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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in] 빨간양념족발이 말해주는 팔복동 - 팔복동③편

- 팔복동 세 번째 이야기: 팔복동 맛집을 찾아

※ 다양한 인사이트를 담는 '윤준식 편집장의 view-in', 이번 회는 [로컬 인사이트]로 구성했습니다.

윤준식 편집장 승인 2023.09.03 02:41 | 최종 수정 2024.08.29 22:19 의견 0

요즘 뜬다는 팔복동에 가보았습니다
- 팔복동①편: 내겐 마뜩잖은 <팔복동 공장마을>
http://sisa-n.com/View.aspx?No=2931329

여전히 산업 잠재력이 엿보이는 팔복동
- 팔복동②편: 신복마을의 로컬리티는 공장에서 기인할까?
http://sisa-n.com/View.aspx?No=2931351

빨간양념족발이 말해주는 팔복동
- 팔복동③편: 팔복동 맛집을 찾아
http://sisa-n.com/View.aspx?No=2931354

큰 접시에 그득하니 담겨 나온 빨간양념족발 (사진: 윤준식)


“팔복동의 스토리가 담긴 메뉴는 역시 빨간양념족발이죠”

답사팀의 구성원 중 한 명인 전주토박이의 설명이다.

팔복동을 알고, 느껴보자는 취지로 함께 팔복동 답사를 해보자며 답사팀을 꾸렸는데, 태풍2호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내려 전주 도착이 늦어졌다. 내리는 비도 문제지만 하늘이 어두워 제대로 둘러볼 수 없었다.

이럴 땐 노포에서 먹는 한 끼가 최고다. 오늘 허탕친 것 같지만 함께 먹고 마시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격려할 수 있고, 노포가 지닌 세월의 흔적과 이야기에서 로컬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팔복동의 오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 그게 바로 빨간양념족발이라고 하니 이날은 여기에 푹 빠져보기로 했다.

지금은 점포 3개 뿐이지만, 예전엔 이곳에 족발집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사진: 윤준식)


팔복동은 전주천 서북편 건너 편에 있는 곳으로, 전주 원도심에서 완주 방면으로 출발해 추천대교를 건너야 나오는 곳이다. 전주긴 전주인데, 전주와는 또 다른 전주랄까? 예전부터 전주의 변방이면서 완주와 전주 사이의 접경지역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지금은 쇠락한 동네로 알려진 팔복동이지만, 80~90년대까지는 전주의 산업발전을 이끌었던 곳이 바로 이곳 팔복동이다. 빨간양념족발은 이곳 공장지대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메뉴로, 노동자들이 즐겨찾던 곳이라 한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던 노동자들이 하루 맘 편히 양껏 고기를 먹고 에너지를 재충전하는데 적합했던 메뉴가 족발이었다. 회식날이나 월급날이면, 동료들끼리 혹은 가족끼리 족발집에 옹기종기 모였다고 한다.

요즘에야 족발을 주문하면 정강이 윗부위까지 튼실하게 나오지만, 팔복동 전성기 시절에는 '족발'이라는 말 그대로 발 부위만 요리되어 나왔다고 한다. 버려지는 부위나 다름없었던 돼지의 발 부위를 모아 삶아 내었던 게 이 메뉴의 시작이다.

비 오는 날 막걸리 한 잔까지 걸치니 옛날 이야기들이 정겹기만 하다. (사진: 윤준식)
기본 상차림에 나오는 뻔데기만 가지고도 막걸리 한두 통은 마실만큼, 적지않은 양을 준다. 노동자들이 즐겨 찾던 가게의 흔적 중 하나라고나 할까? (사진: 윤준식)

빨간양념도 마찬가지... 재료의 단점을 보완하는 데 있어 자극적인 양념만한 건 없었을 터다. 특히 돼지족발은 껍질 부위까지 같이 조리하는 거라 80년대만 해도 돼지털이 숭숭 박혀있는 건 일상다반사였다. 그런 단점을 감추면서 맛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맵고 얼큰한 양념은 매우 훌륭한 장치다.

빨간양념족발집의 진풍경은 양손에 족발을 들고 뜯어 먹는 모습이다. 손으로 족발에서 양념이 고루 밴 살점을 뜯어 상추쌈을 싸서 먹었다고 한다. 지금에야 비닐장갑을 주지만, 당시에는 갱지로 대신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엔 테이블 한쪽에 갱지를 잘라 쌓아놓았다는 이야기.

이 말을 듣고 따라 해보았다. 족발을 하나 들고 살점을 발라낸 다음, 이 살점을 양념에 깊게 푹 찍어 마늘, 고추를 올린 상추쌈으로 먹는 것도 맛있다. 통뼈 하나를 들고 뜯는 장충동 족발과 달리 하나하나 발골하는 즐거움도 크다.

옛날 팔복동 사람들이 먹었던 대로 흉내내어 먹어보았다. 빨간양념족발인데도 살점을 떼내 별도로 나온 매운 양념을 한 번 더 찍은 다음, 마늘과 고추를 올려 쌈을 싸서 먹는다. {매운 맛+매운 맛+매운 맛+매운 맛}을 즐겼던 이유는 무엇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입을 한컷 벌려 이렇게 매운 상추쌈을 넣고, 우걱우걱 먹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적지 않았다. (사진: 윤준식)


지금은 그때보다 재료도 좋아지고, 사람들의 식경험 수준도 높아져 돼지털이 숭숭 박힌 족발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빨간양념도 과거에 비하면 매우 세련된 맛으로 변화되어 왔을 거다. 그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가상현실이 적용된 듯한 상상에 빠져들게 된다. 식당 안에 윤활유 냄새와 쇠부스러기 냄새가 풍기는 점퍼입은 사람들이 가득찬 것 같고, 테이블 한구석에 갱지가 쌓여 있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언젠가 다시 팔복동 답사를 위해 찾아오겠지? 그때를 위해 든든히 먹어두자. 족발은 1인분에 15,000원으로 3인분 정도 주문하니 접시에 소복하게 쌓여 나온다.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충분한 양이지만, 뼈의 비중이 있다보니 접시가 금새 비는 느낌이 든다.

양념족발이라 맵긴 한데, 심각한 고양이 혀만 아니라면 ‘스읍스읍’ 혀와 이 사이로 공기를 들여 마시며 끝까지 다 먹어치울 수 있을 정도의 맵기다. 남원막걸리를 하나 주문해 중간중간 들이키며 먹는다면 이 정도 매운 건 별일도 아니다.

이곳은 꼭 가봐야 하는 맛집이라 강조할만한 곳은 아니지만, 소울푸드 속에 로컬스토리가 담긴 곳이라 가볼 만한 로컬맛집이다. 특히 팔복동 이야기와 더불어 용산다리(추천대교)에 대한 사연을 알면 맛이 없을 수 없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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