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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_이야기(16)] 풍속화의 거장 김홍도(인물소개①)

박태숙 작가 승인 2019.04.26 21:07 의견 0

김홍도는 우리나라 옛 화가 중 대중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으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화가 중 하나일 것입니다. 오늘은 김홍도의 작품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어떤 삶을 살았는지 대략적으로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김홍도는 조선시대 화가로서 중인출신이면서 궁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원(員)이였습니다. 1745년부터 1806년까지 조선 영조시대부터 정조와 순조의 재위기간 동안 약 62년간 살았습니다.

김홍도의 조상은 하급무관출신으로 그의 집안에서 화원이 된 것은 그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보통 화원들은 집안 내력으로 화업(業)에 종사해왔던 경우가 많은데, 이것을 볼 때 그의 타고난 그림솜씨가 남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조선시대에는 성리학 사상 아래 학문을 닦는 양반 위주의 사회였기 때문에 중인 출신에, 당시 사소하게 여겨졌던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현재까지 이름과 작품을 알리게 된 건 정말 흔한 일은 아닙니다.

김홍도의 출생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 안산에서 첫 번째 은인 강세황을 만나게 됩니다. 강세황은 어린 김홍도의 천부적인 소질을 알아보고 그림지도를 해주었으며, 김홍도는 그의 추천으로 젊은 나이에 궁의 도화서 화원이 됩니다.

강세황은 높은 식견과 안목을 갖춘 사대부 화가로서 그림 제작과 화평(畵評) 활동을 통해 당시 화단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강세황은 김홍도의 출신과 나이 상관없이 제자로 받아들였으며, 직장의 상하 관계로 나중에는 강세황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예술적 동지로 이어졌습니다. 강세황이 김홍도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용주사 대웅보전의 삼존상 뒤에 있는 후불탱화와 삼존상의 모습 ⓒ 용주사 홈페이지


화원이 된 후, 김홍도는 두 번째 은인 정조를 만나게 됩니다.

김홍도가 살았던 시기는 대체로 태평했고 아무런 병란이 없었던 평화스런 시기였습니다. 영조와 정조가 오랜 기간 동안 백성을 위한 정치에 온 힘을 쏟았기에 그가 살았던 시기는 조선후기의 문화예술이 꽃피는 문예부흥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종에 비길 만큼 훌륭한 정치를 펼치면서도 학문, 글씨, 예술적 감각까지 갖춘 정조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 속에서 김홍도는 당대 최고의 화가로써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습니다.

3차례나 임금의 초상화를 그린 것, 창덕궁에 ‘해상군선도’라는 커다란 벽화를 그린 것, 국왕의 친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한 절 용주사 대웅전에 조선 후기 명작으로 꼽히는 불화를 제작한 것, 정조가 평생 핵심으로 공부해 온 ‘대학(大學)’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게 한 것, 임금이 직접 볼 수 없던 금강산이나 단양팔경을 그려오라고 지시한 것 등 어명에 따른 특정한 그림을 그리게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예를 볼 때 김홍도는 국왕직속의 화원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하급공무원에 불과한 화원인 김홍도의 이름이 정조의 문집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화원은 중인이 할 수 있는 전문직종이었지만, 높아야 종6품의 벼슬에 그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김홍도는 큰 출세라 할 수 있는 충청도 연풍고을의 현감까지 지냅니다. (오주석 『단원 김홍도』 솔출판 p12~13참조)

이렇듯 정조가 김홍도를 곁에 두고 일만 시킨 것이 아니라 김홍도를 각별히 아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김홍도 자화상. 호리호리한 외모가 눈에 띈다 ⓒ 위키백과



김홍도의 외모는 어떠했을까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나무를 보면 대체로 늘씬하고 길게 그려서 고고한 인상을 주는 특징이 있는데, 이를 통해 김홍도의 키도 크고 늘씬했을 걸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조희룡의 <호산외사>에 의하면 “김홍도는 풍채가 아름답고 마음 씀이 크고 넓어서 작은 일에 구속됨이 없으니 사람들은 신선 같은 사람”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강세황의 <단원기>에는 “단원의 인품을 보면 얼굴이 청수하고 정신이 깨끗하여 보는 사람들은 모두 고상하고 세속을 초월하여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다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 김홍도 [金弘道] (두산백과) 참고 -

김홍도는 단순히 그림솜씨만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거문고, 당비파, 생황, 퉁소 등을 연주하는 음악가로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일찍부터 평판이 높았던 서예가이고, 빼어난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미술과 문학과 음악 등 다양한 예술적 안목과 감수성, 여유로운 인품과 교양까지 두루 갖춘 종합예술인이었으니, 임금인 정조와 사대부인 강세황이 김홍도를 곁에 두고 특별히 아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김홍도의 그림에서도 김홍도의 여유롭고 낙천적인 분위기와 여유롭고 해학적인 기질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태평했던 그 시대를 반영하고 있으며 조선문화에 대한 자긍심도 엿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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