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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작가의 3.1혁명(7)]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주도한 만세운동①

이동진 작가 승인 2019.05.07 11:31 | 최종 수정 2019.07.04 01:51 의견 1

3.1운동은 민중이 중심이 되어 진행한 만세 혁명입니다. 여성들도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나 크게 조명되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성 독립운동가에 초점을 맞춰 보려고 합니다.

먼저 기생 출신의 독립운동가를 알아보겠습니다. 당시 기생출신들이 3.1운동에 많이 참여했습니다. 기생은 당시 천민계층의 사람인데다가 성별도 여성이기 때문에 많은 차별을 받았지만 3.1운동에서 그들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3월 19일 진주에서는 기생독립단이 만세운동을 하며 시위행진을 합니다. 3월 31일에는 안성의 기생조합에 소속된 기생들이 만세를 불렀습니다. 3월 29일 수원에서는 기생 김향화가 건강검진을 핑계로 동료 기생 32명과 병원으로 이동하던 중 만세운동을 벌였습니다. 4월 1일에는 황해도 해주에서 읍내 기생들이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죠. 이들이 시위를 주도하며 약 3천 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만세운동으로 확장됩니다. 4월 2일에는 경상남도 통영에서 기생들의 만세운동이 전개됩니다. 이때 기생들은 감옥으로 잡혀가 옥고를 치릅니다.

▲ 기생 김향화. 수원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감옥으로 잡혀가 옥고를 치른다. ⓒ위키백과

기생 김향화는 태극기를 들고 기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합니다. 이후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죠. 8개월의 선고를 받고 난 이후에 김향화의 기록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옥살이를 하던 중 죽음을 맞이했거나 감옥에서 나온 후 고문 후유증으로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해주 시위를 이끌었던 기생 김월희, 문월선, 김용성, 문재민, 옥운경 역시 감옥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기생이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여성이자 기생의 신분을 가진 당시 소외계층이 나라를 빼앗겼다는 데에 분노를 하고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이죠. 또한 이들은 사회적인 신분은 낮았을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만세운동을 통해 자신들이 누리던 부를 포기했다는 것은 대단하다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1운동은 아니지만 손병희의 부인이었던 주옥경 역시 독립운동에 열심히 참여합니다. 특히 주옥경은 여성의 사회운동을 중요시 여겨 1924년에 손병희의 딸 손광화와 함께 ‘내수단’을 설립합니다. ‘내수단’은 천도교 여성신도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여성 계몽운동과 의생활 개선운동 등 사회운동에 앞장섰습니다.

▲ 서대문형무소에 있는 여옥사.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도 소개하고 있다. ⓒ 김혜령 기자


독립운동의 꽃이라 하면 우리는 유관순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북한 지역에도 유관순처럼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동풍신이 있습니다.

동풍신은 함경북도 출신으로 함경북도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동풍신의 아버지 역시 만세운동을 하다가 총을 맞고 숨을 거둡니다. 이에 동풍신은 아버지의 시신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린 뒤 만세운동을 전개했다고 합니다. 시위를 하던 중 붙잡혀 함흥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 이후 1921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서대문형무소에는 ‘여옥사’라고 해서 여성 독립운동가 만을 가뒀던 수용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동풍신에 대한 기록은 형무소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왜 그럴까요 혹 북한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이끌어간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동풍신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북한 출신으로서만 기억할 것 아니라 한 시대의 독립운동을 이끌어간 여성 독립운동가로 기억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글쓴이: 이동진 / 시민들과 함께하는 역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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