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관문이자 서해안 제일의 무역항인 인천항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물을 가장 먼저 접하며 근대화의 관문이 되었던 인천.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우체국, 세관과 호텔 등 '대한민국 최초'라는 역사를 수없이 탄생시켰다. 1899년에 개통해 2019년 황금돼지해를 맞아 120년의 역사를 지니게 된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인천역'에서 열한 번째 여정이 시작된다. (KBS 소개글)
(KBS 홈페이지)
설 연휴를 앞두고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가 찾는 곳은 인천항의 역사를 간직한 북성동과 신포동이었다. 이곳은 인천항이 개항하고 최초의 근대 철도인 경인선이 생긴 이후 여러 역사의 흥망성쇠를 함께했다. 쇄국정책을 보리고 개항을 선택한 조선이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전초 기지가 인천항이었고 최초 근대식 시설이 차례로 들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인천항은 서구 열강과 일제 침략의 역사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던 아픔도 지니고 있다. 6.25 한국전쟁 당시에는 북한군의 남침에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던 국군과 유엔군이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킨 인천 상륙 작전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이후 인천항은 수출 주도의 경제 정책에 밀려 부산항에 비해 발전이 더뎌지기도 했지만, 최근 중국과의 무역이 늘어나고 인천공항과의 연계를 통해 새로운 무역항으로 발전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인천항은 우리 근대사의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집약된 곳이라 할 수 있다. 프로그램에서는 북성동, 신포동의 곳곳을 다니면서 시간의 흐름이 점점 더 빨리지는 현실에도 과거의 전통을 놓지 않고 있는 이들과 고단한 현실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신포동 차이나타운 주변의 중국 양화점 (KBS 홈페이지)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중국풍의 느낌이 가득한 차이나타운에서의 여정이었다. 인천항 주변의 차이나타운은 과거 청나라의 조계지, 즉, 치외법권 지역이 생기면서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군락을 이룬 것이 그 기원이 됐다. 1980년대 화교들에 대한 재산권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가 내려지면서 쇠퇴기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양한 중화요리 전문점이 밀집한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거듭났다.
인천의 차이나타운에서는 중국 전통 방식의 음식점이 눈길을 끌었는데 지금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화덕 만두집과 중국 전통의 구슬 신발을 만드는 양화점에서 전통을 지키고 이어가려는 이들의 끈기와 의지를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자동화된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수작업으로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화덕 만두집과 양화점의 주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힘든 현실에서도 중국의 전통문화를 지키고 계승하고 있었다. 문화의 다양성이 이제는 소중한 자산이 되는 현실에서 가치 있는 곳이었다.
얼음물에 손을 담갔다가 화덕에 굽는 화덕만두 (KBS 홈페이지)
중국 전통문화의 향기를 뒤로하고 여정은 인천항을 찾는 선원들의 쉼터였던 오래된 여관과 그 여관을 개조해 운영 중인 카페로 향했다. 이곳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고 그 독특함은 젊은 손님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었다. 낡은 LP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팝 음악의 선율은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마음을 이동시켰다.
카페의 올드팝 선율에 발을 맞추며 향한 또 다른 장소는 쫄면으로 이름난 한 분식집이었다. 그곳에서 중년의 손님들은 과거 학창시절을 추억했고 젊은 손님들은 쫄면의 독특한 식감을 즐기고 있었다. 분식집에서 우연히 소개받은 쫄면 공장에서는 쫄면이 냉면을 만들다 실수로 만들어졌다는 유래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만약, 그 실수가 없었다면 지금의 쫄면을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는 점에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옛 격언이 딱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2019년 운세는? (KBS 홈페이지)
바다가 보이는 인천항 부두로 나선 여정은 그 한편을 지키고 있는 거대한 곡물 저장창고를 보여주었다. 수입 곡물이 저장되는 그 창고는 그 높이가 22층 아파트 높이와 필적할 정도였다. 그 창고가 더 눈길을 끈 건 창고 전체를 수놓은 그림이었다. 동화의 장면들을 각 기둥마다 그려 넣은 그림은 하나의 스토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그림은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삭막할 수 있는 항구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명소이기도 했다.
인천항 부두를 떠나 발걸음은 갯벌 포구인 북성포구로 이어졌다. 북성포구는 밀물과 썰물에 따라 배가 운행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곳으로 주변의 공장과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과거 북한에서 월남한 이들이 정착하면서 어촌이 형성되었고 지금도 북성포구를 터전 삼아 삶을 꾸려가는 이들이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 작은 배에 의지해 물고기를 잡고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선장과 만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바다에서의 힘든 삶을 물려주지 않으려 했지만, 아버지 사후 그 삶을 이어받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배를 타는 일이 맞지 않아 항상 배멀미에 시달리는 선장은 조업을 하는 일이 여전히 고통스럽다. 하지만 가장의 책임과 의무는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매일매일 새벽 바다로 그를 향하게 하고 있었다. 그런 아들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어머니는 항상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이런 어머니의 진심이 그를 지켜주었는지 그는 바다를 터전으로 힘차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 인천항을 따라 자리한 북성동과 신포동은 과거의 역사를 간직한 채 사람들의 삶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삶 속에서 희망을 찾는 이들이 노력과 의지들이 모여 인천항은 그 역사를 계속 이어올 수 있었다. 북성동과 신포동을 가로지른 여정에서 인천항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KBS 홈페이지)
[뿌리깊다 인천항 - 인천 북성동, 신포동]
□ 중국의 맛과 향 차이나타운 화덕 만두
인천 속 작은 중국을 만날 수 있는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중국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중국 문화가 형성된 곳이다. 100년이 넘은 이 거리에서는 오늘도 자국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화교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350℃를 오가는 화덕의 열기 속에도 아랑곳 않고 하루에도 수백 번 항아리 속에 팔을 집어넣어 만두를 굽는 주인 곡창준 씨. 사라져 가는 중국의 음식문화를 알리고 싶어 만두를 옹기에 직접 굽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배우 김영철은 갓 구운 화덕 만두를 맛보며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만두가게 주인이 연신 흘린 땀방울의 의미를 떠올린다.
