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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in] 플레이어에 대한 고민 - 창업으로 혁신하는 로컬 ③편

- ‘창업으로 혁신하는 로컬’ 세 번째 이야기: 로컬활성화를 좌우하는 2가지 미학

윤준식 편집장 승인 2024.07.01 15:54 | 최종 수정 2024.07.01 16:47 의견 0

만약 기업활동이 로컬활성화의 대안이 된다면, 창업의 활성화는 지역을 혁신하는 계기가 될 겁니다. 덩치가 있는 기업은 지역의 산업을 선도해 중장기적인 경제생태계를 구성하기 때문에 항상 주목받습니다. 지자체부터 이런 기업을 유치하고자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럼 작은 기업들, 나아가 소상공인이나 1인기업의 경우는 어떨까요? 큰 단위의 경제생태계를 만들어 낼만한 힘은 없습니다. 이들이 새로운 상권을 창출할거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작은 기업이 없다면 지역사회는 곤란을 겪습니다. 주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규모가 작아질수록 생존을 위해 지역공동체 자체를 시장으로 삼는 다양한 비즈니스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지역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공급합니다. 편의점, 잡화점, 미용실, 세탁소, 수리점(철물점), 카페, 빵집, 밥집 등이 없다면 생활이 불편한 정도를 넘어 매우 곤란한 지경에 이를 겁니다.

창업자 개인은 자신의 생계를 도모하기 위해 창업한 것에 불과하지만, 지역 사회 입장에서는 공동체의 생산성을 높이고 삶을 편하고 이롭게 도와주는 아주 훌륭한 구성원입니다. 필자가 이런 스몰 비즈니스 창업자에게 주목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로컬브랜딩으로 우리 동네가 살아날까?

취재 여행 과정에서 여러 부류의 스몰 비즈니스 창업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필자의 이력을 아는 분들은 필자와 로컬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합니다. 대세 키워드가 되어 버린 ‘로컬’의 개념, 요즘 각광받고 있는 ‘로컬크리에이터’, 정부 공모사업마다 강조되는 ‘로컬브랜딩’을 거쳐 점점 묵직한 이야기로 흘러가게 되는데요. 이런 방법이 장기적인 불황을 타개하는 대안이 될지, 갈 길을 모를 지방소멸을 해결할 묘수가 될지 묻곤 합니다.

저로서는 이런 질문이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제가 정책을 끌고 가는 경제 관료도 아니고, 이런 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도 아니기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구체적으로 답변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긴 설명으로 답변을 대신합니다.

◆빌드업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1인 창조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2011년)했습니다. 법제화가 갖는 의미는 2가지입니다. 우선 전통기법을 승계하거나,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하는 창의적인 활동을 하거나, 지식서비스를 통해 다른 비즈니스의 성공을 돕는 신종 비즈니스 주체로서 ‘1인기업’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인식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둘째로 법제화 과정에서 “1인 창조기업은 OO다”라는 정의를 해줌으로써 1인 창조기업에 해당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의 틀을 만들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이보다 포괄적인 정책 키워드가 나왔습니다. 바로 ‘창조경제’입니다. 이 시절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신산업을 육성하려 하거나 IT기술을 활용한 혁신을 꾀했습니다. 때마침 다보스 포럼을 통해 ‘4차 산업혁명’ 바람이 불기도 했죠. 1차 산업인 농업의 혁신을 다른 산업과의 융복합을 통해 ‘6차 산업’화한다든가, 기존의 관광산업을 새로운 아이디어로 고품격 서비스와 접목하여 시너지를 일으키는 ‘창조관광’ 개념이 등장하며 여행을 게이미피케이션이나 IT플랫폼, 로컬푸드 등과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늘어났던 걸 기억하시나요?

이런 시도들이 누적되는 사이에도 한국 사회는 빠른 변화했고 소비의 형태도 바뀌었습니다. 지속가능한 공간에서 개인의 취향을 중심으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시도하는 ‘로컬크리에이터’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창업자로 조명 받게 되었습니다. 필자의 설명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알고 싶다면, 옛날 신문기사를 뒤적여 보시면 됩니다. 1인 창조기업, 창조관광, 6차 산업 성공사례나 우수사례 등으로 검색해보시면 당시 사례들이 지금의 로컬크리에이터와 비슷한 맥락을 갖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Case by case! - “그때그때 달라요!”

이런 설명으로 논쟁을 벗어나 다른 화제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어쩌다 “로컬크리에이터 형태의 비즈니스가 로컬의 대안이 되는지”를 집요하게 물어보는 분이 있습니다. 필자 입장에선 모호한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건 정말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 개별적인, 경우에 따라)’이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모든 산업이 모든 지역마다 성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충청북도에 조선업이 성공할 수 있냐?”는 질문을 하면 뭐라 대답하실래요? 바다가 없는 충청북도에서 유조선과 크루즈를 만들겠다고 하면 투자할 만하다고 보시나요?

