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한 창업대담(13)] 부안수협 치도 어촌계장 송기철

윤준식 기자 | 기사입력 2018/02/06 [04:36]

[비상한 창업대담(13)] 부안수협 치도 어촌계장 송기철

윤준식 기자 | 입력 : 2018/02/06 [04:36]
귀농귀촌에 이어 귀어귀촌도 창업의 한 방편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귀농이 농촌을 목적지로 하는 것이라면 귀어란 어촌을 목적지로 하는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어촌 이외의 지역에 거주하던 어업인이 아닌 사람이 어촌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어촌 이주 이후 어업에 종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귀농에 대해서는 사례가 많이 누적되어 있고, 성공적인 귀농을 한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통해 경험담 또한 풍부하게 들어볼 수 있지만, 귀어귀촌의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이에 지난 2004년 우연한 계기로 귀어귀촌하여 지금은 어촌경제 활성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는 부안군 치도어촌계 송기철 계장님을 만나 어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치도리어촌계는 도시-어촌교류 활성화 공로로 해양수산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사진 속 인물이 송기철 어촌계장.

(송기철 제공)

 

¶ 치도리로 내려가 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 치도리가 제 고향인데 처음부터 귀어를 목적으로 내려간 것은 아니었어요. 그때가 2004년 쯤이니까 이때만 해도 귀농귀촌 이야기도 나오기 전인 시절이지요.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서울, 인천 등지에서 자영업을 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고향동네에 갔다가 동네에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을 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 어려움을 해결하겠다고 발벗고 나섰다가 오래 머무르게 되었고 정착하게 된 겁니다.

 

¶ 요즘 이야기하는 귀농귀촌, 귀어귀촌과는 많이 다르다고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지금 어촌계장을 하시는 것을 보니 고향에 머무르시면서 굉장히 적극적으로 일하셨던 것 같습니다.

 

☞ 처음 어촌계장을 한 것은 2006년이었어요. 어촌계장도 임기가 있어 2010년까지 4년 동안 봉사하고 이후 4년을 쉬었습니다. 지난 2014년부터 다시 어촌계장을 맡아서 일하고 있어요.

 

¶ 그런데 어촌계장의 일은 어떤 건가요? 우선 ‘계장’이라고 하니까 대기업이나 관공서 느낌이 납니다.

 

☞ ‘어촌계’에서 ‘계’는 ‘맺을 계(係)’,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친목을 도모하는 그 ‘계’를 떠올리면 됩니다. 원래 옛날부터 농어촌에 있던 동네에서 하는 ‘계’를 말하는 겁니다. 그게 어촌 마을별로 있는 거지요.

 

어촌계는 어촌의 삶의 질 향상이라든가, 소득창출을 위해 함께 일합니다. 그밖에 국가에서 어민들 먹고 살라고 땅을 내주는 경우가 있어요. 그걸 활용해서 돈벌이를 해서 어촌이 잘 살 수 있도록 정부가 특혜를 준 건데요, 그걸 관리하는 것도 어촌계장의 임무입니다.

 

*편집자 주: 어촌계(漁村契)수산업협동조합(수협) 조합원들이 지구별 수협 관내마다 만든 조직입니다. 현행 수산업협동조합법에 따라 지구별 수협 조합원은 행정구역과 경제권을 중심으로 어촌계를 조직할 수 있으며, 어촌계의 생산성을 높이고 생활 향상을 위한 공동사업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 아니, 농촌이 아니라 어촌인데 땅과 관련있는 일이 있나요?

 

☞ 저희 어촌계는 옛날부터 어장이 없었어요. 그래서 갯벌에 나가 바지락 캐고 굴도 따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죠. 큰 돈은 못 벌어도 타동네에 비해서 열심히 산다고 그럴까요? 특별하게 두드러지는 돈벌이는 없기에 근검절약하고 날마다 쉬지 않고 일하는 생활이 박힌 곳입니다.

 

저희가 얻은 땅이란 게 갯벌을 말하는 건데요, 저희 마을은 바지락을 했어요. 지난 2010년 같은 경우에는 10억원 정도 매출이 날 정도로 바지락을 많이 생산했지요.

 

¶ 10억원 매출이라면 굉장히 큰 성과가 나온 것이로군요?

