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파크] 전지현의 ‘이유 있는’ 웨딩드레스, 영화 <암살>

강동희 기자 승인 2018.07.12 09:01 의견 0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독립군의 일화들은 어느 하나 뺄 것 없이 매우 훌륭한 소재입니다. 그들이 극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오로지 신념 하나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했다는 점부터, 현대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잔인하리만큼 말끔하게 잊히고 있다는 것, 총독 암살 작전에 무력 투쟁을 한 인물 중 여성이 있다는 영화적 사실까지. 이 얼마나 극적입니까.

독립군의 본거지인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있었다는 사실과 시대적으로 개화기여서 동양의 오랜 문물과 서양식 신문물들이 마구 뒤섞인 공간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미학적인 디테일 역시 영화 만드는 사람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죠. 최동훈의 <암살>엔 일제 강점기 독립군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감독이 하고 싶었을, 또한 관객들이 보고 싶었을 이야기를 꼼꼼히 담은 성실한 영화입니다.

숙제를 얼마나 잘 했나 한 번 볼까요. 일제의 만행에 대한 묘사, 있습니다. 이에 맞서는 독립군들의 비장함, 있습니다. 그 비장함 가운데서 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의연함, 있습니다.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목표에 목숨을 바치는 이들의 근원적인 불안과 허망함에 대한 묘사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국주의 정부 군인들의 각 잡힌 군복을 구경하는 재미까지 꼼꼼히 심어둔 영화입니다.

웨딩드레스 입은 전지현, 신선했다.

그러나 정작 영화에서 제가 정말로 재밌었던, 또 즐거웠던 것은, 근현대사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물로서의 영화가 아닌 연출자 최동훈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장면들이었습니다. 그중 역시 최고봉은 안옥윤(전지현 분)의 웨딩드레스고요.

'독립군 영화'로서의 작품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공정성을 획득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최동훈'은 많이 날아간 인상이었거든요. (그는 범죄영화 전문이지 않습니까!) 그나마 '가장 최동훈다운 장면'이 바로 영화의 절정부라 할 수 있는 그 웨딩드레스 혈투 장면인데, 그 쾌감이 정말이지 압도적이었습니다.

웨딩드레스 차림의 여인이 총부림하는 모습 자체는 사실 이 영화가 최초는 아니죠. 특히 가터벨트에 총알을 숨긴 여성 킬러가 자신의 각선미를 드러내는 모습은 이제 거의 클리셰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윤옥의 웨딩드레스 액션은 굉장히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뻔한 '취향'을 진부하지 않게 연출했단 얘기죠.

이 신선함은, '웨딩드레스 안에 가터벨트로 총알을 숨기고 부케에 감춘 총으로 하객 암살을 기도한 미모의 여성 암살자'의 모습이 그저 '페티쉬의 전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단 데서 비롯됩니다. 안옥윤의 웨딩드레스엔 눈앞에서 쌍둥이 언니를 잔혹하게 잃은 슬픔과, 언니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죽은 언니를 애도하려는 옥윤의 비장한 마음이 깃들어 있죠. 웨딩 드레스 차림 자체가 '위장'이라 긴장감을 높이는 역할도 하고요.

우리 역사, 잊으면 안 된다

‘웨딩드레스 차림의 여성 액션’이라는 ‘보기 좋은 그림'을 만들기 위해 인형에 예쁜 옷 입히듯 연출했다면, 이 장면은 아주 뻔했을 겁니다. 그러나 옥윤의 드레스엔 이야기가 깃들어 있고, 치마 속에 가터벨트를 숨기곤 있으나 그의 액션은 ‘여성 액션’이 아닌 ‘독립군의 액션’입니다. 이런 맥락 안에서 웨딩드레스 액션은 ‘설득력’을 얻고, 그저 예쁘기만 한 다른 ‘피의 신부’들과의 차별성도 획득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이 사족이란 관객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 좋은데 뒤에 가서 늘어진다'는 반응을 잔뜩 듣고 봐서인지 그렇게 뒷부분이 지지부진하게 느껴지진 않았어요. 전 오히려 염석진의 최후를 다룬 마지막 장면이 최동훈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소 과잉된 해석일 수 있지만 어쩌면 그 상황이 실제가 아닌 일종의 상상 또는 '이 세대에 대한 작가의 요청'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염석진에 비해 나이듦이 전혀 없는, 분장 없는 안옥윤이 등장해 16년 전 임무를 수행하겠다며 총구를 겨누는 모습 말입니다.

현직 대통령의 아버님께서 한때 다카키 마사오로 불렸던 분이시고, 현직 대통령님은 아버지의 역사에 대해 뚜렷한 반성 없이 자리에 계시며, 야당 대표님이자 차기 대선 유력주자이신 분도 부친의 친일 논란을 겪는 상황입니다. 과로로 죽는 사람들이 태반인 나라에서 복지로 인한 국민의 나태를 걱정하시고…참 가지가지들 하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에 영화 속 '영감'(오달수 분)의 마지막 대사를 옮겨 적습니다.

"우리 잊으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