산업마다 성장에 필요한 지리적 요건도 있는 데다, 산업과 잘 어울리는 비즈니스 생태계가 조성되어야만 가능합니다. 생태계를 이루는 건 그 도시만이 갖는 라이프스타일일 수도 있고, 산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전통, 인력 풀, 연구 집단일 수 있습니다. 그 도시에서만 구할 수 있는 원료가 중심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지역과 연결되는 교통접근성이 핵심일 수도 있습니다.

◆마을 by 마을, 골목 by 골목! - “동네마다 다 달라요!”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표현을 얼마 전 만났던 어떤 분의 말을 빌려 ‘마을 by 마을’, ‘골목 by 골목’으로 바꿔보겠습니다. 동, 읍, 면보다 더 작은 리 단위 마을이라든지, 대도시의 작은 골목의 비즈니스 생태계로 가보자는 거죠.

이 마을과 골목이 어떤 기능을 하는 골목인지, 다른 마을과 어떤 상성을 갖는지, 주민과 상인들의 소득수준이나 계층 특성은 어떤지, 1인가구 중심인지, 청년층과 노년층의 비율, 어린이 인구,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에 대한 관심도 등 마을과 골목의 상황은 제각각입니다.

이에 따라 어떤 업종은 대박이 날 수도 있고, 어떤 업종은 쪽박 찰 수도 있습니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본다면, 소멸의 위기 속에서 마을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에 따라 비즈니스 생태계 조성의 이야기도 달라집니다.

마을을 지속가능하게 하려면 예산시장처럼 특정 장소가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게 하여 관광객을 유인해야만 하는 걸까요? 혹은 마을이 지닌 정체성을 지키면서 이 정체성을 원하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와 오래도록 살기 좋은 곳이 되게 해야 할까요?

◆‘면→선→점’에서 ‘점→선→면’으로

보통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둘 다 되면 좋지”라고 하시는데요. 양자택일 구도로 이야기를 압축한 이유는 논의를 단순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두 가지를 다 선택하게 되더라도 결국 하나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마을에서 두 가지를 공존시키려 해도, 마을보다 작은 골목 단위에서 각각의 역할과 기능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디는 관광객이 유입되는 골목으로 자리매김하지만, 또 다른 편은 주민들의 생활이 중심이 되는 점포나 거점시설 중심의 골목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더 작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더라도 실핏줄처럼 갈라지는 샛길로 블록을 나눌 수 있고, 길 따라 형성된 주택이나 점포의 기능에 따라 정체성이 세분화되기 때문이죠.

이쯤에서 느끼셨는지 모르지만, 면→선→점으로 좁혀 보는 관점을 방해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신가요? 대체로 로컬활성화를 이야기하다 보면 상권→상가→상점으로 시선을 좁혀 가며 블록화하려거나 일반화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점→선→면으로 확대해 나가는 시각은 작은 공간이 지닌 개성에서부터 시작해 골목과 마을의 정체성으로까지 의미를 통합해 나가며 거시적 시각에서 놓친 부분을 보완하게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탐미적 경관 vs 생활적 경관

최근 로컬활성화를 둘러싼 화제 중 하나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였습니다. 로컬크리에이터를 앞세운 활성화 행위가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켜 실질적으로는 활성화를 달성하지 못한다는 문제제기였습니다. 한쪽에선 침체되는 도시와 골목에 대한 우려로 활성화를 우선하며 “차라리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왔죠.

이 두 관점은 각자가 속한 공간을 바라보는 미학에서 출발합니다. 이를 잘 설명해주는 내용이 마쓰나가 게이코의 저서 ‘로컬 지향의 시대-마을이 우리를 구한다’라는 책에 실린 한 장의 그림과 설명입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로컬 지향의 시대 p.166~168)

‘농(農)의 미학’ 관점으로 ‘풍경론’을 정리한 학자 카츠하라 후미오는 “내부에서 본 ‘정주자’ 시점과 외부에서 보는 ‘여행자’ 시점에서 각각의 가치관에 의해 인식된 ‘풍경’이 생겨난다”고 했습니다. 여행자는 여행자의 심미적 태도로 탐미적 풍경을 추구하며 탐미적 경관을, 정주자는 정주자의 심미적 태도로 생활적 풍경을 추구하며 생활적 경관을 창출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외부인인 여행자가 태도를 바꿔 생활적 경관에 의미를 부여할 때, 외부에서 가치를 부여한 풍경의 형태를 갖게 된다는 겁니다. 이때부터 정주자나 외부자인 여행자 모두가 해당 장소의 가치를 공유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로컬브랜딩’입니다.

