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문불여일견 : 경험은 참 좋은 교육입니다
저는 운 좋게도 마흔이 넘은 지금도 존경하는 마음으로 종종 인사드리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중 한 분은 저의 담임 선생님이셨고, 미술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전공을 살리셔서 퇴직을 앞두시고 펜으로 그림을 그려서 전시회를 여셨습니다.
마침 휴가 기간에 전시회 일정이 있어서 가족들과 전시회에 갔습니다. 펜으로 그려진 세밀한 정밀화를 보니, 저같이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은 그저 탄성만 자아내면서 선생님을 다시 우러러보게 됐습니다.
“선생님 정말 고생 많으셨네요.”
“그렇지. 펜 화는 한 번만 실수해도 다시 그려야 하니까.”
아내와 안아도 감상하고, 아내와 상의해서 한 작품을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선생님 작품 하나 집에 가져가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거절 의사를 보이셨지만, 결국 제자의 간청에 작품을 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한 작품을 가져가는 것으로 합의하고 떠나려 했는데, 갑자기 안아가
“아빠, 저 그림 갖고 싶어요!”
라고 말합니다. 그림은 전통 사찰이 정밀하게 표현된 작품이었습니다. 이미, 우리 부부는 작품을 골랐기 때문에 안아를 설득했습니다.
“안아야, 엄마랑 아빠가 이미 한 작품을 샀어. 그러니까, 안아는 여기서 감상한 것으로 만족하자.”
하지만 여섯 살, 안아의 고집은 그렇게 쉽게 꺾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우리 부부는 안아가 고른 작품까지 구매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멋쩍어하시면서 그림에 판매됐다는 스티커를 붙이셨습니다.
그렇게 전시회를 관람하고 이제 집으로 가는 차에 올라탔습니다. 시내를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안아가
“아빠, 미술 학원 다니고 싶어!”
라고 합니다.
“응? 미술 학원?”
“응. 아까 그림을 보니까,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 졌어.”
그동안 아빠의 애절한 권유는 무시하더니, 처음 전시회를 관람하고 나서 스스로 미술 학원에 다니겠다고 요청한 것이죠.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말인데, 경험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아이에게 있어서 경험이라는 학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제대로 깨달은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휴가가 끝나자마자, 미술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이제 안아에게 새로운 교육이 시작됐습니다. 영어도 배우고, 발레도 하고, 미술도 해야 했습니다. 물론, 발레와 미술은 1주일에 2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여섯 살 안아에게는 절대 짧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 100일 원칙
아이들이 뽀로로를 볼 때처럼 다양한 분야에 몰입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간절히 원해서 학원에 등록해주면 얼마 되지 않아서 “힘들어!”라고 하면서 그만두려고 합니다. 이때 부모는 갈등합니다.
‘내 아이가 싫어하는 걸 더 시킬 필요 있을까?’ 혹은 ‘아이가 싫다고 해도 그냥 강행하는 게 나을 거 같아. 나중에는 다 도움이 될 테니까.’
정답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마다 처방은 다릅니다. 때로는 그만두게 하는 게 답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원해서 시작한 활동과 부모가 결정해서 시킨 활동도 구분해야 합니다. 에이미 추아의 <타이거 마더>에서는 두 딸을 양육하고 교육시키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첫째와 둘째는 달랐고 그래서 똑같은 결실을 얻을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아는 어린이집과 영어 유치원은 우리 부부가 결정해서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가기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어린이집에 보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방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집도 안아가 적응할 때까지는 같이 울면서 보냈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영유’도 ‘어차피 일반 유치원 적응도 마찬가지일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시간이 약이다.”라는 생각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한 달 정도 적응 기간이 지나니 잘 다녔습니다. 혹,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면, 등록 자체를 다시 검토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아이가 원하는 활동이든 부모가 결정한 활동이든 원칙이 필요합니다. 저는 3개월, 약 100일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이 기간 이후에도 아이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과감하게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단, 그전에 그만두려 하면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학원 교육으로 발레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안아가 간절히 원해서 보낸 것입니다. 하지만, 그림으로 볼 때는 발레 포즈가 예쁘고 잘하는 발레리나의 모습을 보면 화려하지만, 본인이 직접 하려고 하니 쉽지 않고 어려웠나 봅니다. 결국, 한 달 정도 다니더니
“아빠, 발레 그만하면 안 돼?”
라고 묻습니다.
당연히 저는 강하게 “안 돼!”라고 말하면서 이야기했습니다.
“발레는 안아가 하고 싶다고 한 거잖아. 그리고 처음에는 힘들 수 있지만, 적응하면 괜찮을 거야! 아빠 생각에는 3개월 정도 다녀보고 나서도 하기 싫으면, 그때 그만두는 거 다시 생각해 볼게.”
안아는 마지막 수단인 눈물로 호소했지만, 제 원칙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이런 원칙도 아내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소용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자녀 양육에 있어서 부부는 항상 같은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엄마와 아빠 말이 다르면, 아이는 당연히 본인에게 유리한 부모에게 의지할 게 뻔합니다. 당연히도 우리 부부는 안아의 교육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자주 교환했고, 그렇게 합의를 해서 학원을 보내기도 하고,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100일의 원칙은 비교적 순탄하게 잘 적용됐습니다. 3개월이 지난 후 안아는 발레 학원에 즐겁게 다녔습니다. 그리고 배운 걸 엄마와 아빠에게 가르쳐 주는 가족 발레 시간도 종종 만들어서 엄마와 아빠를 아주 즐겁게(?) 했습니다.
미술 학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미술 학원 그만 다니면 안 돼?”
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답은 같았습니다.
“지금 처음이라서 힘들 거야. 아마도 좀 더 다니면 적응하지 않을까? 그러고 나서도 힘들고 그만두고 싶으면, 다시 이야기해보자.”
솔직히, 미술 학원을 그만 다니기 원하는 안아의 요청은 발레 때보다 더 간절했습니다. 눈물로 호소한 적도 여러 번이어서 ‘정말 미술은 그만둬야 하나?’라고 진지하게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100일의 원칙을 지켰습니다. 그 결과 안아는 재미있게 미술 학원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안아와 함께 책을 만들 수도 있었고, 2년이 지난 8살 때는 2개의 대회에서 입상도 했습니다.
원칙 없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하게 되면, 아이 역시 기준 없이 요구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안아는 뭔가를 시작할 때는 쉽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이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아우성쳤는데,
“안아야, 한 번 다니기 시작한 학원은 열심히 다녀야 한다는 거 잘 알고 있지?”
라는 질문을 여러 번 되묻고 나서,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그리고 2개월 이상 빠지지 않고 즐겁게 다니고 있습니다.
◇ 좋은 아빠 TIP
1. 자녀와 함께 많은 경험을 해야 합니다. 기본적인 이야기지만, 쉽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서로 바쁘고, 주말에는 부모는 쉬고 싶어 하니까요. 하지만, 조금 힘내서 계획을 세워 활동해야 합니다. 좋은 아빠는 쉽게 되는 게 아니니까요.
2.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도 그 원칙을 고려해서 부모에게 요청합니다. 100일은 사람이 적응하는데 적당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녀마다 다르고 가정환경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자녀 교육과 관련한 일에 있어서 부모는 항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어야 합니다. 절대 한 사람이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혹, 다른 어른 – 조부모님 등 – 도 계시다면, 공감하실 수 있도록 잘 설명하는 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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