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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의 경제로 함께 살자" - 300점포 결성 앞둔 한국생활용품협동조합 배명호 이사장

생활용품 제조와 유통의 알파와 오메가: 배명호 이사장의 상생 도전
인터뷰 기획: 진심인 사람들을 만나다 2편 #파는데진심인사람

윤준식 편집장 승인 2024.11.17 22:11 | 최종 수정 2024.11.17 22:41 의견 0

“열심히 뛰어서 월 1,500만원 매출을 올려도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하는 균일가 생활용품점 점주들이 많습니다. 로열티 내고, 카드 수수료 내고, 인건비 주고 나면 정작 점주의 몫은 거의 없어요. 균일가에 밀리고, e-커머스에 밀린 동네형 생활용품점들 모두 ‘앞으로 3년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쉽니다.”

배명호 한국생활용품협동조합 이사장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34년간 생활용품 유통업계에 몸담아온 그는 지금의 위기를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실제로 2024년 9월 기준, 전국 생활용품 매장의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았다. 대형 할인점들이 저가 시장을 장악하고, 글로벌 e-커머스 기업들이 중고가 시장을 잠식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매장 규모가 400평이라고 해도 하루 1,000만원을 파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 정도 팔아야 월 매출 3억, 연 36억 정도 되는데, 유통업에서는 연 매출 50억 미만이면 소상공인으로 분류돼요. 그만큼 우리 업계 현실이 녹록지 않죠.”

한국생황용품협동조합 배명호 이사장. '알파오메가'는 1991년부터 배명호 이사장이 운영했던 생활용품 점포 브랜드지만, 조합을 위해 조합의 브랜드로 내놓았다.

◆실패에서 배운 교훈

생활용품 매장들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던 배 이사장은 이미 2019년부터 협동조합으로 모으는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하필 코로나19가 시작됐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통과 연결에 어려움이 커졌다. 배 이사장 자신도 코로나19로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위기가 기회가 됐다.

"코로나19 전에도 여러 소상공인들이 연합체를 만들어 공동구매와 브랜드 통합을 시도했어요. 하지만 다들 각자의 성공 경험만 있다 보니 의견을 모으기 어려웠죠. 회의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았고, 길어야 1~2년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본인의 실패경험과 주위의 실패 사례들을 지켜보던 중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길이 있다고 여길 때는 따로 움직이려고 해요. 하지만 더 이상 갈 길이 없다고 느낄 때, 비로소 함께 가자는 말에 귀를 기울이죠.”

현재 한국생활용품협동조합에는 250여 개 매장이 참여하고 있다. 11월 중으로 300개 매장 달성이 목표다. 이 숫자는 단순한 목표가 아니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최소 단위다.

“매장당 10개씩만 공동구매 하면 초도분에 해당하는 3천 개 물량이 확보됩니다. 3천 개 단위가 돼야 OEM이나 PB 상품을 통해 고객에게 20~30% 가격 할인을 제공할 수 있게 돼요. 실제로는 1만 개 정도의 구매력이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지만, 우선 3천 개를 기본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배명호 이사장이 운영하고 있는 알파오메가 마석점. 몇 년 전까지 대기업 유통업체가 운영하던 매장이 철수하고 나간 공간이지만, 성공적으로 사업을 일구어 가고 있다.

◆상생의 힘을 믿는다

협동조합의 전략은 명확하다. 공동구매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1시간 내 배송으로 차별화하며, 공동 마케팅으로 브랜드 파워를 키운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1시간 배송 시스템’이다.

“대형 온라인몰도 당일 배송이 최선입니다. 하지만 생활용품 매장들 대부분이 이미 자체적인 배달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요. 현재도 3만 원 이상 주문하면 배달해주고 있거든요. 이 인프라를 활용하면 온라인 주문 후 1시간 내 배송 실현이 가능합니다.”

공동 마케팅도 중요한 전략이다. 개별 매장이 월 20만 원씩만 부담해도 300 군데의 힘이 모이면 6천만 원의 규모가 된다. 여기에 협동조합에 참여한 유통업체와 제조업체들이 찬조하는 광고비까지 더해지면 7~8천만 원의 마케팅 예산이 확보된다. 지방 소도시에 있는 개별 매장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매장이 월 20만 원으로 무슨 광고를 하겠어요? 하지만 함께 모으면 라디오, 유튜브, 케이블 TV 광고도 가능합니다. 광고를 접한 이천 시민이 집에서 가까운 이천의 매장을 찾을 수 있게 되죠.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 협업을 통해 가능해지는 겁니다.”

300개의 점포가 뭉쳐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제조업체에 PB상품을 의뢰하려면, 적어도 초도물량 3000개를 주문해야 한다. 300개 업체가 10개씩 공동구매하면 제조와 유통 두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제조업체의 아픔을 보듬다

배 이사장이 가장 안타깝게 보는 것은 제조업체들의 현실이다. 대형 유통업체들과 거래하면서 전속 계약에 묶여 2년 후엔 문을 닫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화장지나 주방용품 같은 생필품 제조업체들의 상황이 심각하다.

“제조업체에 ‘경쟁력 있는 신제품을 개발해보자’고 주문하면 다들 한숨부터 쉬어요. ‘금형 하나 파는 데 1억이 넘는데, 유통의 도움 없이 성공할 확신이 없다’고 합니다. 납품 단가는 계속 낮아지는데 원자재 값은 올라가고...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이 나올 리 없죠.”