 

☞ 2010년에 10억이 넘게 생산되었지만, 몇 년이 지난 2013년 여름에는 태풍도 오고 폭염이 심하고 하니 바지락이 떠내려가거나 폐사해 엄청난 손해를 봤어요. 종폐만 5억 이상 뿌렸는데도 소출을 못하니까 난리였죠. 바지락은 2년을 키우기 때문에 2년에 한 번 채취하기 때문에 한 번 실패하면 2년을 또 투자해야 하는거죠. 한 번 크게 손해를 보니 다시 종패를 뿌릴 여력도 없고 무엇보다 어촌계원들이 또 실패할까 두려워하는게 문제입니다.

 

¶ 그럼 지금 바지락 양식은 어떻게 된 건가요?

 

☞ 무엇보다 어촌 인구가 줄고 고령화되니 바지락 채취할 사람이 없어요. 채취만 한다고 다가 아니예요. 갯벌에서 채취하면 운송 수단이 있는 곳까지 운반해야 하는데 운반할 사람도 없어요. 그래서 어렵습니다. 바지락 사업을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어요.

 

영광굴비, 법성포굴비로 알려져있는데 과거 위도 앞바다에서 잡히던 참조기로 인해 생긴 명성이다.

(출처: 영광군청 홈페이지)

 

¶ 지금 치도리 어촌계의 규모가 어느 정도나 되나요?

 

☞ 지금 저희 마을의 인구는 총 130명입니다. 이 중 어촌계원은 110명. 나머지 20명은 타지 사람이거나 어린이들입니다. 전에는 130명이 아니라 130호가 있었는데, 인구도 많았고... 초등학교도 650명 규모였는데 지금은 학생은 16명 뿐인데 교직원은 24명인 상황입니다.

 

¶ 지금은 이렇게 축소된 어촌이지만 좋았던 시절도 있지 않았을까요?

 

☞ 우리 마을의 특산물이 뭔지 아시나요? 바로 조기입니다. 조기를 소금에 절여 말린 게 굴비인데요, 사람들이 영광굴비라 하는 것은 위도 앞바다에서 잡은 조기를 법성포에서 건조한 걸 말하는 겁니다. 원래 이곳 위도는 전라남도 영광군에 속한 곳이었는데 1963년에 행정구역이 바뀌며 부안군으로 이관된 거죠.

 

¶ 영광굴비, 법성포 굴비, 이런 게 산지를 뜻하는 게 아니었군요? 영광군 법성포가 조기와 굴비가 모이는 유통 거점이라는 의미로군요? 파주 장단콩처럼 말이죠?

 

※편집자 주: 장단콩장단콩이라 하면 파주시 장단면에서 생산된 콩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등에서 생산된 콩을 임진강과 한강이 맞닿은 장단면으로 옮겨와 수운을 활용해 전국으로 유통한 데서 콩의 집산지인 장단을 이름붙여 장단콩이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 치도리가 작은 섬마을로 여겨지지만 1930년대에는 조기와 굴비로 번성하던 곳이었습니다. 조기철이 되면 조기를 유통하던 파시가 서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위도 칠산리 조기라고도 했는데, 칠산리란 7개의 산, 즉 7개의 섬이 있어 불리던 명칭이었어요. 그 중에서도 우리 마을은 배들이 정박하는 곳이라 늘 북적대던 곳이었습니다.

 

조기잡으러 온 배가 1,000여척 몰렸는데 전라도 배만 온 것이 아니라 평안도, 함경도, 경상도 등 8도에서 조기배가 몰려왔습니다. 일본에서 온 배도 200여척이나 되었다니 어마어마 하지요. 뱃사람들만 해도 수천 명이 넘었고, 이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다방만 25개나 되었어요.

 

3~4일이면 배들이 조기를 잡아 만선해 돌아오는데 당시에는 냉장기술이 없었으니 염장을 해야 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독을 만들어 거기에 조기를 담고 천일염을 뿌려 염장을 했습니다. 신안 비금도, 흑산도에서 소금을 실어오는 배들이 이곳으로 오다가 소금의 무게를 감당 못해 가라앉기도 했을 정도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조기가 잡혔다는 소리입니다.

 

¶ 그런데 요즘 조기 안 잡힌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 이제 위도에서는 조기를 구경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수온이 달라져서 그래요. 지금도 멸치는 잡는다고 하는데, 조기가 잡히지 않으면서 어업이 쇠퇴해버렸어요. 대신에 양식할 수 있는 바지락이나 해태(김)의 비중이 커졌어요.

 

¶ 그렇다면 어촌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 새로운 방안을 마련해야 하겠군요.

