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화전가>. 명동예술극장 (국립극단 제공)
연극 <화전가>. 명동예술극장 (국립극단 제공)
인간 개인이나 소집단의 삶을 탐색하는 역사 연구의 방법론. 또는 그렇게 탐색되어 기술된 역사, 미시사.
‘엄마가 어렸을 땐 말이야’로 시작되어 흘러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며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낸다. 바로 연극 ‘화전가’처럼 말이다. ‘화전가’는 지난 2월에 관객들을 찾아오려 했던 연극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개막이 미뤄져 지난 8월 6일에야 겨우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화전가에는 남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환갑을 맞은 김씨를 중심으로 김씨와 함께 인생을 살아온 고모, 김씨의 세 딸, 집에서 집안일을 돕는 할매와 할매의 딸, 그리고 그들의 며느리까지 총 9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페미니즘에 초점을 맞춘 연극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연극은 9명의 여성을 통해 해방후 6.25 직전까지 격변기를 살아온 인간의 삶을 묘사하는 데 집중했다. 이들의 이야기 속에 한국의 근현대사가 숨겨져 있다. 이들이 살아온 삶 자체가 역사의 한 줄기며 앞으로도 살아있을 날들이 격변기의 중심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연극 <화전가>. 명동예술극장 (국립극단 제공)
연극 <화전가>. 명동예술극장 (국립극단 제공)
연극 <화전가>. 명동예술극장 (국립극단 제공)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김씨네 집안, 만주에서 죽은 할매의 남편 이야기는 해방 이전 독립투사로 살았던 삶을 상상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큰아들은 병으로 죽었으며, 둘째 아들은 옥살이 중이다. 첫째 딸의 남편은 북에서 혁명운동 중이고, 둘째 딸의 남편은 시대의 흐름을 잘 타고 승승장구한다. 막내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공부중인 학생으로 등장한다. 연극은 수많은 사람들의 기구한 사연을 통해 관객들이 미시사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도록 짜여졌다.
스토리의 중심은 어머니 김씨의 환갑. 그동안 뿔뿔이 흩어져 있던 식구들이 한데 모인다. 이때 김씨는 환갑잔치 대신 화전놀이를 제안한다. 화전놀이란 삼월 삼짇날 경치 좋은 곳에 가서 음식을 먹고 꽃을 보며 노는 꽃놀이를 말한다. 저마다 아껴두고 있던 예쁜 옷들을 꺼내 입고 꽃놀이를 준비하는 과정이 귀여운 소녀들 같다.
이들은 화전놀이가 끝나고 난 후, 다시 뿔뿔이 흩어져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다. 남편을 보기 위해 북으로 돌아가는 첫째의 모습은 6.25 전쟁으로 인해 이산가족이 될 것을 짐작하게 한다. 극 중에서 건강이 편치 않았던 김씨를 통해 관객들은 이것이 그녀의 마지막일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꽃놀이로 즐겼던 평화도, 김씨와 함께하는 날들도 전쟁 속에 파묻혀 버린다는 사실 말이다.연극은 언제 다시 평화로 돌아올지 모를 불안함을 감춘 채 막을 내린다.
연극 <화전가>. 명동예술극장 (국립극단 제공)
연극 <화전가>. 명동예술극장 (국립극단 제공)
연극 <화전가>. 명동예술극장 (국립극단 제공)
이번 공연에서 공간을 분리하는 무대활용에 눈을 떼기 어려웠다. 또한 <화전가>라는 제목에 걸맞는 배우진의 옷차림 역시 주목할 만한 요소. 무대에 꽃이 화려하게 등장하지 않지만, 그보다 곱게 차려입은 한복으로 자태를 뽐내는 9명의 배우가 꽃으로 느껴졌다. 여성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력이 관객들이 무대에 몰입할 수 있는 엄청난 흡입력을 이끌어냈다. 인물이 지닌 각기 다른 한을 표현해내는 배우들의 연기가 2시간 20분이라는 시간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예술은 때론 잊혀졌던 사실을 대중들에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화전가>는 분단과 6.25라는 근현대사의 비극을 잊고살았던 우리의 삶에 돌을 던진다. 이는 다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내야 할 지 고민하게 한다. 가장 힘든 시기를 살아갔던 김씨네 9명의 여성을 통해서 말이다.
연극 <화전가>. 명동예술극장 (국립극단 제공)
연극 <화전가>. 명동예술극장 (국립극단 제공)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