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최근 4번의 총선 중 가장 높은 투표율을 달성하며 21대 총선이 마무리됐다. 가장 높은 투표율이라 하지만 투표율은 60%대에 머물렀다. 예측한 거지만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300석 중 180석을 챙기면서 코끼리 정당에서 공룡 정당으로 변신했다. 제1야당은 선거 패배의 쓴맛을 톡톡히 보게 됐고 선거 결과가 나오기도 전, 투표일 당일 자정도 넘기지 못한 시점에서 당 대표가 사퇴했다.
1987년 이후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이 탄생한 이후, 여당이 과반 의석을 조금 넘긴 적은 있었으나 이처럼 거대 여당이 등장한 것은 오랜만이다. 승리한 여당도 과거 열린민주당의 분열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신중모드를 유지하고, 축제의 미소조차 마스크 뒤에서 소리 없이 짓고 있는 형국이다.
‘코로 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 분위기 속에서 국민은 ‘안정’과 ‘지원’을 바랐고, 이에 맞춰 여당은 긴급 생계지원금을 풀었다. 그러나 제1야당은 아무런 대안 없이 ‘정권 심판’만 외치다 오히려 ‘야당 심판’의 부메랑에 맞아 쓰러졌다.
◇자멸한 제1야당
① 공천에서부터 시작된 사분오열
‘코로나19’가 맹렬한 기세로 확산할 때만 해도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예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미래통합당의 기회로 여겨졌다. 그러나 미래통합당은 차려준 밥상을 자기 발로 차버렸다.
이번 총선의 공천을 시작할 때만 해도 개혁을 외쳤지만, 공천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고 당은 점점 사분오열됐다. 사실 개혁이라는 단어와 현 ‘미래통합당’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보수와 개혁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지 않은가? 이미 누가 봐도 공천 시점에서부터 모순이었으니, 선거가 제대로 치러질 수 있었을까?
② 리더십의 부재
리더십의 부재 문제는 심각했다. 오죽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후광이 없어서 선거에서 패했다는 말이 나올까? 실제로 미래통합당은 지난 20대 총선부터 연거푸 선거에서 패배하고 있다. 홍준표 당선자가 지적한 대로 “정치 초보의 대권 욕심으로 인한 참패”라는 표현이 실로 타당해 보인다.
황교안 전 대표가 삭발을 단행했을 때만 해도 야성을 지닌 강한 리더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 자들도 있었다. 덕택에 단번에 차기 대권 후보 2위로 등극했으니 욕심이 대권에 갈만도 했다. 그러나 선점할 수 있었던 종로 후보 선언마저 무소속 이정현 전 의원에게 뺏기고, 선거에서는 여당의 강력한 대권 후보 이낙연 전 총리에게 패배했다. 정치적 기선을 제압하긴 커녕 스스로 자신을 제압된 상황에 몰아갔다. 자신의 세력을 당내에 뻗치려는 고집과 억지 때문에 당은 분열됐고, 혁신의 메시지를 담아야하는 공천도 가소로운 사천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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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이후의 대안조차 없어
노무현 전 대통령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부터 역대 야당들은 ‘정권심판론’으로 선거에 임했다. 그런데 결과는 선거패배였다. 지방선거에서는 어느 정도 승리하기도 했지만, 대선과 총선과 같은 큰 정치무대에서는 힘쓰지 못했다.
왜냐하면 ‘일반국민’ 입장에서는(*여기서 ‘일반국민’은 정치적 편향성이 크지 않은 대다수의 국민을 지칭한다) 두 당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체적 대안없이 명분싸움에 불과한 ‘정권 심판론’에 등을 돌리기 일쑤였다. 결국 정권 교체는 대안 정치세력의 정치적 역량이 아닌, ‘탄핵’을 통해 가능했다. 촛불을 들고 하나둘 모인 시민들이 거대한 불바람을 일으키며 청와대를 집어삼킨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의 여파로 현재 대통령이 당선됐다.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장미대선 당시, 탄핵의 여세를 몰아 50% 이상의 지지를 애타게 호소했음에도 40% 초반에 불과한 지지율로 당선됐다는 점이다. 전체 투표율이 70% 초반이었으니, 전체 유권자로 환산하면 실제 지지율은 30%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야당이 된 전 자유한국당은 대안없이 지방선거를 맞이하며 속절없이 무너졌고, 이번 총선도 유리한 국면을 얻었으나 역시 ‘정권 심판론’만 내세우다가 ‘폭망’했다. 국민은 ‘정권 심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새로움’을 원하고 있다. “그래서 너희는 어떻게 할 건데?”라는 국민의 질문에 “쟤네 못해요!”라는 동문서답만 했던 셈이었다.
