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근교의 산 중에서 가장 높고 산세가 웅장하다는 북한산. 바로 그 아래 자리한 동네에는 마치 시간이 비껴간 듯 70~80년대의 모습을 간직한 주택가 골목과 마을이 있다. 한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며 삶의 온기를 전하는 이웃들, 그리고 무심코 길을 걷다 유명한 건축가의 건축물을 만날 수 있는 곳. 북한산 아래 소박한 우리 이웃들의 동네, 불광동과 녹번동에서 세 번째 여행을 시작한다. (KBS 소개글)
잔잔한 영상으로 우리 동네를 탐방하는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가 찾은 3번째 동네는 서울 은평구 그중에서 북한산 바로 아래 자리한 불광, 녹번동이었다. 불광, 녹번동은 삭막한 서울에서 자연의 숨결을 가득 느낄 수 있는 북한산이 병풍처럼 동네를 감싸고 있고 한옥이나 역사 유적지는 없지만, 점점 사라져가는 추억 속의 장면들이 함께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오래전 지어진 단독 주택들과 다세대 주택들이 유독 많은 이 동네의 골목길을 걷다가 만난 동네 탐방의 첫 장소는 부자가 운영하는 대장간이었다. 이 대장간은 80대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대장간을 이어받아 운영하는 아들이 힘차게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마트에 가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쇠로 만든 생활용품들이지만, 이 대장간에서는 사람의 힘으로 제품을 하나하나 만들고 있었다.
길고 힘든 작업이지만, 여전히 이 대장간에서 만든 제품을 찾는 단골손님들이 있어 그들로 인해 이 대장간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고 우리 동네에 한편을 지키고 있었다. 제품마다 새겨진 "불광" 이라는 대장간의 낙인은 대장간을 지키는 부자의 자부심과 긍지, 그들의 노력을 그대로 함축하고 있었다.
대장간을 지나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 방앗간을 찾았다. 이 방앗간은 앞서 만난 대장간과 함께 수십 년을 이 동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손쉽게 떡을 사서 먹을 수 있는 시대지만, 이 동네 방앗간에는 떡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 김장철에서는 고추를 빠서 가져가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었다. 이곳의 주인과 손님들은 마치 가족과 같이 서로와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동네의 사랑방 같은 이 방앗간을 주인의 수십 년 가정사와 함께 하는 또 다른 역사가 가득한 곳이었다.
불광동에서의 발걸음은 우리나라 건축사에서 중요 건축가 중 한 명이고 이제 고인이 된 고 김수근의 마지막 작품 불광동 성당을 지났다. 불광동 성당은 우리나라 100대 건축물에 포함될 정도로 건축물이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동네 한 편에 우뚝 자리하고 있었다.
성당을 지나 녹번동으로 향하는 길, 큰 표지석에는 녹번동의 원래 이름이 양천리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곳은의주에서 천리, 부산에서 천리의 거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국토의 중심에 있었다. 양천리라는 이름도 그렇게 유래됐다고 한다. 지금은 녹번동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녹번동은 상당한 상징성을 지닌 곳이었다.
녹번동에는 서울 혁신파크라는 명소가 있다. 이곳은 과거 질병관리본부가 있었던 곳으로 질병관리본부가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비게 된 공간을 지역민들을 위한 공원, 공공장소로 변화시켰다. 이곳에서는 도서관, 미술관, 동네 책방, 예술 활동을 위한 장소, 청년들 위한 열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이곳은 소통의 장소로 시민들의 쉼터로 질병관리본부가 수행했던 공공적 성격의 일을 더 발전시켰다. 과거와 현대가 멋지게 조화를 이룬 곳이었다.
서울혁신파크를 떠나 골목길로 접어든 발걸음을 노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중화음식점이었다. 방송에 나와 이름이 알려지고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으면 손님들에 소홀해질 수 있음을 걱정하는 노부부의 마음을 담은 중화 음식점은 면을 제면기로 직접 뽑아내고 짜장 소스를 그때그때 만들어 내는 등 짜장면 한 그릇에도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짜장면 하면 신속 배달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불광동의 중화 음식점은 음식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곳이었다.
