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6.25-70주년] 때 아닌 종전선언 논쟁 - "지금 종전 가능한가?"

종전(終戰)선언은 낡아빠진 20세기 방식의 이데올로기 정쟁(政爭)일뿐...
“누구나 이상(理想)을 꿈꾼다. 총에 맞기 전까지...”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0.09.30 13:16 의견 0
제75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언급한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제공)

남북은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통해 6.25 전쟁(1950~1953년) 휴전 상태(정전 협정)를 끝내고 2018년 내 종전(終戰)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후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주지하다시피 그해 종전 협정을 맺는데 실패했다. 

과거 정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쉬웠는지, 이후 여당은 국내에서 ‘종전선언’ 언급을 계속해 왔고, 야당은 그때마다 반대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2020년 9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5차 유엔(UN) 총회의 영상 기조연설을 통해 또 한 번 ‘종전선언’을 언급했다. 

1953년부터 70년 가까이 휴전선을 가운데 두고 대치한 남북한 상황이기에 ‘종전선언’이란 말 자체만으로도 가슴 뜨거운 감동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순히 감동만을 선사하기 위한 대통령의 발언이었을까? 

이번 ‘종전선언’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2018년 판문점 선언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여야의 관행적인 정쟁(政爭) 논리의 연속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국제정치적 맥락으로 분석할 때는 현실성 없는 허구(虛構)인데도 굳이 추석을 목전에 둔 시점에 나온 ‘종전선언’은 불리한 국내 정치 상황을 밖으로 돌려보려는 얕은 정치적 계산도 있어 보인다.

본 글은 9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이 지니는 국내외 정치적 의미를 짚어 보고, 이런 정치적 퍼포먼스로 득실을 얻는 집단을 떠올려 봄으로써 최근 발언이 갖는 정치전략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bLds-7oRzYI

◆관행적 정쟁(政爭)에 써먹던 논리를 계승하는 수준을 못 넘어서는 양당(兩黨)

‘종전선언’과 관련한 언급은 비단 2020년 9월 23일에 국한된 게 아니었다. 2018년 이후 여당은 계속해서 ‘종전선언’을 언급했다. 그때마다 야당은 반대로 맞장구를 쳐줬다. 양당의 논리는 간단하다. 

여당의 ‘종전선언’은 과거 ‘6·15남북공동선언’, ‘10·4남북정상선언’ 등과 같은 남북 우호 협력 관계를 다짐하는 선언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특히 ‘코로나 19’로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워져 국내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한 상황을 남북관계와 관련한 획기적인 퍼포먼스로 잠시 숨 좀 돌리겠다는 계산도 깔린 듯하다. 

야당은 여당의 대북 정책에 늘 강경하게 대립했다. 과거부터 야당은 주 지지층–보수 세력, 전쟁 세대, 반공 세대, 보수 기독교 세력 등–의 성향으로 인해 남북관계 발전을 꾀하지 않았다.

1공화국 시대는 북진통일을 주창하며 ‘멸공’을 외쳤고, 3공화국 시대에서는 전 박정희 대통령의 과거 공산당 활동에 대한 방어, 북한 간첩의 대통령 암살 시도 등 남북관계가 쉽게 발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7·4 남북 공동 성명’으로 남북관계의 물꼬가 트이긴 했으나, 당시 남북 정권의 정치적 목적으로 진행한 퍼포먼스에 불과했다. 이후 5공화국 시대에는 ‘아웅산 폭파 사건’ 등이 벌어져 남북관계는 악화 일로로 나아갔다. 이후 현재 야당이 계승한 다른 정권에서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대통령의 ‘종전선언’은 관행적 정쟁 논리 계승을 위한 새로운 걸음일 뿐 과거와 다른 정치적 행동이 아니다. 아울러 유엔 기조연설 이전 북한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 공무원을 볼모로 삼아 대통령의 ‘종전선언’을 폄하(貶下)하는 야당도 과거로부터 내려 온 정쟁 논리에 따른 것일 뿐, 새삼스러운 반발이 아니다.