 

☞ 전국에 어촌계가 2천여 개 있는데, 이 중 자율관리어업공동체가 1,500개입니다. 그런데 2016년 치도리 어촌계는 전국 자율관리 선진공동체 5군데에 선정되었습니다. 그 결과 7억 1,400만 원을 지원받았는데 이 자금으로 바지락 가공이 가능한 수산물 가공공장 건축에 들어갔습니다. 설계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앞으로도 어촌특화사업을 기획해 정부에 신청하는 등 어업의 산업화를 위해 더욱 노력하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신선하고 맛있는 바지락을 도시의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고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인구도 130명 밖에 안 되고 극심한 고령화를 겪고 있는 어촌 마을이 자율관리 선진공동체로 선정되었다는 것이 대단하다 여겨집니다. 좀 다르게 본다면 전국 5위 안에 드는 어촌계라는 소린데요, 비결이 있으신 건가요?

 

☞ 특별한 비결은 없고 우선 투명한 경영이 기반이 된 것 같습니다. 앞서 땅 이야기를 했는데, 어촌계 자구적으로 사업을 벌이지 않아도 땅을 임대하는 것만으로도 수익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돈이 된다는 걸 아니까 이권에 개입하려는 사람들도 나와요. 투명한 경영과 자금관리가 마을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노력하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어촌계장의 역할과 관련이 높습니다. 과거에는 어촌계장 혼자 모든 것을 주물럭거려 폐쇄성이 짙었습니다. 총회를 한다고 해봤자 1년에 한 두 번이고 다들 일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이조차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따라서 어촌계장이 나서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고 넘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살림을 모두 공개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작업이 제가 매월 한 번씩 내고 있는 소식지입니다.

 

¶ 반상회보같은 마을 소식지를 만들었단 말씀이로군요? 직접 제작해서 배포하시려면 손이 많이 갈 텐데요?

 

☞ 요즘은 카카오톡으로 보내면 되기 때문에 훨씬 좋습니다. 우리 어촌계에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게 보냅니다. 수협, 군청, 도청, 심지어 해수부까지 우리 어촌계와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관계자들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꾸준히 보낸 덕에 치도리 어촌계에 대한 인식도 좋아졌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있습니다.

 

그밖에 총 9군데의 기관, 단체와 자매결연을 맺어 마을 주민들과 도시인들의 교류를 촉진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오시는 분들이 찾아와 마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이미용, 건강진단, 문화활동 등으로 봉사해주고 계시는데, 봉사단이 오는 날은 마을 분들이 마음을 열고 신명나게 같이 어울려 놀기도 합니다. 이런 점이 단조로울 수 있는 어촌마을을 활발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송기철 어촌계장이 월1회 발행하고 있는 소식지. 카카오톡을 활용해 관련인 모두에게 배포하고 있다.

(송기철 제공)

 

¶ 귀어를 하시려는 분들에게 조언해 주신다면?

 

☞ 정부차원에서도 귀어를 권장하려 하고 있습니다. 바뀐 수협 규약에 따르면 귀어를 해서 5년이 지나면 수협 조합원으로 가입을 하든 않든 무조건 어촌계에 가입시키라는 강제규정이 있습니다.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귀어를 한다 하면 정부에서 귀어자금으로 3억을 지원해 주고, 생활을 위해 집을 살 수 있는 구입비로를 5천만원을 줍니다. 그런데 귀어를 희망하는 분들이 정부자금 3억을 받아와서 할 만한 게 없다는 사실입니다.

 

3억을 가지고 어선업같은 걸 한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자망을 한다든가 꽃게잡이만 한다든가하면 그 자금으로도 정착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꽃게잡나 자망만 가지고는 잡을 수 있는 고기가 한정이 되어 있습니다.

 

해태(김) 양식을 한다면 3억 가지고는 얼마 버티지 못합니다. 40헥타아르 정도의 면적에서 해태 양식을 하자면 약 15억 정도가 들어갑니다. 돈 3억이면 큰 돈이지만, 실질적으로 어촌에서 뭘 해보려 하기엔 적은 액수입니다.

 

¶ 그러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 귀어 이후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기 이전에 귀어를 희망하는 마을의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농촌이나 어촌은 공동체 의식이 강한 곳입니다. 같이 더불어 살려 해야 하는데 육지에서 온 사람들은 그런 습관이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귀촌한 사람들끼리만 어울리고 생각의 차이에서 시작된 갈등을 부추기고...

 

그러다보니 귀어를 위해 어촌에 왔다고 하면서도 마을에 정착을 못하고 있습니다. 우선 그런 것부터 적응해 나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마을 공동체와 힘을 합해 자신의 일을 찾아도 늦지 않습니다. 꼭 어업을 하지 않더라도 해야할 일이 많거든요.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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