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_이야기(17)] 풍속화의 거장 김홍도(인물소개②)
칼럼니스트 박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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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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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대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그림은 ‘풍속화’일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김홍도는 풍속화만 그린 작가는 아닙니다. 그는 조선시대에 그려지던 거의 모든 회화를 소화해내며 다수의 명작을 남긴 조선 최고의 화가입니다.
▲ 김홍도의 금강사군첩 중 <옹천(甕遷)>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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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경산수화
진경산수화는 18세기 새롭게 유행하기 시작한 화풍입니다. 겸재(謙齋) 정선은 이전에 유행하던 실경산수화의 화풍을 넘어 18세기 초 독보적인 진경산수화를 만들어냅니다. 진경산수화는 겸재 정선 이후 18세기 후반이 되면서 일부 중인 서얼 층에 있던 문인화가들이 제작에 동참하며 다양한 양상으로 변화합니다.
김홍도는 이보다 더욱 치밀하고 사실적인 화풍의 산수화를 남겼습니다. 그가 남긴 진경산수화 중 대표작은 60폭짜리 <금강사군첩(金剛四君帖)>입니다. 김홍도가 직접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관찰하며 그린 그림입니다. 금강산을 실제로 볼 수 없었던 정조가 김홍도에게 금강산을 그려오라는 어명을 내리면서 제작되었습니다.
▲ 김홍도 금강사군첩 중 <총석정叢石亭)>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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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금강사군첩은 정선의 화풍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걸작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또한 겸재 정선의 화풍을 벗어나 한국적인 산수화풍을 만드는데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그림으로 조선후기 진경산수화가 발전할 수 있었죠.
◆ 신선도
김홍도가 살던 시대엔 신선도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당시 김홍도가 그린 신선도는 필적하는 다른 자가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고 합니다.
김홍도는 정조의 어명으로 창덕궁 벽에 신선들이 모여있는 <군선도(群仙圖)>를 그렸습니다. 조희룡의 <호산외사>에 따르면 “김홍도가 비바람이 몰아치듯 붓을 휘둘러 몇 시간 만에 커다란 벽화에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를 그렸는데 일렁이는 파도는 집을 무너뜨릴 듯하고 신선들의 걸어가는 모습은 구름을 넘는 듯하다”고 전합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그림이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 김홍도 <군선도 병풍>. 국보로 지정되었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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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보로 지정된 <군선도 병풍(群仙圖屛風)>이 있어 그가 그린 신선도가 어느 정도의 작품성을 가졌는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김홍도의 신선도 중 대표작으로 그가 31세에 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군선도 병풍(群仙圖屛風)>은 신선 중 최고 여신인 ‘서왕모(西王母)’의 잔치에 초대받고 바다를 건너는 신선들의 무리를 묘사한 작품입니다. 신선들을 세 무리로 나누어 그렸으며 화면의 왼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형상입니다. 이 그림은 배경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인물만을 그렸습니다.
옷의 윤곽을 굵은 먹 선으로 그려내 빠르고 힘이 넘치면서 활달함을 표현했습니다. 얼굴과 손, 들고 있는 물건들은 가는 필선으로 그려냈습니다. 정확하고 섬세한 붓터치로 개개인의 살아있는 표정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신선그림은 신선을 신비롭게 묘사하기 위해 과장되거나 괴이하게 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김홍도의 신선도는 인간미가 넘치면서도 괴이함을 피하려는 미적 정서를 기반으로 그려졌습니다. 그의 그림에 나타난 신선은 당대의 조선시대 사람을 그려낸 듯 인간과 매우 흡사합니다.
▲ 김홍도의 대표작. 왼쪽부터 <서당>, <행상>, <씨름>.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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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속화
김홍도하면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대표작은 역시 풍속화입니다. 서당이나 무동, 벼 타작, 씨름 등 이름만 들어도 우리의 머릿속에 잔상처럼 떠오릅니다. 풍속화는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 존재했던 화풍입니다. 김홍도는 조선후기에 새로운 풍속화를 창조하고 대중화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김홍도의 풍속화는 보물로 지정된 <단원풍속도첩>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배경을 생략하고 탄탄한 구도 속에 인물 중심으로 그렸습니다. 각 계층의 사람들의 일상적인 장면이나 생업에 종사하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풍속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신체적, 심리적 상태를 힘 있고 간결한 필체로 표현하면서도 소탈하고 감칠 맛나게 묘사했습니다.
▲ 프랑스 기메박물관에 있는 김홍도의 행려풍속도 일부.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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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는 새롭게 창안해낸 생활풍속화를 한 장의 그림으로만 그리지 않았습니다. 여러 장의 작은 그림을 책의 형태로 만든 화첩부터 궁중이나 특별한 날에만 쓰는 병풍까지 제작했습니다.
김홍도는 병풍형태의 풍속화에 산, 강, 논, 자연경관과 가옥 등 그림의 배경을 세밀하게 묘사했으며 사람들의 행렬이나 행동, 표정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김홍도는 회화의 모든 장르에 걸쳐 최고의 경지에 올랐을 뿐 아니라 본인만의 고유화풍을 독자적으로 확립시키면서 후대의 화가 김득신, 신윤복 등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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