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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공유경제 : '부'의 분배

조연호 작가의 <한국 교회가 살아야 한국이 산다> (132)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0.02.18 16:00 | 최종 수정 2020.02.19 12:52 의견 0

공유경제 사업과 관련해서 대상은 교회 성도여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 문화를 잘 알고, 기본적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가치관과 세계관이 확립된 자들이 먼저 실행해야, 교회의 특성을 반영한 공유경제를 실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해서, 구직활동 하는 성도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 이런 부분은 기도와 믿음으로 구직을 후원하려는 교회의 수동적인 방법에서 실질적인 방법으로 이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은 사업 진행에 관련한 부분이다. 앞에서도 제시했지만, 사업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잘 되는 사업은 계속 발전시키되, 그렇지 못한 사업은 빨리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폐업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실직자들에게는 다른 기회를 주어야 한다. 즉, 다른 창업 기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실패자에 낙인찍는 부정적인 한국 문화는 그들의 재기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교회는 실패도 용납하고 그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구약에서 3대 인물로 꼽히는 아브라함, 모세, 다윗도 실패가 있었으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고, 신약에서도 예수를 버리고 도망쳤던 제자들도 순교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실패에 대한 용납이 있었고,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기회가 부여될 때는 엄정한 절차를 통해 기회가 부여돼야 한다. 대체로 큰 교회의 사업은 교회 직분자의 자녀들을 고용하는 게 대부분이다. 성도 고용이 잘 못 됐다는 게 아니라 선발할 때 부모의 영향이 없어야 공정한 선발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익과 관련한 부분이다. 교회 공유경제가 꽤 활성화되고 수익이 발생한다는 전제조건하에서 수익은 철저히 분배돼야 한다. 대부분 교회는 교회 내 성도보다는 외부 불우이웃을 대상으로 자선을 베푼다. 그런데, 자선과는 별도로 교회 내 처지가 어려운 성도들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분배해야 한다.

수익 배분 방식은 현금이다. 이들이 경제활동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교회가 지원해야 한다. 물론, 우선순위는 가장 어려운 계층에서부터 축차적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 금액은 수익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원 대상 숫자에 연연하는 지원은 지양해야 한다. 오히려 지원금으로 정상적인 수준으로 경제활동이 가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원대상의 숫자를 늘리는 것은 지원금 자체가 무의미한 소비 활동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예를 들면, 흡연과 음주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상징적인 숫자 1,000명, 10,000명 등을 통한 과시가 아니라 확실히 경제적 주체로 설 수 있는 한 명, 열 명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표현으로 ‘교회 기본소득’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많은 국가와 도시에서 기본소득을 통한 긍정적인 피드백이 나오고 있다. 한국 사회는 선택적 복지, 보편적 복지 등 복지 분야의 확대에 대한 논쟁이 큰데, 이런 논쟁을 한국 교회가 나서서 기본소득을 제공함으로써 마침표 찍도록 해야 한다.

기존 공유경제 플랫폼의 문제로 지적되는 ‘승자독식’ 문제를 수익을 기본소득으로 환원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0.1%의 억만장자가 있고, 99.9%의 빈곤층이 있는 사회와 100%의 중간소득계층이 있는 사회의 평균은 같다. 수치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삶의 조건과 행복 등을 비교한다면, 당연히 큰 차이가 있다. 대부분 사회는 인간의 생명존중권과 행복추구권과 관련해서는 보편적 보장을 전제하고 있다(물론, 세부적인 내용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교회의 가치관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교회는 인간의 기본권을 위해 발생한 수익을 활용해야 한다. 공유경제 활동으로 나오는 수익으로 교회를 증축하고,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의 용도에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익은 철저하게 기본소득으로 환원할 필요가 있다.

교회 헌금은 이미 목회자들을 위한 사례로 사용되고 있으며, 교회 증축 등을 위한 자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공유경제로 인한 수입은 소외계층의 기본소득으로 사용해서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구약에서 나오는 희년은 새로운 기회라는 의미가 있다. 일정 기간 재산을 모두 잃고 타인의 노예로 살았다 하더라도 희년이 되면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잃었던 토지를 다시 찾게 된다. 이런 경우 노예를 잃고, 토지를 반환해야 하는 주인 입장은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엄격히 따져보면, 노예를 비롯한 획득한 토지를 통해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원주인이 다시 시작할수록 돌려주는 게 공동체 유지에 좋다. 그리고 구약의 희년은 50년 되는 해가 되기에 그 시대로 따지면, 주인이나 노예나 모두 평생이라는 시간이기에 절대로 짧은 기간이 아니다. 현대 변화 속도로 희년을 지킨다면, 몇 세대와 같은 기간이어서 ‘회복’이라는 의미로 이해하기 어렵다. 어떻게 생각하면, 희년은 기회를 준다는 자비의 개념으로 생색내기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신약은 희년보다 탕자를 비유로 든다.

하나님은 실수한 자녀라 해서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죄를 용납하시지도 않는다. 예수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균형을 명확히 보여준 사건 아닌가?

그리고 신약에 나오는 초대 교회의 ‘나눔’은 대가 없는 나눔이라는 공평성을 강조한다. 가진 자가 내어놓은 재산으로 가난한 자들이 생활한다. 모든 구성원이 기본소득을 보장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나눔은 디아스포라 교회 사이에서도 이루어졌다. 현대판 공유경제를 통해서 나오는 수익을 성도와 그 외에 지원받아야 할 대상들과 나눠야 한다는 주장은 성경적인 원리이다.

그리고 이 원리는 현대 사회에서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공평한 경제행위이며, 자선이다. 도덕적으로 추락하고 사회적 신뢰를 잃은 개신교는 공유경제 활성화와 그 수익 배분으로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평등한 세상을 추구하는 실질적인 기관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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