저 역시 이 영화를 통해 느끼고 싶고 보고 싶었던 뻔한 것들을 다 누리다 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큰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전형적인 한국 영화'를 연출하는 과정에서, 한국 영화에서 발견되는 아주 전형적이고 고질적인 성차별적 요소들까지 영화에 고스란히 발견되었거든요. 저는 바로 그 점을 이 글을 통해 지적하고자 합니다.
'벡델 테스트'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 영화가 성평등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따져볼 수 있는 일종의 지표로, 해외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흔히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복잡한 테스트는 아닙니다. ① 이름이 있는 여성이 2명 이상 등장하는가. ② 두 여성이 서로 대화를 하는가. ③ 대화의 내용이 남성과 관련이 없는가. 이 세 가지에요. <히말라야>와 함께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경쟁중인 <스타워즈>는 이 테스트를 무난히 통과했죠. 하지만 <히말라야>는 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합니다.
우선 이름이 있는 여성이 둘 이상 등장하기는 합니다. 라미란이 연기한 산악인 조명애와, 주인공 박무택의 아내인 최수영(정유미 분), 그리고 엄홍길 대장의 아내인 최선호(유선 분). 이렇게 세 명이요. 하지만 이들 상호간엔 대화가 없고, 대화가 없으니 '남성과 연관 없는 대화' 또한 당연히 없습니다.
미국 만화가 앨리스 벡델이 1985년부터 연재한 만화 속 대사가 그 유래가 된 이 벡델 테스트에서 '남자와 무관한 여성 간의 대화'가 의미를 갖는 건 남성의 시선에 갇힌 여성이 아닌 여성이 여성 스스로 존재하는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히말라야> 속 세 여성 중 두 여성은 주인공 남성의 아내 역할에 머물러 있습니다.
주인공 아내 역할인 게 뭐가 문제냐고요 전혀 문제일 것 없습니다. <히말라야>의 감동 중 상당부분은 '사나이 우정'과 '의리'에서 나오고, 이 과정에서 여성이 뒤로 밀려나는 것은 이야기 흐름 상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문제는 이 주인공 아내들이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거의 그려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들은 그저 남편의 안위를 하염없이 걱정하거나, 가족을 등지는 선택을 하는 남편을 이해해주는 역할에 머뭅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존댓말이요. 영화 속 엄홍길 대장의 아내는 거의 80년대 연속극 수준의 존댓말 사용과 조신한 몸가짐을 하고 있고, 또 다른 주인공 박무택의 아내 최수영은 결혼 전 아직 남자친구인 무택에게 반말을 했다가 그에게 꾸중을 듣기도 해요.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반말 하는 남편'과 '존댓말 쓰는 아내'가 영화나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것을 이 사회의 가부장적 의식을 표면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고요.
그렇다면 주인공 아내가 아니라 산악인으로 등장하는 조명애(라미란)의 경우는 어떨까요. 여기에서도 비록 경우는 다르나 영화의 성차별적 인식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라미란은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라미란 연기'를 합니다. 소위 아줌마스럽고, 주책맞고, 짖궂고, 억척스러운 역할이요. 전 라미란이 계속 이런 류의 역할을 맡는 것 자체가 좀 의문입니다. 그가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던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그녀는 관능미를 마구 뽐내는 캐릭터였거든요.
어쨌든 라미란은 '라미란 연기'를 하면서 자신의 여성을 부정당하고 ("여기 여자가 어딨어"라는 남성 캐릭터의 농담이 직접 등장합니다) '여성스럽지 못한' 자신을 굳이 마릴린 먼로에 빗대 희화화합니다. 여성을 평가당하는 것 말고, 아주 실질적인 차별을 당하기도 하죠. 엄홍길 대장이 등반 파트너로 자신이 아닌 자신의 후배 산악인인 박무택을 자꾸만 선택하는 것에 대하여, 내가 여자라서 그런 것인지 생각했다며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직접 등장하거든요. 물론 마지막 장면에 산악인 조명애의 설움은 멋지게 극복되긴 합니다만.
'굳이 영화를 이렇게 정치적으로 봐야 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두 명 이상의 여자가 나와 남자와 상관없는 대화를 나누는'조차도 안되는 영화들만 보아야 하는 것은 정치적인 올바름을 떠나 좀 갑갑한 일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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