한국생활용품협동조합은 지역 매장뿐만 아니라 제조업체들과도 상생하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현재 60여 개의 제조업체와 유통 벤더들이 조합에 참여하고 있다. 매월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신제품 개발과 품질 개선 방안을 논의한다.

“우리가 안정적인 물량을 보장하면, 제조업체는 품질과 디자인 개선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선순환 구조죠. 소매점이 살아야 도매상이 살고, 도매상이 살아야 제조업체가 삽니다. 한쪽이라도 무너지면 모두가 힘들어집니다.”

학원 경영자였으나 일본 연수 과정에서 목격한 '100엔샵 열풍'을 지켜보며 과감한 전업을 시도했던 떄가 1991년이었다. 88올림픽 이후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룬듯했지만, 제조와 유통업계에는 시련이 닥친다. 수출 확대로 인한 소득 성장, 임금인상, 변화한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일어난듯했지만, 가공무역의 하청기지 역할을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에게 빼앗기며 창고와 공장에 악성재고가 넘쳐나 땡처리하기도 했다. 이 시기 생활용품 할인매장은 제조와 유통을 지키는 보루의 역할을 했다. 수년 후 IMF 외환위기가 벌어졌을 때도 비슷한 역할을 하면서 고환율에 신음하던 서민들의 소비생활의 버팀목이 되었다. 이에 당시 대통령 표창을 받기까지 했다.


◆정직이 만든 34년의 신뢰

배 이사장의 사무실 벽에는 오래된 사진들이 걸려있다. 1991년 첫 매장을 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금까지 34년 동안 ‘알파오메가’라는 브랜드를 한 번도 바꾸지 않았고, 협동조합의 활성화를 위해 브랜드를 협동조합에 내어놓은 상태다. “회사를 크게 성장시키지는 못했어도 손가락질은 받지 않았다”는 말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프랜차이즈를 하고 있지만 다른 곳과는 달라요. 시설이나 인테리어도 공개입찰을 통해 투명하게 진행하고, 가맹점주가 직접 시공하고 싶다고 하면 스스로 해도 됩니다. 300개 매장이 모일 때까지 모든 노하우를 공유하려고 해요.”

그의 상생 철학은 이미 30년 전인 1994년, 한 대기업이 할인점 벤치마킹을 요청했을 때부터 좋은 반응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를 통해 대기업과 소상공인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아쉽게도 지금까지 IMF 외환위기, 서브프라임 사태, 코로나19 같은 고비를 만나며 번번이 무산되어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 과정과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정직과 투명성이라는 원칙은 지켜냈다. 이를 토대로 언젠가 대기업, 중견기업과 소상공인이 상생할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만들어 낼 것이다.

“지적재산권이나 노하우의 가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사실 이게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자산인데 말이죠. 그래도 저는 이런 것들을 공유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늦가을을 맞아 점포는 월동용품 판매를 준비하고 있었다. 보통 100평 규모의 생활용품 할인매장의 경우, 3만원 이상 구매시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1만 5천 명 정도의 회원DB를 갖고 있다. 300개 점포가 하나가 되면 온라인 플랫폼까지 더해 450만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O2O 마케팅도 현실화할 수 있다.


◆한국형 협동조합의 성공 모델을 꿈꾸며

한국에 협동조합이 도입된 지 12년. 아직 뚜렷한 대규모 성공 모델이 없는 실정이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은 한국생활용품협동조합이 성공 사례가 될 거라 보고 지속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협동조합 체제가 한국에서도 뿌리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처음엔 ‘내 브랜드가 더 좋다’며 협동조합 활동을 거절하던 분들도 이제는 달라졌어요. 혼자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걸 깨달은 거죠. 누군가는 이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협동조합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치며 배 이사장은 “단순히 한국생활용품협동조합만의 성공이 아니라 대한민국 소상공인 생태계의 미래”라고 강조했다. 이번 도전이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을지, 한국형 협동조합의 성공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꾸준히 지켜보려 한다.

매장 하나하나를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제조업체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바쁘다. 34년 전 첫 발을 내디뎠던 그때처럼, 오늘도 ‘상생’이라는 가치를 현실로 만들어가는 중이다.

한창 개점 준비중인 가맹점. 300개 점포 결성을 위해 전국을 누비는 바쁜 일정 속에 만난 배명호 이사장. 초기 창업담과 그가 경험한 34년 유통업 이야기가 아직도 많이 쌓여있지만, 다음 기회에 긴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돌아섰다.

[한국생활용품협동조합 개요]

▷ 설립: 2015년 (모태 기업 1991년 설립)
▷ 가입조건: 매장 면적 100평 이상, 월 매출 1억 원 이상 생활용품점
▷ 현재 참여 업체: 250여개 매장, 60여개 제조업체 및 벤더
▷ 핵심 전략:
• 공동구매와 독자 브랜드(PB) 상품 개발
• 온라인 주문 1시간 내 배달 서비스
• 공동 광고 마케팅

※문의: 02-2214-1144 / 010-5205-5260

- 2019년부터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협업화 사업지원 선정


한국생활용품협동조합 알파오메가 브랜드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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