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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바른협동조합 실천운동본부 최양부 이사장은?

주동식 객원편집위원 승인 2015.01.27 15:43 | 최종 수정 2019.07.15 14:23 의견 0

 

최양부 이사장은 오랫동안 국내 농업정책 전문가로 일관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유난히 눈에 띄는 사항이 있다. 1993년 12월부터 1998년 2월까지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 내내 농림해양수석비서관(약칭 농정수석비서관)으로 일한 경력이 그것이다. 이 직책은 그 이전에는 없었고 그가 물러난 이후에 사라졌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그가 유일한 경험자라고 할 수 있다.이 직책은 당시 우리나라 농어촌의 초미의 관심사였던 우루과이라운드(UR)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농수산물 수입이 대부분 자유화되는 UR에 대비하기 위해 신농정이 강조되고, 대통령 자문기관으로 농어촌발전위원회(농발위)를 만들어 독자적인 보고서를 제출토록 하는 등 청와대와 정부가 이 문제를 대하는 시각에서도 긴장감이 감돌던 시기였다.

 

당시 최 수석은 농발위원 30명과 실무위원 10명 등 40명 전원을 순수 민간인으로 구성했다. 대통령 직속의 이런저런 위원회가 많았지만 정부 공무원이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위원회는 농발위가 유일했다. 게다가 전농, 한농연, 농협 대표 등을 포함, 농업 관련 관변 및 재야단체 대표들을 모두 포괄하는 최초의 사례였다. 당연히 정부 부처에서는 “세상에 이런 위원회가 어디 있느냐”며 반발이 심했다. 그런 인적 구성으로는 UR 대책에서 제대로 결론이 나올 수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최 수석은 이런 반발에 대해 적극적인 논리로 대응했다. 즉 “민간 관계자들이 자율적인 토론을 거쳐 결과물을 만들어내면 정부가 그것을 심사하고 판단해서 수용할 것인지 물리칠 것인지 판단해야지, 토론 단계부터 정부가 개입해 자기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만들어낸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논리였다.결국 이런 논리가 관철되어 1994년 2월 1일 청와대에서 30명의 농발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대통령과 식사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청와대 식사 이후 이들은 한농연에 가서 정관 작성 회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날은 대학로에서 UR 재협상을 요구하는 시위가 예정돼 있었고, 농발위 임명장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이 시위에 참가했다. 농발위원들의 성향이나 경력 등으로 봐서 당연한 일이었다.

 

¶ “정부 사람들끼리 만든 보고서 인정할까”

 

하지만 이들이 시위 도중 종로서로 끌려가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들이 “내가 대통령 농업 자문위원인데 왜 잡아 가두느냐”고 항의하면서 종로서 관계자들이 청와대로 사실 여부를 확인했던 것이다. 결국 청와대는 종로서에 “그분들 다 석방시켜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가 그대로 조용히 지나갈 수는 없었다.그 주 대통령이 참석한 수석회의에서 김영수 민정수석이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 “어떻게 대통령 자문위원에 그렇게 사상이 불건전하고 반체제적인 인물들을 포함시켜 대통령 임명장까지 줄 수 있느냐”는 지적이었다. 김 민정수석은 국가안전기획부 제1차장 출신으로 이런 문제에 강경한 시각을 갖고 있었다. 청와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최 수석 입장에서는 식은 땀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최 수석은 설득에 나섰다.

 

“민정수석님 관심은 고맙지만 지적하신 내용은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은 군사독재 정권 시절이 아니다. 독재정권 시절 탄압을 받았던 사람들 얘기도 들어야 한다. 우리끼리 모여서 그럴싸한 보고서를 만든다 해도 그 내용에 누가 승복하겠느냐 진정한 민주정부라면 재야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농발위에 포함시켰다.”

 

긴장감이 감도는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김영삼 대통령은 눈을 감고 묵묵히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최 수석 입장에서는 그런 침묵이 고통스러웠다. 침묵하던 김영삼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오늘 문제에서는 최 수석 얘기가 100% 옳다. 오늘 이 방을 나갈 때부터 민정수석 책임 아래 각 수석들이 노력해서 정부 안에서 이 문제로 시끄럽지 않게 수습하라.”

