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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논단] 인문학 투자 이전에 인문학 스스로 가치를 증명해야...

칼럼니스트 이완 승인 2022.07.28 11:51 의견 0

간혹 인문학자 중에, 정부가 유럽처럼 인문학에 투자를 안해서 우리나라 인문학이 발전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단한 착각입니다. 서양 인문학은 정부 지원으로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긴 시간 동안 스스로 성장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장악한 겁니다.

서양 인문학은 세상을 설명하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며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서양 인문학의 힘은 그 실천 능력에 있습니다. 물론 서양에도 그런 실천적인 면에서 상당히 멀어진 인문학자가 많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되지 않고, 정부 지원과 인세로 먹고살며 순수 인문학에만 매진하려는 인문학자는 가난해도 할말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순수 인문학자가 가난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소수의 팬덤만 좋아하는 무쓸모 글쟁이라서 그럽니다.

생각은 문제해결의 도구입니다. 도구로서 잘 기능하지 못하는 생각, 실천 문제에 효과적이지 않은 생각은 가치 없습니다.

정작 뛰어난 인문학자들 중에는 경제적 가치를 스스로 창출한 사람이 많습니다. 실제로 인문학을 발전시킨 사람들 중에 순수 인문학자는 많지 않습니다. 귀족이나 부유층이 아닌 순수 인문학자는 근현대에 들어서 늘어났을 뿐,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현대 순수 인문학자들이 '에티카가 현대 사회에 끼친 영향과 의의' 같은 제목으로 아무도 인용하지 않고 어디에도 도움되지 않을 논문을 쓰며, 신자유주의적 황금 만능주의가 인문학을 죽이고 있다고 불평할 때, 그들이 인용한 에티카를 쓴 스피노자는 안경알을 갈며 살았습니다.

서양 철학이 꽃핀 고대 그리스·로마에서도, 정부 지원으로 연구하는 순수 인문학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스·로마 철학자들은 귀족이었거나, 스스로 제자들을 끌어모으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천년간 유럽의 철학, 과학, 신학을 지배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부모가 마케도니아 왕궁에서 일하던 사람이었고, 본인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이자 그리스의 정복자인 필리포스 대왕의 오랜 친구였습니다.

라틴어 최강자이자 보수적 공화주의자인 '키케로'는 귀족이자 고위 공무원이었고, 뛰어난 작가였습니다. 키케로가 쓴 글은 지금도 고전 라틴어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부모가 교육을 잘 시켜주기도 했지만, 스스로 피렌체 공화국의 서기관이라는 고위 공무원 자리를 꿰찬 사람입니다. 희곡 작가로도 유명한 사람이죠.

인식론계의 학살자 '흄'은 강단 철학계에 속하지 못한 아웃사이더였습니다. 흄은 역사책이 잘 팔려서 생활을 꾸려갈 수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자들은 지금으로 따지면 유튜브 크리에이터 같은 존재였습니다. 스스로 연구한 지혜로 제자들을 모으고 학파를 형성한 사람들이죠. 누가 먹여 살려준 게 아니라, 스스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실 속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도 않으면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진리를 찾겠다며 순수 인문학에만 매진하려는 사람은 빈곤을 각오해야 합니다. 마르크스처럼 등쳐먹을 사업가 친구가 있다고 해도, 친구 등쳐먹으며 인문학에 매진하려는 부도덕한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합니다.

정부 지원을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 실천적, 경험적으로 가치를 증명해야 합니다. 언제나 주장하는 쪽에 증명할 책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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