◆장소성→로컬리티→경관

혹시 여기까지 읽어보시고 “그렇군. 이쯤이면 ‘로컬브랜딩’이란 풍경의 변증법이라 할 수 있군? 정주자의 풍경과 여행자의 풍경에 이어지는 정-반-합이 로컬브랜딩으로 도출되는군!”이라 생각하신다면 조용히 손을 들어보십시오. 아무도 없으시군요. 맞습니다. 저도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다양한 자료를 찾고, ‘일본 영화의 풍경론’이라는 기획상영회를 다녀오고, 다른 분의 강의를 들으며 개념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알게 된 내용을 차근차근 풀어 보겠습니다.

우선 경관과 풍경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장소성’부터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장소성’이란 말 그대로 특정 장소가 지닌 성격을 설명하는 건데요, 인간이 생활 속에서 느끼는 공간적 친근함을 ‘장소’ 개념으로 이해하고 난 뒤 깨닫게 되는 “장소의 특징”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장소가 지닌 고유성과 더불어 다른 장소와의 차별성을 인식하면서 부여되는 개념이 ‘장소성’인 거지요. 이 장소성이 조금씩 더 넓은 지역으로 확장되면, ‘로컬리티(locality)’라는 “지역이 지닌 고유성”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캐나다의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는 “장소성은 경관과 활동과 의미가 결합해 구성된다”고 했는데요. 여기서 ‘경관(景觀)’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경관은 “인간이 활동하는 물리적 공간”으로 풀이되는데요, 경관이 인간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인간이 경관에 영향을 끼치며 특정 장소의 장소성을 변화시켜갑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탐미적 경관’과 ‘생활적 경관’으로 자신이 영향을 주고 받는 장소의 장소성을 재정립해 나가게 되는 거죠.

◆활동 공간이 되는 ‘경관’과 주관적 발견이 이루어지는 ‘풍경’

이쯤에서 ‘경관(景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겠는데, ‘풍경(風景)’이란 말은 또 뭐냐고 하실 겁니다. 둘 다 같은 말 아니냐고요?

‘풍경(風景)’이란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산이나 들, 강, 바다 따위의 자연이나 지역의 모습. 어떤 정경이나 상황”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풍경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뜻하는 말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경관의 개념과 달리 풍경은 풍경을 감상하는 인간 입장에서 재구성한 이미지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주관적 시선이 풍경의 의미를 규정하게 되고, 결국 풍경은 “감상하는 인간의 시선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연인이 숲을 거닐다가 “저길 봐, 꽃들이 너의 아름다움 앞에서 부끄러워 해. 새들도 너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어”라는 말로 사랑을 속삭이지만, 실제로 그들이 서있는 숲은 이런 이야기와는 달리 바람이 불어 꽃이 흔들렸던 것이고 새들끼리는 서로 영역 다툼을 하느라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뿐입니다.

◆관점이 로컬을 재정의한다

풍경론의 등장은 근대 일본이 경험한 역사적 사건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근대화를 경험한 후 청일전쟁을 계기로 “권력에 의해 주위의 경관이 주관적인 풍경의 개념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에 19세기 말부터 ‘풍경론’을 주제로 토론을 이어왔습니다. 나아가 도쿄 공업대학 나카무라 요시오 교수는 건축학, 조경학, 지리학, 기호학, 문학, 철학 등의 학제간의 이론을 통섭한 풍경학을 창시하기도 했습니다.

로컬 활성화에 성공한 일본의 지방도시 이야기 속에서도 풍경론에서 설명하는 주관적 시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성공 사례의 클리셰라고 해야 할까요? 몇몇 활동가나 사업가만의 활동을 마중물로 시작해 주민 커뮤니티의 교감과 활동을 통해 함께 상생하는 탄탄한 마을 생태계를 구성하는 이야기가 단골 소재입니다. 이런 원동력이 무엇인지 항상 궁금했는데, 이제 보니 공동체의 미학에서 출발한 공동체의 경관을 창출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앞서 경관과 풍경의 개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주관적 시선이 의미를 규정한다고도 설명드렸습니다. 이런 의미 규정은 좀 더 앞에서 설명했던 장소성과 로컬리티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인간의 심미적 태도가 장소성의 재정의, 로컬리티의 재정의로 연결된다는 거죠. 도시를 바라보는 나의 미학이 내가 사는 마을과 골목의 의미로 연결된다는 소리입니다. 기차를 좋아하면 대전은 ‘철도의 도시’로 재정의되고, 빵을 좋아하면 대전은 ‘성심당의 도시’로 인식하는 것처럼요.

◆‘힙한 로컬’이라는 프로파간다

필자가 이런 복잡한 개념 설명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수년째 ‘로컬’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대화에 반드시 등장하는 호응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힙하다”는 표현입니다.