2018년 4월 27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 이루어졌다. 선언문 링크 https://www1.president.go.kr/articles/3138  (출처: 청와대)

◇‘종전선언’의 허구성 : 국제정치적으로 망상(妄想)에 가까운 ‘종전’

국제정치사, 특히 미국의 한반도 전략을 조금이나마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현재 트럼프 체제에서 북미 관계가 발전할 거라는 기대는 망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국제정치에 이타적 도덕주의의 실현이 가능하다면, 한반도의 ‘종전선언’은 타당하다. 그리고 ‘평화협정’ 체결까지 숨 가쁘게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이상주의를 접어두고, 현실적인 국제정세를 따져보자. 세계 초강국이자 우리나라의 최대 우방국인 미국의 실리(失利)를 따졌을 때 과연 한반도의 평화가 더 큰 이득을 줄 수 있을까?

미국의 국방비는 압도적으로 세계 최대이다. 2위 국가부터 9위 국가까지의 총액을 더해도 미국 국방예산에 미치지 못한다. 2019년에는 7,500억 달러(825조 원)를 국방비 예산으로 의회에 제출해서 한화로 따지면 1,000조 원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국방비 증감을 살펴보면, 조지 W. 부시 정권 때 점차 늘어나다가 버락 오바마 정권 때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트럼프 정권에 이르러 국방비가 증액되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한 무기 판매 클라이언트인 대한민국의 평화가 실익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2018년 싱가포르에서 진행한 북미 회담(6월 12일)도 상징적인 제스처였을 뿐이었다. 오히려 북미의 고착 관계는 이후 남북관계마저도 불편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런 결과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었다.

웬만한 나라의 군사력을 능가하는 항공모함 전투단은 미국의 세계 전략을 상징한다.  (출처: 픽사베이)

◇‘선언’의 무력함: 언어는 존재하지만, 행동은 없다

일반적으로 ‘종전선언’은 ‘평화협정’과 동시에 이뤄져야 선언의 효과가 나타난다. 과거에도 여러 선언이 있었지만, 북한의 군사도발은 그치지 않았다. 

남북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에 핵실험을 감행했고, 월드컵이 한창이던 시기에는 연평도 도발로 아까운 청년들의 삶을 앗아갔다. 이후 참여정부 시대에도 핵실험을 강행했다. 다시 말해 정치인들이 내놓는 ‘OOO선언’은 당장에 언론의 대서특필 감은 될 수 있을지언정 실질적인 효과는 없었다.

아울러 현재 휴전(armistice)은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참전국들의 이해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 휴전을 끝내고 종전으로 신속하게 향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발언에 우호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좋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을 실행으로 옮기는 데까지는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국제정치는 그 복잡한 수준이 개인이나 조직에 비할 바 아니기에 더 신중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섣부르고 졸속한 발언으로 오히려 뒷걸음질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과 더불어 채택된 평양공동선언. 2주년이 된 지금은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출처: 청와대 카드뉴스)

◇‘정전협정’의 주체가 아니었던 대한민국 

‘종전선언’과 더불어 평화협정이 체결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철책으로 만들어진 녹슨 휴전선을 모두 돌돌 말아 용광로에 넣고 녹여 상징적인 기념 메달을 만들고, 비무장 지대의 천연 생태계가 관광지로 새롭게 태어나는 날은 언제쯤일까?

이런 생소한 상황을 체험하기 위한 평화협정으로 가는 여정에는 일단, ‘정전협정’부터가 걸림돌이 된다. 우선, 협정문에 서명한 대표자들부터 살펴보자.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 대표단 수석대표: 조선인민군 대장 남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
유엔군 대표단 수석대표: 미국 육군 중장 윌리엄 K. 해리슨(William Kelly Harrison Jr.)
유엔군 총사령관: 미국 육군 대장 마크 웨인 클라크(Mark Wayne Clark)

총 5인 서명자 중 남한의 대표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휴전 종료의 대상자는 북한과 중국, UN의 대표자라 할 수 있다. 바꿔 말해 상징적인 선언은 대한민국 대통령과 지도자가 몇 백 번이라도 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선언 이후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 등의 동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물론, UN군에는 대한민국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이런 주장은 순전히 억지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에 반대했고, 그래서 본인의 영어 실력이 뛰어났음에도 의도적으로 ‘휴전’ 대신 ‘정전’으로 번역하게 했다. 즉, 남한은 휴전에 찬성한 주체가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과거는 무시하고 ‘종전선언’을 외치고 있다. 다만, 과거와 동일한 부분은 ‘휴전 반대’와 ‘종전선언’ 모두 대한민국 지도자 홀로 주장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은 대한민국 마음대로 ‘종전선언’을 해도 ‘종전’은 이뤄지기 힘들다. 

