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부터 9월 24일까지 『로컬힙 자랑대회』가 개최됩니다. 한국관광공사가 진행하고 있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로컬힙 프로젝트』의 일환이라고 하는데요. 『로컬힙 프로젝트』는 한국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복 패션 브랜드 및 크리에이터와 협업해서 부산 영도 물양장거리, 사천 삼천포 용궁수산시장, 진안 무진장버스 차고지, 순천 낙안읍성, 광주 양림마을, 대전역, 경주 월정교, 서울 신당동, 수원 팔달문 등 총 9곳에서 촬영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홍보하겠다라는 프로젝트입니다. 일상 속 장소들과 지역 명소들을 재해석하여 국내 여행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겠다는 거예요.
◆힙해야 로컬인가?
‘로컬 힙 프로젝트’
‘로컬 힙’
‘힙’
즉, “로컬은 힙하다”고 표현하고 있어요.
관광공사의 보도자료를 보면 로컬을 ‘독립적인 문화를 창출하는 최소 생활권’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전적 의미로 로컬은 ‘지방’ 혹은 ‘지역’을 의미하죠. 요즘 로컬크리에이터들이 등장으로 특성화된 골목 상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관광공사는 이와는 방향성이 다른 로컬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관광공사는 왜 독립적인 문화를 창출하는 최소 생활권으로 로컬을 정의한 걸까요? 그리고 거기에 왜 ‘힙’이라는 단어를 넣어 국내 관광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겠다고 하는 걸까요?
저의 고민은 “로컬은 힙하다”는 말 속에서 시작됩니다. 로컬이 힙하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힙하다’는 말의 의미
우선 힙하다는 말의 의미부터 찾아보았습니다. 검색해보니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찾을 수 있었습니다. 2016년 3월 22일자 한국일보 기사인데요. 『이재현의 유행어 사전』이라는 칼럼 중에 ‘힙하다’ 편이 있습니다.
한국일보 2016년 3월 22일자
[이재현의 유행어 사전] 힙하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3221480317462
우선 사전적 의미대로라면, 명사로 쓰일 때는 ‘엉덩이’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형용사로 쓰일 때는 ‘최신 유행이나 세상 물정에 밝은’, ‘잘 알고 있는’, ‘통달한’이라는 뜻을 갖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말과 관련 있는 행위자들이 바로 ‘힙스터’입니다. 마침 해당 칼럼에서는 미국의 힙스터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요... ‘1990년대 이후 대두한 하위 문화 중심의 소비 코드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당시 주로 20~30대 젊은이들이었고, 주류 정치나 문화와는 독립된 사고방식과 대항문화적 가치, 진보적인 정치 성향, 환경 친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과 문화, 지식, 유머 등을 선호하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홍대 인디씬이 커졌던 시기 ‘힙하다’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
어원이나 문화적 코드로 볼 때는 1960년대 히피 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는데, 재미있게도 우리나라에서 ‘힙하다’라는 말이 빈번해지기 시작했던 시기를 놓고 보면 2002년 월드컵 이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했던 홍대씬과 관련이 있습니다. 홍대에서 인디 문화가 태동한건 1990년대였고, 월드컵전후 활성화되어 절정기를 맞은 때가 바로 2010년대인데, 공교롭게도 ‘힙하다’는 말의 사용이 늘어난 시기가 이 시기니다.
그런데 ‘힙하다’는 표현이 일상 언어로 들어오게 되면서 ‘트렌디하다’, ‘멋지다’, ‘죽여준다’, ‘쩐다’ 등의 유의어로 사용되게 된 거예요. 본래 의미는 ‘힙스터스럽다’였던 것 같은데, 최신 유행을 따라가고 있다는 뉘앙스가 되어버린 거죠.
이런 점은 Z세대에 주목하고 있는 <대학내일>이 운영하는 웹진 <캐릿(Carret)>에서 자세히 찾아볼 수 있는데요. ‘힙하다’는 표현은 ①장소(인테리어), ②태도(가치관), ③플랫폼(서비스), ④패션(스타일)에 대한 표현과정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한 4가지 요소야 말로 현재 우리가 ‘로컬’이라 부르는 공간을 표현할 때 ‘힙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는지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캐릿(Carret) 2021년 5월 27일
키워드로 보는 분야별 '힙(Hip)하다'의 찐 의미!
https://www.careet.net/384
한편으로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발화(發話;소리내서 말하다)되고 있는 ‘힙하다’는 말은 사전적 의미, 또는 본래 의미로서보다는 대한민국 언어 대중이 선택한 또 다른 의미로 사용이 되고 있다는 거지요.