짜장면의 구수한 냄새를 뒤로하고 찾은 녹번동의 또 다른 명소는 산골마을이었다. 얼핏 시골의 산골마을은 시골의 두메산골을 생각하게 한다. 실제 이 마을은 10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독특한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 마을 입구에는 각각의 집이 가지고 있는 이력과 특색을 살린 이름들을 표시한 간판이 눈에 띄었다. 이 마을의 이름은 서울시에서 유일한 광산이고 산골이라는 한약재로 사용하는 광 물질을 생산하는 산골 광산에서 유래됐다. 서울 속 오지와 같은 곳이지만, 마을의 사람들의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 산골마을에는 서울에서 얼마 안 남은 연탄을 사용하는 집이 있고 그곳에서는 수십 년의 추억을 간직한 집을 지키는 할머니가 홀로 그 집을 지키고 있었다. 결혼 직후 한국전쟁 때 남편을 떠나보낸 할머니는 그곳에서 자녀들을 키우고 장성한 자녀들이 떠난 이후에도 불편함에도 그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할머니에게는 자신이 그 집에서 쌓아온 추억들이 너무나 소중했다.
연탄아궁이 집의 추억을 뒤로하고 찾은 곳은 산골마을에서 운영하는 극장이었다. 그 그 극장은 몇 개 안되는 좌석이 있었지만, 마을 주민들이 상영된 영화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장소였다. 이 극장은 이 마을의 유일한 30대 청년이고 운영하고 있었다. 이 극장은 재활용품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극장을 구성하고 산골마을의 문화예술 공간이지 소통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었다. 이 극장은 사장은 자신의 생업을 하면서도 마을 주민들을 위해 자신의 공간을 함께 내어주고 있었다.
이렇게 불광동, 녹번동의 사람들은 화려한 도시의 삶과는 다른 과거를 함께 간직하면서도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따뜻함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아파트의 편리함에 익숙한 도시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을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이 동네에서는 이웃과 교류가 없는 도시의 삭막함을 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어떤 것이 진정 행복한 삶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했다.
[반갑다 북한산 아랫동네 - 서울 불광, 녹번동]
□ 북한산이 품은 동네, 북한산 둘레길에서 시작하는 동네한바퀴
서울 근교의 산 중에서 가장 높고 산세가 웅장하다는 북한산. 그 아래 자리한 동네에는 마치 시간이 비껴간 듯 70~80년대의 모습을 간직한 주택가 골목과 마을이 있다. 이 길을 걸으며 배우 김영철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추억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에 젖어들었는데. 우연히 골목길에서 만난 따뜻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켜온 장인 & 동네를 사랑한 방앗간 집 주인
길을 걷다 동네 어귀에서 문득 들려오는 소리. 그 희미한 소리를 따라 배우 김영철이 찾아간 곳은 대장간. 그곳에는 뜨거운 가마의 열기에도 아랑곳 않고 쉼 없이 매질을 주고받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올해로 63년째, 전통방식만을 고수하는 80세의 아버지와 대를 이어 대장장이로 살고 있는 50세 아들. 평생 대장장이로 살아온 80세 아버지의 팔뚝에는 마치 훈장처럼 불에 덴 상처들로 가득하다. 100% 수작업만을 고집하며 대장장이로서의 뚝심과 자부심을 지켜나가는 아버지와 아들. 김영철은 이들 모자를 통해 장인의 숨결을 느낀다. 골목에서 만난 또 다른 이웃, 자신의 일상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남겨둔 방앗간 집 여주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까닭에 자신의 일터이자, 지난 30년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이곳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한다. 이 마을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는 방앗간에는 아침부터 손님들로 북적인다. 일손이 바쁘면 가게를 찾아온 손님에게 직접 일을 시키기도 하는데. 유쾌한 여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김영철은 그녀의 그림을 함께 보며 일상의 행복은 저 멀리에 있지 않음을 느낀다.