□ 역사의 이정표 청일조계지 계단
인천은 개항을 통해 외국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외국인들의 거주 공간인 조계지가 형성되었다. 인천역 앞 차이나타운 부근에는 중국과 일본 조계지의 경계가 되는 계단이 있다. 계단의 좌측은 중국식 석등, 우측은 일본식 석등이 일렬로 나란히 놓여있는 청일조계지 계단. 계단 좌측에는 중국의 차이나타운 거리가, 우측 너머로는 일본식 목조 건물을 볼 수 있는 거리가 색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 아버지의 유산, 삼형제의 자부심 구슬 신발
중구 거리에는 다양한 화교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배우 김영철은 진열장 위에 알알이 구슬이 박힌 독특한 신발을 구경한다. 이 신발은 중국 스타일의 구두를 한국인들의 취향에 맞게 개량해 100% 수작업으로 만들고 있다는데. 화교 2세인 삼형제가 운영하고 있는 양화점.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엄격한 아버지에게 신발 제조 과정을 배웠다. 당시는 무척 힘들었지만, 이제는 하루라도 쉬면 몸이 아프다는 42년 경력의 구두장인 형제. 때론 아버지의 가르침이 너무나도 엄격해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니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건 신발제조 기술만이 아닌,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었음을 깨닫는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거주하며 구두를 만들던 2층 작업장을 김영철에게 특별히 공개하는 형제. 그곳에서 배우 김영철은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구두를 짓는 형제를 보며 가업이 주는 고귀한 정신을 다시금 느낀다.
□ 선원들의 쉼터에서 음악다방으로 인천여관
후미진 골목 안쪽 낡은 간판 위에 쓰인 이름, ‘인천여관’. 배우 김영철이 쉽게 찾아가기 힘든, 거기에 낡을 대로 낡은 외관과 독특한 간판의 모습에 이끌려 향한 곳은 1965년에 지어진 여관 건물을 개조한 카페였다. 인천항 개항 후 물밀 듯 들어오는 외국인 손님들과 선원들이 묵어갈 숙소가 필요해지자 중구 근처에는 호텔을 비롯해 여관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곳 인천여관은 큰길가에 자리 잡은 숙박업소와의 경쟁에 밀려 쇠락하게 됐다는데. 이곳을 현재의 주인이 카페 겸 음악 감상실,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디제이 부스에 꽂혀있는 수많은 LP판들을 구경하던 김영철은 옛 추억을 떠올리며 카페를 찾은 손님들을 위해 일일 특별 DJ가 되어본다.
□ 냉면을 뽑으려다 쫄면이 됐다?!
골목을 걷다 발견한 한 낡은 분식집에는 유난히 중장년 손님이 많다. 과거 학창시절 즐겨 먹던 추억의 쫄면 맛을 잊지 못해 또래 친구들과, 자식들과 이곳 분식점을 찾는 중년들이 많다는데. 이곳에서 배우 김영철은 쫄면을 먹고 난 후, 식당주인에게 쫄면 탄생의 비화와 함께 쫄면을 처음으로 만든 제면소를 소개받는다. 이야기인즉슨, 한 제면소에서 냉면을 뽑으려던 직원이 기계 조작의 실수로 굵은 면을 뽑았는데, 그냥 버리긴 아까워 갖은 양념을 넣어 먹어보니 쫄깃하고 맛이 좋아 탄생한 것이 쫄면의 시초가 되었다고. 새콤한 쫄면을 탄생시킨 역사적인 기계 앞에서 김영철은 예측 불가능한 삶이 주는 행운에 웃음을 짓는다.
□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벽화가 이곳에 인천항 곡물저장고
인천항 부두를 거닐던 김영철은 거대한 벽화가 그려진 대형 곡물저장고를 발견한다. 이 벽화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벽화로 기네스 기록 인증을 받은 인천항 곡물저장고. 아파트 22층 높이의 수입 곡물 저장고 벽화는 16권의 책 표지 형태로 그려졌는데, 어린 소년이 책 안으로 들어가 추수를 끝낸 성인 농부로 성장해 나오는 모습을 담고 있다.
□ 북성포구를 아시나요?
인천 유일의 갯벌 포구인 ‘북성포구’. 근대산업의 역사와 함께하는 이곳은 예전부터 북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이 터를 이루고 살던 곳이다. 북에서 내려온 후 배를 탔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배를 타는 아들 김춘배 씨. 아버지는 아들에게 힘든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배 타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장의 몫까지 짊어지게 된 어머니를 위해 아들은 자연스럽게 그 빈자리를 이어받았다. 유난히 배 멀미가 심해 배 타는 날마다 녹초가 되어 돌아온다는 아들. 그런 아들의 고생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힌다. 새벽 바다에 아들을 맡기고 편치 않았을 어머니의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는 김영철. 바다는 모자의 노력과 눈물에 보답이라도 하듯 싱싱한 꽃새우와 각종 생선을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