 

이후 정부 내에서는 이 문제로 더 이상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농발위를 구성할 때부터 정부 각 부처에서 “어떻게 빨갱이, 재야단체 사람들을 대통령 직속 위원회에 넣을 수 있느냐”는 항의 전화가 많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잠잠해졌다. 민주화 투쟁의 주역으로서 군부정권이라는 호랑이 굴에 직접 들어가 호랑이를 잡았다는 자부심에 충만했던 김영삼 대통령의 단순하고도 직선적인 스타일과 최 수석의 소신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농촌경제연구원의 부원장으로서 청와대 수석으로 갈만한 캐리어는 부족했지만 전문가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던 최 수석으로서는 자신의 소신과 능력을 믿어 수석으로 발탁하고 또 정책적 판단에 신뢰를 보여준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 감사했던 순간이었다.농발위원장을 선임할 때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문제의 대학로 시위가 있기 열흘 전쯤 김영삼 대통령이 최 수석을 집무실로 불러 이력서 한 장을 내밀었다. “이 사람을 농발위원장 시켜라”는 지시였다. 최 수석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최 수석의 판단은 대통령과 달랐다. 최 수석은 그런 자신의 의견을 즉석에서 밝혔다.“이 사람은 아닙니다!”대통령으로서는 의외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최 수석을 쳐다보며 “이유를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최 수석은 자신이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를 조목조목 밝혔다. 그러자 대통령이 결론을 내렸다.

 

“그럼, 당신이 책임지고 사람을 골라봐!”

 

이것은 무서운 얘기였다. 실무자로서는 변명이 통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정치 전문가 YS의 경륜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직접 책임을 지지 않고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는 분위기에서는 이런 YS식 단순명쾌함이 의외로 강력한 해결책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최 수석도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직간접적으로 이런저런 추천과 압력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자리를 욕심내는 사람도 많았다. 최 수석은 결국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 장로의 아들인 김범일 씨를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보수부터 극좌까지 포진한 농발위의 무지개형 인적 구성을 고려, 무색무취하지만 무게감과 권위를 갖춘 그가 적임자라고 본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도 이 인선에 만족해했다.

 

최 수석은 이렇게 만들어진 농발위에 90% 이상의 자율권을 부여했다. 사실 농발위의 의사결정에 개입한다는 게 불가능하기도 했다. 정부의 개입을 배제하고 자율권을 준다는 명분을 내세워 농발위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최 수석은 핵심 인물을 사적으로 극비리에 만나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위원회의 의견을 조율하고 관리했다.이렇게 해서 농협 민주화의 4가지 원칙이 만들어졌다. 신용과 경제사업의 분리, 조합원 중심의 운영, 중앙회가 아닌 지역 농협 중심 원칙, 경제(판매) 사업에 초점을 맞추기 등이 그것이었다. 최 이사장은 “이 4가지 원칙이 현재도 여전히 유효하다”며 “20여년 전에 만들어진 그 원칙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비극”이라고 말한다. 20여년 전의 문제의식이 여전히 현재성을 가진다는 얘기는 농협 개혁의 과제가 여전히 미해결 상태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최양부(1945~)(*사진출처: 네이버 인물정보)

 

1964년 서울대 농대에 입학, 농업경제학과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미주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을 거쳐 농림부장관 자문관으로 UR농업협상 정부대표로 일했으며 김영삼 대통령의 농림해양수석비서관으로 일했다.

 

1998년 농식품신유통연구원 이사장과 2003년 아르헨티나 대사 및 농업통상대사를 거쳐 2007년부터 농협제자리찾기국민운동 상임대표를 맡았다.2013년부터 사단법인 바른협동조합 실천운동본부 이사장으로 일해오고 있다.

 

전남대, 부산대, 고려대, 강원대, 서울대, 연세대 등에서 한국농정론, 농업문명론, 경제철학론, 농업경제학 방법론, 농업경제통계론, 농업정책학 등을 강의했으며 <80년대 새 농정방향의 구상(1981)> <21세기를 향한 농림수산경제의 갈등과 새 도전(1989)> <산업화와 일본 농업발전의 길(1990)> <강진농촌정주생활권개발계획(1982)> 외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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