언제부턴가 더 살기 좋은 마을, 활성화된 마을, 잘 사는 마을을 만들자는 이야기는 ‘힙한 로컬’을 만들자는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다보니 언제부턴가 우리 뇌리에는 “로컬은 반드시 힙해져야 합니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고, 힙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꼭 그래야만 할까요? 로컬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으면 안 되는 걸까요? 여기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게 하나 있습니다. ‘힙한 로컬’에 대한 로망은 “촌스러움을 부끄러워하는” 생각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빠른 산업화를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던 과정에서 형성된 잘못된 생각입니다.

1960~1970년대에는 도시 영역의 상당부분이 농지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서울조차도 사대문을 나가면 미나리꽝과 과수원이 도처에 널려있었을 정도니까요. 가끔 방송을 통해 서울 강남구도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엔 논밭이었다는 신기한 영상을 보신 적 있을 겁니다.

◆마을의 수만큼 가능성이 있다

원래 도시와 대비되는 단어는 ‘시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도시와 대비되는 곳을 ‘촌(村)’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촌(村)’은 ‘마을’을 뜻하는 한자로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는 ‘로컬’과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한자일 겁니다. 언제부터 ‘촌’의 의미가 퇴색되었던 걸까요?

아마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산업화 드라이브가 걸리며 대도시 권역에 공업단지가 조성되었고,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떠난 젊은이들이 대도시에 모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대도시vs농촌(= 도시vs촌)이라는 구도로 생각하게 된 듯합니다.

게다가 이 시기 장기집권을 노렸던 박정희 정부는 발전된 대한민국의 상을 보여주기 위한 프로파간다를 위해 노력했는데, 그 대표적인 문화 아이콘이 1967년에 제작된 영화 ‘팔도강산’입니다. 영화 속에는 발전된 서울 모습을 담으면서, 도시에 사는 자식들은 부유하고 어촌에 사는 자식들은 가난한 삶을 사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편, 농촌을 현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새마을운동이 1970년부터 전개되었지만 이를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새마을운동은 농촌을 근대화하고 농가소득을 증대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으나, 가장 중요한 농가소득 증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새마을운동이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농가부채가 더 늘어났고, 이는 젊은이들이 더욱 농촌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새마을운동의 노래대로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모든 농촌이 새마을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서구 선진국이 내세운 근대화이론의 한계와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서구의 발전경험과 과정이 개발도상국의 사회발전 모델이 될 거라고 여겼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각각의 전통과 문화와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죠. 마을과 마을도 마찬가지입니다.

◆‘촌스러움’이야 말로 로컬리티의 근간

그렇다고 필자의 설명을 오해하여 로컬크리에이터의 활동과 이들이 비즈니스를 통해 일으키고 있는 작은 혁신에 회의를 품게 되면 곤란합니다. 이야기를 광범위하게 전개했던 건 로컬활성화 방안이 일방적이지 않다는 걸 염두하자는 겁니다. ‘일방적(一方的)’이란 말은 한자풀이 그대로 “한 방향으로 쏠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다양한 방법을 찾는 걸 포기하고 기-승-전-카페라는 편안한 선택만 하고 있는 현실을 반성하고 돌이키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촌스럽다”는 말은 더 이상 전근대, 탈문명, 저발전을 의미하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촌스럽다”는 말이 지역의 장소성, 고유성, 로컬리티를 담은 더 포괄적인 의미가 된다는 혁신적인 생각이 필요합니다. 로컬크리에이터야말로 촌스러움의 본질을 가장 잘 담아내는 창업자였으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행정안전부의 지원으로 한국리노베링이 2022년 12월에 펴낸 사례집 ‘로컬브랜딩 사례로 본 지역의 미래’가 좋은 참고가 됩니다. 특히 프롤로그 부분에서 사례집 내에서 임시로 정의한 로컬브랜딩 개념과 사례 선정기준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해당 사례집에서는 로컬브랜딩을 “사람을 끌어 모으는 지역만의 매력 만들기”라 간략히 정리한 후, 구체적으로는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고유성에서 차별화된 매력을 끄집어내 널리 알리는 활동”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나아가 로컬브랜딩을 통해 지역을 찾는 방문객이 늘어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며, 거주민이 증가하고 지역민의 자부심을 높이는 긍정적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다음 3가지 요소도 시사점을 줍니다. ①지역의 유니크한 이미지와 인지도를 기반으로 ②‘살 만한(livable)’ 가치와 ‘올 만한(visitable)’ 가치의 균형을 갖추면서 ③주민과 행정이 협력하는 거버넌스 구조가 성립되고 있는지를 사례 선정 기준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이 기준을 척도로 삼아 로컬활성화의 위한 방안을 구체화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긴 글 읽으며 따라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슬슬 지역과 상생하는 스몰비즈니스 창업자의 윤곽이 드러나는 듯합니다. 이어지는 글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로컬을 혁신하는 창업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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