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 입사하자마자 업무파악도 못한 상황에서 부하직원의 사표를 받아와야 하는 위기부장의 사연은 독자 여러분 각각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
누군가 지독하게 꼬인 운명이라 생각할 것이다. 초임 중간관리자에게 정말 저런 모든 우연의 일치가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반문할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2회에서 소개한 내용은 실제 있었던 사연을 조금 각색한 수준일 뿐, 실제 있었던 일이다.
위기부장의 사연은 운 좋게도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A지점 김부하씨의 태도에 따라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우선 부당해고 문제로 불거져 고용노동부를 끼고 노사갈등과 함께 지루한 진실공방이 이어졌을 수 있다. 사측에서는 위기부장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으며, 이는 이제 시작한 중간관리자로서의 경력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 상사로서 부하직원을 감싸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후 다른 부하직원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업무성과가 나오지 않는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2회의 에피소드는 중간관리자라는 애매한 위치에서의 리더십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하나하나의 상황에 대해서 따져볼 필요도 있고 가상으로라도 몇 가지 설정을 해보며 꼼꼼히 복기하는 것은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우선 회사가 직원을 해고하는 행위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고’를 떠올릴 때면 ‘정리해고’를 먼저 생각하는데 이는 ‘IMF 사태’라 불리던 부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의 세도정치와 쇄국정책으로 산업근대화에서 뒤쳐진 슬픈 역사를 탓에 대한민국의 근대산업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태동됐다. 그러다보니 기업문화의 형성 또한 일본의 기업문화를 답습했다. 그 결과 기업과 기업에 종사하는 사원들을 거대한 가족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이것이 평생직장의 개념을 만든 것이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회사에 입사해 정년이 될 때까지 성실히 근무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이런 것만 보면 평생직장 문화는 고용의 안전성을 제공하는 좋은 것처럼 여겨지고, 그때 그 시절이 좋았던 것처럼 보인다. 엄밀히 말하면 기업이나 노동자에게 최선의 제도라고 보기 어렵다. 평생직장 문화의 가장 큰 병폐는 이직을 리스크로 여기게 만든다. 가족을 떠났다는 의미에서 이직해 온 자를 색안경을 끼고 보게 만들었고, 이직자 또한 새로운 가족 사회에 편입되기가 어려웠다. 당연한 일이지만 해고를 심하게 두려워했고, 회사와 조직의 부당행위에 눈을 감아야만 했다.
외환위기는 ‘해고’를 재인식하게 만드는 계기였다. 업무상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노동자도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10년 더 보태면 한 세대에 해당하는 기간을 채우게 된다. 어느 틈에 노동자에게는 이직과 전직, 희망퇴직과 조기은퇴 등이 당연한 것이 되었고, 기업도 보다 유연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인력충원 방식이 다양화되고 보다 치밀한 인사관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한편 경영상의 이유에 따른 정리해고를 빙자한 부당한 해고를 막으려는 안전망도 만들어졌다.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대책도 심화되었고, 노동조합의 결성과 활동 등도 보완책이 되고 있다. 노동자의 해고가 생각보다 어렵다고 느끼다 보니 기업들은 정규직 채용을 꺼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정리해고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노동자가 해고당하는 일을 성립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조직 내에서 불화를 일으키거나 성과를 저해하는 노동자, 기업에 상당한 손실을 입힌 노동자에 대해 최종적으로 책임을 묻고 해고를 결정할 수 있다. 앞선 2회에서 위기부장이 처한 상황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위기부장이 처한 상황은 절차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다. 노동자를 해고하는 이유와 근거가 명료하지 않기 때문이다. 2회에 등장한 김부하씨가 회사에 끼친 손해가 있다면, 혹은 회사의 업무지시를 빈번히 어겨 문제를 끼친 점이 있다면 견책(譴責), 감봉(減俸) 등 공식적인 징계조치가 있어야 한다.
‘견책(譴責)’이란 잘못을 지적하고 꾸짖어 반성하게 만드는 징계 형태로 보통 ‘시말서(始末書)’를 쓰게 하는 조치를 말한다. 시말서의 한자를 풀어보면 ‘시작과 끝을 기록한 문서’라는 의미인데, 업무 과실에 대한 전반적인 경위를 쓰게 만들기 때문에 붙여진 말이다. 이런 문서를 남긴다는 것은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게 함으로써 잘못이 누적될 경우 그 다음의 처벌에 대한 근거를 삼기 위해서다. 이보다 더한 잘못을 반복할 경우 일정기간 급여를 삭감하는 형태의 징계 방식인 ‘감봉(減俸)’, 보다 심한 경우에는 일정기간 직무에서 배제하고 보수도 주지 못하는 ‘정직(停職)’ 처분도 내릴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징계처벌이 기업 내에 절차로 자리 잡았느냐, 입사한 노동자가 이런 징계 절차를 알고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을 겨우 징계 절차가 진행될 수 있음을 알고 있느냐다. 통상 노동자들은 입사 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며 전달받게 되는 ‘취업규칙(就業規則)’을 통해 징계절차에 대해 전달받는다.
의외로 많은 기업들이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전달하는 수준에서 끝내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내용이 근로기준과 조건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보니 근로계약서의 TMI 버전이라 생각하고 회사의 담당자나 노동자 모두 주고 받는 선에서 마무리짓는 경우가 많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총무팀에서 업무를 포괄하다보니 인사에 대한 내용을 꼼꼼히 챙기지 않는 때도 있다.
그러다보니 징계에 대해 무감각한 경우가 많다. 문제를 일으킨 직원을 어떻게 징계할지, 문제를 일으켰을 때 어떻게 징계 받는지 의외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2회의 위기부장이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표자가 특정 직원을 지목해 해고했으면 좋겠다고 구두지시했을 것이고, 이사 입장에서는 징계절차를 이끌어가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직급을 타고 내려가며 누가 해고 임무의 책임을 질 지 전전긍긍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과연 위기부장에게 정답은 무엇이었을까?
“이사님, 이 건은 징계위원회를 통해 결정된 사안입니까?”라는 질문이 아니었을까? 회사 내에서 징계위원회가 열린다는 것은 김부하 씨의 상황을 놓고 공식적인 문책이 이루어지며, 김부하 씨에게도 소명의 기회가 열린다는 것이다. 이는 기록을 남겨지기 때문에 차후 해고를 해야할 명분이 되는 것은 물론, 김부하씨가 잘못을 뉘우치고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마지막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팁을 이야기하자면, 해고를 통보할 때는 반드시 문서로 통보하게 되어 있다는 점. 적어도 이메일로라도 공식문서를 보내 해고의 사유를 공식화 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위기부장은 이 점을 알리고 해당 문서가 인사권을 갖고 있는 사람을 통해 발신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옳다. 옳을 뿐만 아니라 갓 입사한 회사에서 상사와 부하들 사이에서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카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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