87년의 공룡 여당은 3당 합당을 통해 등장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180석의 여당의 의석수는 당시보다 더 의미심장하다.
◇이유 있는 여당의 승리
우선 ‘코로나19’에 대한 긴급 생계지원금 지원이 크게 작용한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대책으로 긴급 생계지원금이 지원되는 상황이다. 제1야당은 이를 최대한 미루고 싶었겠지만 대놓고 미룰 명분도 없었고 권한도 없었다.
게다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대부분 여당 소속인 관계로 지원금은 4월 초부터 풀리기 시작했고, 지원금을 통한 긴급 소비도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미 SNS를 통해 사용 후기가 넘쳐나 정책에 대한 홍보 효과가 쏠쏠했다. 대놓고 금권선거를 치른 건 아니지만, 사실상 가장 강력한 선거 유세나 다름없다.
게다가 여권의 무게 있는 정치인들을 통해 ‘기본소득’이라는 장기적인 정책 대안도 등장했다. 제1야당은 이를 대놓고 반대하지도 못했고 새로운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긴급 생계지원금을 받은 유권자와 그 가족들은 여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을까? 아직도 지원금을 풀지 않은 대구에서는 복당 수순의 홍준표 후보를 포함해 모든 의석이 미래통합당 후보로 채워졌다는 걸 생각해보면, 긴급 생계지원금과 선거 압승은 모종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은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과 국내 감소다. ‘코로나19’ 초기에는 상황이 여당에게 불리했다. 대통령의 조기 종료 발언과 발발 극초기의 미흡한 대응 등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다. 야당들의 공격에 모래성처럼 무너질 태세였다. 그러나 이후 수많은 의료진과 봉사자의 노력으로-절대 정부만의 힘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확산을 막아냈다. 아울러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유독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퍼졌다.
‘코로나19’ 초기에 한국을 비웃으며 떠났던 외국인들이 오히려 한국을 부러워한다는 소식까디 들려오며 여당의 ‘아킬레스건’은 ‘헤라클레스의 곤봉’으로 변신하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 이루어졌다. 당연지사 점차적으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적극적 대책을 내놓자 지지율이 올라갔다.
(출처: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압승은 잘해서가 아니라 못해서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다. 여당은 ‘코로나19’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그런데 이는 우연이다. 여러 정황이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이지, 결코 잘해서 기회를 잡은 게 아니었다.
야당들이 알아서 분열했고, 리더십이 제대로 서지 못했으며, 어떤 대책도 먼저 내놓을 수 없었다. 오히려 어려운 시국에 ‘기본소득’이라는 말이 나오면 포퓰리즘이라 비판하면서 스스로 제 무덤을 팠다.
미국의 시민운동가이자 작가인 사울 D. 알린스키는 저서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에서 “많은 경우에 보수주의자들은 자기들이 믿는 것을 실천하는 데 더 철저하고 진보주의자들은 행동보다는 생각하고 논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보수는 말도 없고 행동도 없으며–이번 선거 때 여실히 보여줬다, 진보는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코로나 조기 종료 발언이나, 비례대표 선정 시 실수 등. 즉, 보수라 자처할 뿐 보수가 아니었기에, 제1야당이 보수연합을 꿈꿔봤자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대안이 없으니 행동할 거리가 어디 있었겠는가?
◇<300>은 영화일 뿐인가?
영화 <300>은 스파르타의 용사 300명이 그리스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다해 페르시아 대군을 막아낸다는 내용의 영화다. 역사적으로 그리스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누리게 된다.
공교롭게도 300이라는 숫자는 우리나라 국회의원 정수와 같다. 300명의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앞으로 대한민국을 어떻게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아가게 할 것인가? 특히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보여줄 수 있을까?
앞선 의문과 더불어 안타까운 현실은 이번 선거도 여전히 ‘정책’과 ‘미래의 비전’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늘 보았듯 ‘지지’와 ‘심판’이라는 두 아우성의 대결이었다. 이미 지원금이라는 달콤한 꿀을 입에 머금은 국민은 ‘지지’를 선택했다. ‘지지’를 택해야 더 큰 꿀단지를 줄 것처럼 유혹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 또한 과정과 결과를 볼 때 양지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그늘이 더 드리워진 듯하다. “다음 번에는...”이라는 기대를 하기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높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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