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덕업상권(0)] 덕업상권(德業商勸)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윤준식 기자 승인 2021.08.30 08:35 | 최종 수정 2021.08.30 15:56 의견 0

필자는 오랫동안 창업자들에 대한 다양한 취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창업자들 사이의 새로운 분위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창업자들 사이에서 서로의 창업을 돕는 새로운 흐름의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현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창업자들의 커뮤니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상우회, 상인회, 조합, 협회 등의 이름을 지닌 커뮤니티는 지금도 많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런 커뮤니티들은 친목 단체나 이익단체 성격에 머무르고 있을 뿐, 창업 자체에 대한 기능성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같은 상권이나 동종 업체 간의 교류를 도모한다든가 집단의 이익을 지키고 대변하기 위한 활동까지는 기능했지만, 이들이 창업 활성화까지 나서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 금융위기와 구조조정이 불러온 생계형 창업 열풍

현재까지 논의되어 온 창업은 일자리 창출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997년 IMF 금융위기 이후 평생고용이 무너지고, 취업이 힘들어지며 창업이라는 말이 보편적인 언어가 되었습니다. 당시 심각한 외환위기를 타개하고자 정부가 나서 산업간 구조조정에 개입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창업활성화도 정부의 몫이 되었습니다. 벤처기업 지원, 초고속통신망과 국민PC 보급은 빠른 속도로 대한민국 산업 전반을 고도화했고, 어렵게만 여겨지던 창업의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 지나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며, 10년 사이 창업에 대한 생각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미 금융위기 시절 구조조정 여파로 이미 소상공인 수가 빠른 속도로 급증해 기존까지 알려진 창업아이템으로는 창업이 극도로 어려워진 상황이었습니다.

장년층은 조기퇴직이 일반화되며 ‘이제는 누구나 한 번 쯤 창업을 해야만 하는 시대’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청년층은 ‘88만원 세대’, ‘n포 세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취업의 문이 좁아지며 사회진출이 늦어질 대로 늦어지기 시작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2Ku_VFWvP0

◆ 창업은 쉬워졌지만, 성공 창업은 더더욱 어려워지고...

정부가 주도하는 창업 활성화 흐름도 한계를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트렌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데, 입법과 정책이 이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입법과 행정을 담당하는 주체들은 창업과 그 이후의 과정을 경험해보지 못한 경우가 99%입니다. 이들이 복잡다단하게 변화하는 창업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충분한 창업환경을 조성해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2번의 경제 위기를 겪으며 창업환경은 더욱 경쟁이 치열해졌고 창업자는 더욱 고도화된 창업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창업시장이라 부르는 또 다른 장이 형성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창업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쓰이기 시작한 지 2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며 변화한 것은 무얼까요? 절차상의 창업은 이전보다 훨씬 쉬워졌습니다. 창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성공 창업’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코로나19 상황이 매우 심각합니다. 하루 확진자 2천 명을 넘어가기도 하는 상황 속에 630만 소상공인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절박합니다. 제한된 영업환경으로 인해 매출은 격감했고, 사람들이 모여 이용하는 직종은 폐업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창업은 지속된다

그렇다고 해서 창업이 위축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창업으로 도전하는 사람들은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시대에도 그 시대가 요구하는 형태의 비즈니스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꾸준한 수요가 있는 업종은 여전히 존재하고, 뉴노멀 라이프스타일에 적응한 창업 아이템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말 기준의 국세청 발표한 ‘100대 생활업종 월별통계’는 이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합니다. 전국의 '커피음료점' 등록업체는 7만 2,686개로, 전년 동월(6만 2,933개) 대비 15.5% 증가한 것으로 발표되었고, 교습소, 공부방, 패스트푸드점, 헬스클럽 등도 증가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생활 속 틈새 창업이 강화되었다는 분석입니다.

이제 이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지역 창업 커뮤니티’로 다시 돌아가고자 합니다. 창업이 고도화되고 성공 창업으로 가는 길이 어려워지자, 창업자들 사이에서는 경쟁보다 협력이 공통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의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동종업체끼리는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며 고객의 니즈를 세분화하며 공존하는 방향을 찾아가고 있고, 이종 업체끼리는 서로의 조화를 통해 상권을 형성하는 형태로 변화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역 창업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 지역 창업 커뮤니티의 등장

이미 필자는 지난 8월 초 균형발전포털 <NABIS> 뉴스레터 커버스토리로 “지역 창업 커뮤니티를 주목하라”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지역 창업 커뮤니티’의 활약상을 1차 소개한 바 있습니다.

[NABIS 뉴스레터 15호 커버스토리] 지역 창업 커뮤니티를 주목하라

https://www.nabis.go.kr/coverStoryDetailView.do?comIdx=465&gbnCode=COM&refCode=140&businessType=&menucd=320&pageIndex=1&searchCondition=title&searchKeyword=

‘지역 창업 커뮤니티’의 등장은 누군가가 캠페인을 전개했거나 정부가 주도해서가 아닙니다. 일종의 집단 무의식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이런 상황 속에서 ‘덕업상권(德業相勸)’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배운 내용인데, 창업자들을 통해 새로운 의미의 향촌 사회가 구성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설을 세우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덕업상권(德業相勸)’이란 조선 시대 향촌 사회의 자치규약이었던 ‘향약(鄕約)’의 4대 강목 중 하나로 “좋은 일은 서로 권한다”는 의미입니다.

각 지역에서 속속 두드러지고 있는 ‘지역 창업 커뮤니티’의 활약상을 살피다 보니 향약에서 말하는 ‘덕업상권(德業相勸)’의 ‘덕업(德業)’의 의미를 재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덕업(德業)’이 말하는 ‘좋은 일’은 현대 사회에서는 ‘창업(創)’으로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요? 4차 산업혁명 이래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속에서 자신의 생계를 도모하는 것을 넘어 다른 이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창업이야말로 정말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 덕업상권(德業相勸)에서 덕업상권(德業商勸)으로

창업을 서로 권하고 성공 시켜 나간다는 의미에서 창업 커뮤니티가 기존의 향약의 ‘덕업상권(德業相勸)’의 개념과 유사한 새로운 규범을 집단 무의식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비즈니스를 서로 권하고 돕는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네 글자 중 ‘서로 상(相)’자를 ‘장사 상(商)’자로 바꿔 ‘덕업상권(德業商勸)’이라 조어(助語)한다면, ‘지역 창업 커뮤니티’가 하는 일을 보다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판데믹 상황은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골목상권, 동네 상권을 형성하며 마을과 도시의 기초적인 필요를 채우며 일상을 유지해 주는 소상공인들의 활동은 귀하게 느껴집니다. 여기에 소상공인과 다름없는 스몰비즈니스 레벨에서 스케일업을 꿈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분위기의 스타트업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시사N라이프>는 덕업상권 프로젝트라는 명칭으로 ‘지역 창업 커뮤니티’를 취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전달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창업’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 나가고자 합니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