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서쪽 기슭에 펼쳐져 있는 동네. 해방 이후 해외에서 돌아온 교포들과 6.25 한국 전쟁 당시 월남 피난민들이 모여 살면서 붙여진 이름 '해방촌'은 서울 용산2가동과 후암동 일부를 포함한다. 그 가파른 골목이 내려다보이는 소월로에서 열 번째 여정이 시작된다. (KBS 소개글)
우리 동네 탐방기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0번째 이야기는 해방촌이라 불리는 서울 용산구 용산동, 후암동 일대였다. 이곳은 서울 중심부에 자리한 남산 기슭에 자리한 동네로 6.25전쟁 이후 북한에서 온 피난민과 전쟁통에 오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이 움막이나 판자집을 지어 모여 살면서 형성되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오래된 단독, 다세대 주택들이 자리하고 있다.
여정은 시작은 끝없이 이어진 계단길이었다. 이 길은 남산으로 향해있었다. 최근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오르막길의 고단함을 조금을 덜어주고 있었다. 전쟁 직후 마을을 형성한 사람들은 수도가 없었던 탓에 산 아래까지 물을 길어와야 했고 계단길을 오르내리며 고단을 삶을 살아가야 했다. 오르막길에서 만난 80대의 마을 주민을 힘들었던 시절의 기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해방촌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들어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남산과 가장 가까운 마을과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 오렌 세월 붕어빵을 만들어 파는 가게를 만났다. 이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은 한 사람 서 있기도 불편한 가계 안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주인은 기력이 떨어지고 운영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이 일을 멈출 수는 없다고 했다. 자신의 일이 있다는 것이 노년에 오히려 더 큰 축복이라고 했다.
붕어빵의 고소한 냄새와 함께 여정은 남산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동네 곳곳으로 이어졌다. 그곳에서 자동차나 오토바이조차 들어갈 수 없는 오르막길을 따라 우편물을 걸어서 배달하는 집배원의 삶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힘들지만, 사람들의 격려에 힘을 얻어 이일을 즐겁게 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일을 누군가 알아주고 격려해 준다는 것. 해방촌의 집배원에게는 그것이 큰 힘이 되는 것 같았다.
동네를 따라가다 외국인들이 즐겨 찾은 빨래방 카페와 프랑스 빵집과 만났다. 보통 한남동 일대에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곳 해방촌에서도 많은 외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곳의 외국인들은 넉넉한 형편이 아닌 탓에 빨래방에서 모아둔 빨래를 세탁하고 함께 있는 카페에서 잠깐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프랑스 빵집에서는 프랑스보다 더 프랑스 느낌이 나는 크루아상 바게트를 팔고 있었는데, 외국인들에게는 우리의 밥과 같은 주식인 빵을 고향의 맛 그대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에게는 소중한 장소였다.
외국인들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추억의 냉동 삼겹살을 메뉴로 하는 고깃집을 향했다. 청년들이 운영하는 이 고깃집은 메뉴의 구성과 함께 소품들이 과거의 향수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이런 독특함과 함께 독자적으로 개발한 메뉴의 맛이 더해지면서 지역에서 꽤 유명한 식당으로 자리했다. 특히, 젊은 손님들이 이것을 많이 찾고 있었다. 추억을 소환해 현재의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곳이었다. 실제 해방촌에는 과거 주택들이나 건물들을 활용한 카페나 음식점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의 활력을 느끼며 여정은 오래된 시계들이 가득한 한 가정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10대 시절부터 시계 가게에서 일하며 노년까지 시계 기술자의 삶을 살아온 집주인이 수집하고 모아온 괘종시계부터 뻐꾸기시계 외에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오래된 시계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시계들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이 번거롭지만, 집 주인은 그 일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과거 힘들었던 시절 젊은이들이 선망하던 시계 가게를 평생 운영하고 있는 집 주인은 그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과 오래된 시계들은 자신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자신의 손주들이 오래된 시계들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집주인이었다. 과거의 것이 낡고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것이 순리이고 당연한 일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하는 장면들이었다.
이른 아침 계단길을 따라 시작된 여정은 어느덧 해 질 녘이 됐다. 서울의 일몰을 잘 볼 수 있는 카페에서 서울의 전경을 조망하며 여정은 마무리됐다.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던 서울이지만, 해방촌은 그런 큰 흐름 속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보는 일몰은 색다름이 있었다.
이렇게 해방촌에는 과거 전쟁 이후 힘들었던 우리의 기억과 함께 지금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외국인들의 삶이 혼재되어 있었다. 지금은 그 추억을 소재로 다양한 카페들과 음식점들이 성업하며 색다름을 찾는 젊은이들까지 이곳을 찾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양한 인종이 함께 하며 공간의 제약까지 무디어진 이곳은 해방촌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물론, 과거와 지금의 해방촌 의미는 다소 차이가 있다. 과거의 해방촌이 다소 우울하고 고단함을 담고 있었다면 지금의 해방촌은 희망과 활력을 더 담고 있어 보였다.