현재 ‘로컬’이라고 부르는 표현도 다분히 콩글리쉬에 가깝지만, ‘힙’의 의미도 한국적 정서를 반영한 콩글리시로 사용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는 힙하지 않은 ‘hip’?
조금 답답한 마음에 영미권에 살고 있는 분에게 카톡으로 ‘힙하다’라는 말의 용법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제 인맥이 좁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실제 영미권에서 ‘힙하다’란 말을 쓰는 언어계층은 주로 아재들이라고 합니다. 아재들끼리 모여서 쑥덕거리다가 뭔가 멋있다고 할 때 ‘힙하다’는 표현을 쓴다는 거죠.
40~50대 아저씨들끼리 술 한 잔 하는 테이블에서 “어~~~ 그거 죽이는데?”를 상상하면 될 듯합니다. 마치 트로트 노래 가사 “아주 그냥, 죽여~줘요”과 같은 뉘앙스랄까요? 오히려 젊은 세대 쪽에서는 ‘hip’이 아닌 “That’s dope!”, “That’s fly!”같은 표현을 쓴다고 합니다.
제 논지는 ‘힙하다’라는 표현이 맞다, 그르다를 가지고 시비를 걸고 싶은 게 아닙니다. “로컬은 반드시 힙해야 하는가” 아니면 “힙한 곳이 로컬인가”로 의제를 제기해보고 싶은 거죠.
◆머드맥스가 보여준 로컬
여기서 한번 떠올려봤으면 하는 광고가 있습니다. 2019년에 히트쳤던 동영상인데요. 바로 ‘서산 머드맥스’입니다. 영화 『매드맥스』에서 사막을 질주하는 폭주족 장면을 패러디해 갯벌을 달리는 경운기의 모습을 가지고 서산의 바다와 갯벌을 보여주는 영상이었습니다.
이 영상이 해외 관광객을 불러들였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국내에서는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들었습니다. “어촌이 이렇게 ‘힙’한 줄 몰랐다”는 반응이 많았는데요. 머드맥스 동영상이 나온 이후 서산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다는 겁니다.
물론 저는 개인적으로 이 동영상을 보며 걱정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동영상을 보고 어촌에 정착해서 갯벌에서 조개잡이를 하며 살겠다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서요. 단지 갯벌을 질주하는 경운기의 모습만 보고, “멋있다!”, “나도 경운기로 갯벌을 달리고 싶다”는 정도로 끝나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이미지로만 소모되는 로컬이 될까봐...
제 걱정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로컬이 이미지로만 소모될 수 있어서입니다. 여기서 인스타 감성 충만한 카페를 드나들다 사장님들과 나눈 이야기를 잠깐 소개하고자 합니다.
가끔 예쁜 옷을 입고 화장도 신경 쓴 매력적인 여성과 작업복 차림의 남성 두세 명이 찾아와 시그니처 메뉴를 주문해놓고 열심히 사진과 동영상을 찍다 가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행들은 주문한 메뉴를 먹지 않거나 맛만 보고 그대로 버리다 갈 때가 생각보다 빈번하다고 해요.
인플루언서로서 새로 생긴 힙한 공간과 힙한 메뉴를 선보이며 팔로워들과 소통하기 위함인 건 백번 이해하겠지만, 그래도 가게 사장님 입장에선 서운한 겁니다. 공간도 그렇고 메뉴도 그렇고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담아 만든 건데, 그런 건 무시당한 기분이라는 거죠.
이런 소비방식이 로컬크리에이터와 로컬 공간으로 투영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로컬이 지닌 고유성과 장소성은 인지되지 못하고, 로컬의 이미지만 소모삭제될 수 있기에 걱정이 앞섰던 겁니다. (②편에서 계속)
(※‘서산 머드맥스’에 대해 할 이야기는 좀 더 있습니다만, 다른 기회에 자세히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