□ 한국 100대 건축물! 거리에서 발견한 보물, 불광동성당
불광동 거리를 걷다 만나게 되는 건물.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번쯤은 돌아보게 되는데. 이곳은 바로, 한국 100대 건축물 중 하나인 ‘불광동성당’이다. 한국 근현대 건축 문화사를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의 3대 종교 건축물이자,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마치 양손을 모은 채 기도하는 형상을 띄고 있는 것이 불광동성당의 특징. 이곳에서 김영철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나마 경건한 마음을 가진다.
□ 시간이 멈춘 곳.. 느림의 미학, 자장면 집 할아버지
골목길을 걷다보면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자장면 집도 만날 수 있다. 손님상에 올리는 물 한잔도 결코 소홀히 생각지 않는 곳. 자신들을 믿고 찾아오는 단골들에게 더 좋은 음식을 제공할 수 없을 것 같아 방송출연은 하지 않겠다며 고사한 자장면 집! 불지 않는 면발과 신선한 음식 맛을 위해 주문과 동시에 면을 뽑기 시작하고, 춘장을 볶는 주인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곳에서 배우 김영철은 주인 할아버지와 간자장 한 그릇을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가게는 비록 오래되어 낡고 볼품없어 보일런지 몰라도 음식에 대한 노부부의 확고한 철학과 인생관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 국민건강을 관리하던 장소에서 시민의 휴식처로, 서울혁신파크
남으로는 부산 동래, 북으로는 의주까지 양쪽으로 천리라 해서 과거 양천리로 불렸던 녹번동. 남과 북의 중심지라 불리던 이곳은, 과거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각종 질병을 연구했던 질병관리본부가 자리했던 곳이다. 이곳이 시민들의 쉼터이자 꿈을 실현시키는 ‘서울혁신파크’로 탈바꿈했다. 이곳을 거닐며 김영철은 어릴 적 예방주사를 맞으며 무서워했던 추억을 떠올려본다. 누구나 자유롭게 책을 보고, 잠시 누워서 쉴 수도 있는 곳.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도, 태양열 전지판을 활용해 꿈을 펼치는 작업장도 각각 과거 질병관리본부의 시약창고와 방역창고를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다. 동화책 읽는 정겨운 소리를 따라 찾아간 책방 안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김영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꿈을 키워나가는 젊은이들을 만나며 공간이 주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다.
□ 녹번동 산골마을, 그 이름에 얽힌 비밀...
전국에서 가장 작은 광산이자,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광산이 녹번동에 있다?! 이 광산에서 채취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산골(山骨)’. 동의보감에 따르면 이 ‘산골’은 골절에 도움을 주는 약재로 알려졌다. 이 약재의 이름에서 유래한 산골마을에 도착한 배우 김영철. 이곳은 70년대 후반에 조성된 마을 모습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재개발에서 밀려나 가파른 언덕 비탈길에 위치한 마을. 이곳에서 김영철은 연탄을 배달하는 인부를 도와 이 마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연탄 아궁이집을 방문한다. 그리고 따끈한 아랫목에 앉아 50년 넘게 산골마을에 거주 중인 할머니의 추억담을 듣는다. 산골마을 어르신들의 숨겨진 아지트를 찾아간 김영철. 그곳은 다름 아닌 총 8석 규모의 산골영화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영화관을 만든 사람은 3-4년 전 이 마을로 이사를 온 한 젊은이. 이 마을의 유일한 청년이라 자동으로 청년회장직까지 맡게 되었단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소박한 삶의 가치와 행복을 일구는 사람들. 장인의 뚝심으로 오늘도 물건이 아닌 자부심을 판매하는 대장장이 부자. 비록 많이 팔지는 못하더라도 자신들을 믿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늘 한결같은 최상의 맛을 대접하고픈 자장면 집 노부부. 자신의 이익 보다 자신이 맡은 일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있어 참 고맙고 반가운 동네. 이 거리를 거닐며 배우 김영철은 진정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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