https://www.youtube.com/watch?v=SFoQRIcglsc

 ◇‘종전선언’ 시 예상되는 북한의 요구: 한미군사훈련 중지와 미군 철수

‘종전선언’이 이루어지면 북한은 한미군사훈련 중지와 미군 철수를 요구할 수 있다. 이는 종전선언의 취지에 걸맞는 논리적으로 타당한 요구사항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전쟁 참전국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는 게 맞다. 전쟁 이후 외국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는 상황은 평화와 어긋난 행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세계전략을 고려할 때, 미군의 한반도 철수가 가능할까? 더욱이 경제 성장이 두드러질수록 호전성을 드러내면서 다시 한 번 ‘중화(中華)’를 꿈꾸는 중국이 있는 한 한반도에서 미군 철수는 불가능하다.

만약,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게 된다면 일본은 자의적으로 재무장을 시도할 것이다. 그동안 일본은 자위대를 넘어 정규군을 갖겠다고 이래저래 힘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군이 철수하면, 중국의 군사적 위협과 북한의 도발을 대비하기 위한 재무장 명분이 생긴다. 이쯤 되면 일본의 재무장에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미국도 중국 세력의 확장을 막기 위해 일본의 재무장에 동의할 가능성이 커진다.
 
다시 말해 한반도 종전선언 이후 위와 같은 북한의 요구가 나온다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볼모로 희생시키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종전선언은 어불성설(語不成說)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정치는 철저히 이해관계이다. 칸트처럼 ‘영구평화론’을 주장한 도덕 철학자도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이야기다. ‘종전선언’은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까지도 얽혀 있는 문제다.

실제로 그간 북한의 국지적인 도발은 계속 있었지만, 전면전으로 확전될 위험은 거의 없었다. 북한의 군사적 능력만으로는 전면전에서 승리할 확률은 매우 적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북한의 최대 우방국인 중국도 경제, 사회, 정치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전면전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We0AoBEr9Lo

◇현 상황은 종전에 가까운 휴전 상태

종전선언이 없더라도 현 상황은 종전에 가까운 휴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남한의 국력 신장과 한미공조의 지속성이 북한의 전쟁 도발 의지를 억제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을 이상적으로 해석하면, 한반도 내에서 영구히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전쟁이 종료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적 합의를 통한 주변국들을 이해시키고 이후 북핵 문제 등을 해결하지 않으면 종전선언을 하더라도 상황은 달라질 게 없다.

최근 어느 여당 의원이 “종전선언을 했다면 이번 총살은 없었다”라고 주장하자, 반대파들이 “헛소리”라고 대응했다. 북한의 과거 행위를 기준으로 봤을 때, 2018년에 ‘종전선언’이 이뤄졌더라도 지금처럼 북미 관계가 고착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면 NLL을 넘어온 민간인에게 총을 쏘지 않았을까?

과거 핵주먹으로 유명했던 프로복싱선수 마이크 타이슨(Mike Tyson)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Everyone has a plan 'til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마찬가지다. ‘선언’이 제재력이 있다고 여기는 이상적인 발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단, 총에 맞기 전까지!

그렇다면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정녕 몰랐을까? 그렇지 않다. 그래서 ‘종전선언’은 하나의 퍼포먼스일 뿐 실행을 기대한 발언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혹, 몰랐다고 한다면 우리는 역사상 가장 이상(理想)적인 대통력이 아닌, 이상(異常)한 대통령을 선출한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SyEA8MdjQU

◇왜 한가위에 앞선 ‘종전선언’일까?: 국내 정치 전략의 일환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세대가 아직 생존해 있다. 6·25 전쟁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1950년 당시 열 살 이상이었던 현재 생존자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공포를 경험했다. 원래 남한에 살았던 사람은 북한 이야기만 나와도 치를 떨고, 반대로 어쩔 수 없이 북에서 내려와 남한에 정착한 이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할 것이다. 