[그립다 해방촌 - 서울 용산동, 후암동]
▲ 고단했던 시절의 유물 108계단에 세워진 경사형 승강기
서울의 대표적인 산동네 중 하나인 해방촌은 108 계단으로 상징된다. 까마득하게 올려다 보이는 계단 위로 어머니들이 공동수돗물을 길어 나르며 아이들을 키웠던 고단한 삶의 유물 같은 108계단엔 어느덧 경사형 숭강기가 생겨 세월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해방촌 사람들의 숨 가빴던 그 시절을 실감해 보려 승강기 옆 108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간 배우 김영철은 그 계단 끝에서 해방촌 토박이 할아버지를 만났다. 열네 살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피난 내려와 해방촌에서 60년 넘게 살며 북녘 고향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에서 해방촌 사람들의 애환이 느껴진다.
▲ 그때 그 사람들, 그때 그 정겨움 해방촌 사람들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해방촌을 지켜온 사람들의 땀방울 배인 삶의 터전들이 보인다. 동네에서 오래 장사해 누구나 안다는 해방촌 오거리 노점상 주인. 노점은 비워두고 붕어빵을 굽고 있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붕어빵 가게로 찾아오는 정겨운 해방촌만의 풍경. 배우 김영철도 가판대에 쓰인 안내글을 보고 붕어빵 굽는 곳을 찾아가는데, 계단 아래 비좁은 공간에서 붕어빵을 굽는 주인을 대신해 일일 붕어빵 장수가 되어보는 배우 김영철. 언제 소문이 났는지 붕어빵 가게는 몰려든 동네 아주머니들의 김영철 팬 미팅 현장이 되어버린다. 고바위 위쪽 오래된 주택가를 돌다가 잰걸음으로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도 만난다. 너무 가파르고 좁아 오토바이로는 도저히 올라올 수 없는 동네. 오르막 아래 오토바이가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가끔 감사하다는 문자를 받을 때면 충분히 행복하다는 해방촌의 집배원. 그의 발걸음을 따라 아직 정겨움이 남아 있는 동네의 골목 속으로 들어가 본다.
▲ 서울 속 외국인 특구 해방촌 코인 빨래방 카페, 프랑스 고향 빵집
주택가 사이를 빠져나오면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영어 간판들과 거리를 지나는 외국인들. 커피를 마시면서 평화롭게 빨래를 돌리는 동전 빨래방 카페에 들어선 김영철은 마침 빨래를 하러 온 영국 청년과 마주치는데, 짧게 머무는 한국생활에서 세탁기를 사는 게 부담이 돼 동전빨래방을 이용한다는 외국인들의 생활상을 통해 해방촌만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하루 전 한국에 도착했다는 영국인 커플은 배우 김영철에게 기념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동전빨래방을 나온 김영철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또 하나의 장소는 고소한 버터향기가 솔솔 새어나오는 빵집. 크루아상과 바게트를 주로 구워 파는 해방촌의 외국인 단골 빵집이었다. 프랑스 밀가루와 버터를 사용하여 본토 빵맛을 그대로 만들어내는 젊은 빵집 사장의 철학은 다름 아닌, 집 떠난 외국인들에게 엄마가 구워주는 것 같은 집 빵, 고향 빵맛을 느끼게 해 주고 싶다는 것. 그곳에서 드라마 ‘아이리스’의 배우 김영철을 알아보는 미국인 여성도 만나게 되는데. 그녀와 함께 맛본 프랑스식 크루아상의 맛은 과연?
▲ 추억과 그리움을 구워 파는 집 돌아온 냉동 삼겹살
거리를 가득 메운 피자 집, 햄버거 집, 양식당들 사이로 오래된 자전거와 공중전화가 눈길을 끄는 집이 있다. 바로 추억의 냉동 삼겹살을 파는 가게다. 오래된 달력과 80년대 음악, 추억의 양은 쟁반에 차려진 음식들과 옛날 주스병에 담긴 보리차까지. 추억을 자극하는 냉동 삼겹살집은, 용산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용산구 키드인 선후배가 운영하는 곳이다.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에서 어릴 적 어머니가 구워주던 냉동 삼겹살 가게를 차린 두 청년. 엄마 손맛을 재현하기 위해 개발한 4가지 양념장과 곁들임 채소, 볶음밥과 청국장까지, 그 맛을 한마디로 말하면 그리움의 맛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청국장 한 숟가락을 뜨고 말문이 막힌 김영철의 표정이 그 답을 준다.
▲ 해방촌 시계 재벌 140개 시계가 있는 집
신흥로를 따라 걷다가 괘종시계 소리에 고개를 들면 특이한 주택 하나가 눈에 띈다. 벽면에 괘종시계가 하나도 아니고 열 개 가까이 걸려 있다. 집으로 이어지는 복도에서부터, 안방과 거실, 베란다 벽에까지 오래된 시계 약 140개가 빈틈없이 걸려있다. 오래된 시계들을 진열해 놓고 닦고 수리하고 가꾸며 사는 남자. 가난했던 시절 깨끗한 셔츠에 넥타이 차림으로 시계를 고치는 시계 수리공이 부러워 그 길을 걷게 됐다는 그는 유난히 애착을 가지고 모아 온 시계들이 있다. 바로 부잣집에만 있던 괘종시계와 뻐꾸기시계. 해방촌 택배기사들 사이에선 ‘시계 많은 집’으로 통하는 그 집에서 배우 김영철이 만난 건 김종원씨의 각별한 시계사랑 뒤에 숨겨진, 뻐꾸기시계 하나 달 날을 꿈꾸며 살아온 우리 모두의 그립던 옛 시절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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