2019년 통계를 기준으로 남한 이산가족 수는 5만 명 수준이며, 이산가족의 자손까지 고려하면 수십만에 달할 것이다. 그러나 매년 수천 명씩 사망하고 있어서 이산가족 상봉으로 상징되는 분단의 극복과 평화의 정착이라는 이미지도 해 뜬 후 사라지는 이슬처럼 소멸하고 있다.

최근 극보수층을 비롯한 현 정권에 반대하는 국민의 시위가 계속되는 분위기다. 광복절 집회로 인해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돼 세력 확산에 제동이 걸렸으나, 추석 이후의 개천절과 한글날에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현재는 여론의 비난 세례와 공권력의 개입으로 원활한 집회는 어려울 듯 보인다. 그런데도 이들의 반대 시위로 형성된 여론과 지지 세력의 확산은 현재 정권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추석을 앞둔 ‘종전선언’은 극보수 층과는 결이 다른 이산가족 등을 정권에 우호적으로 돌릴 수 있는 전략적 발언일 수도 있다. 극보수층 중에는 북한을 혐오하기에 상대적으로 친북 성향을 지닌 정권을 미워하지만, 동시에 원활한 남북관계를 통해 수명이 다하기 전 북한에 있는 가족과의 상봉을 기대하는 이산가족도 존재한다. 이들을 통해 극보수층의 분열도 유도할 수 있다.

아울러 현 정권의 지지자들을 결집해 현재 극보수층의 공격에 방어할 수도 있다. 과거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 태극기 부대들이 맞불을 놓았던 것처럼 그 반대를 기대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국내의 문제점에만 골몰한 국민의 시선을 일시적으로 돌리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분명, ‘종전선언’을 언급하면, 수학 공식처럼 야당과 보수권의 반발이 자동으로 일어난다. 과거 보수 정권이 ‘북풍사건’으로 여론몰이한 것처럼 현 정권도 역으로 유사한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작전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우리 공무원 총살이라는 변수가 발생해 종전선언과 맞물려 논쟁이 불붙고 있지만, 종전선언의 전략적 효과는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국민의 관심을 끌어내 현재 당면 문제로부터 시선을 분산시키고 있다.

2018년 9월 20일 평양정상회담 3일차를 맞아 백두산 천지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모습. 2018년에는 남북간의 평화무드 속에 이산가족 상봉도 이루어지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했다.  (출처: 청와대)

◇누구를 위한 ‘종전선언’인가?

전쟁보다는 평화로운 세상이 좋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종전선언’의 실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선언이 이뤄졌다고 해도 이후 실행 단계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전선언’으로 이득을 얻는 부류와 그렇지 못한 부류가 존재한다. 먼저, 이득을 챙길 부류를 생각해 보자. 당연히 현 정권일 것이다.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코로나 정국에서 잠시 국민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유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실(失)’을 경험하게 될 부류는 누구일까? 아마도 현 정권에 반기를 든 극보수층이 아닐까? 여론의 관심을 뜨겁게 받으면서 성장하려 했으나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이 됐고, 이후 다시 반등을 꾀하려고 집회를 준비하고 강행하려 했으나 비판적 여론에 몸을 낮춰야 했다. 그래서 공권력에 강하게 저항할 명분도 없다. 이때 종전선언 논쟁이 노이즈 마케팅–국가를 상대로 한 극보수층의 논리 비약적인 저항-으로 일관한 집회 홍보마저 방해하니 시위의 성공을 긍정적으로 보기 힘든 상황이 됐다. 즉, 시위부대에 대한 호응이 크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소멸할 수도 있다.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인구의 99% 이상이고 통일에 긍정적인 세대보다 부정적인 세대가 더 많은 대한민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종전선언’은 국민을 위한 주장이 아니다. 언론 등의 프로파간다를 통해 국민의 시선을 잠시나마 정치 이데올로기의 전장으로 옮겨놓을 뿐이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현장에서 묵묵히 꿋꿋하게 살아가는 우리 국민은 과거처럼 정치권의 이데올로기 전장에서 총알받이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는 여전히 20세기를 향수(鄕愁)하며 한 걸음도 전진하지 않았지만, 국민은 이미 21세기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야 지도자 중 이런 철 지난 이데올로기 정쟁(政爭)-20세기에나 있었던 시대착오적인 발상– 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게 애재(哀哉)일 따름이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