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 최우수 감독상(에리크 그라벨)과 최우수 여우주연상(로르 칼라미) 2관왕을 석권하고,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 상영되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던 <풀타임>. 작품은 올해 처음으로 유료화를 본격화한 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의 프로그램 토킹시네마에서 여성영화라는 주제로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등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국내 극장가와 마찬가지로 팬데믹으로 침체기에 빠져 힘든 시기를 보냈던 프랑스 박스오피스에 일대 파란을 불러일으키며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풀타임>은 비교적 적은 수의 172개(개봉일 기준) 극장에서 상영되어 첫 주만 10만 명을 돌파하했으며, 특히 헐리우드 대작 영화들과 프랑스 대작 영화들 사이에서 경쟁하며 박스오피스 9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와 같은 흥행 성적은 팬데믹 기간 프랑스 극장가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풀타임>은 파리 교외에서 홀로 두 아이를 기르는 쥘리가 파리 시내의 고급 호텔 룸메이드로 일하며 온갖 애를 쓰는 한편 직장 상사 몰래 원하는 직장에 면접을 보게 되면서부터 전국적인 교통 파업이 발생하자 직장, 가정 모든 것이 엉망이 되가는, 한 여성의 일상이 무너져 가는 위기를 스릴러라는 장르에 잘 녹여낸 수작이다.
특히,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풀타임>이 선정되어 국내에 내한한 바 있는 '에리크 그라벨' 감독은 해외 매체와 평단에서 포스트 '켄 로치'라는 평가와 함께 영화계의 거장 '다르덴 형제'와도 많이 비교되고 있지만, 장르적으로 탁월한 연출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차별화된 평가를 받고 있다.
프랑스계 캐나다인 작가이자 감독인 에라크 그라벨은 지난 20년 동안 프랑스에서 거주했다. 장편 <충돌 테스트 아글라에 Crash Test Aglaé>(2017)로 데뷔하기 전까지 영화제작 운동 ‘키노(무브먼트)’와 함께 많은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풀타임>은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이하 에라크 그라벨 감독과의 일문일답.
Q:<풀타임>은 소음과 함께 시작한다. 주인공 쥘리가 자는 동안 내는 숨소리로... 특별한 이유가 있나?
A: 그것은 주인공에 친밀감을 부여하는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는데, 관객들은 그런 깊은 숨소리에 에워싸이며 영화 내내 그녀의 바로 곁에 있게 될 것이라는 점을 미리 깨닫게 된다. 그 숨소리 장면에서 카메라는 그녀의 피부결이 보일 만큼 극도로 가깝게 다가간다.
그것은 폭풍 전의 고요의 순간이기도 하다. 사실 <풀타임>은 앞으로 길게 내지르기와 같은 영화이며 첫 장면은 뒤이을 부단한 움직임의 앞에 놓여있다. 그 장면에서 우리는 쥘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유일한 순간, 그녀가 배터리를 충전하는 유일한, 잠깐뿐인 순간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후 그녀에겐 휴식이란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이 여성의 시점을 통해 우리 삶의 리듬과 매일매일 이어지는 일상속의 투쟁을 보여주고자 했다. 나도 쥘리와 마찬가지로 변두리에 산다. 나는 도시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살면서 더 나은 삶을 획득하기 위해 삶의 도박장에서 고전하는 내 이웃들에 대해, 매일 통근 기차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 삶에서 균형을 잡기란 어려운 일이며 모든 이들이 해법을 발견하는 것도 아니다.
Q: 특별히 로르 칼라미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쓴 것인가?
A: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특정 배우를 염두에 두진 않았다. 하지만 배역 후보군을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로르가 최적임자로 떠올랐다. 그녀는 굉장한 배우다. 연기 범위가 믿기어려울 정도로 폭넓어서 비극이든 희극이든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로르가 항상 자신의 배역에 불어넣는 광채는 이번에도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평정을 유지하는 쥘리에게 균형을 가져다줬다.
사실 우리는 쥘리의 삶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그녀가 하루 하루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쉼없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 말고는. 나는 배우이자 활기찬 삶을 사는 한 여성이기도 한 로르를 다소 심란한 시기 - 미국인들이 '퍼펙트 스톰'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상상 가능한 모든 난관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그것을 즉시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 - 에 봉착한 이 여성의 입장 속에 밀어넣음으로써 그녀의 삶을 좀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Q: 영화에서 직업적인 맥락은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고급 호텔 청소부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나?
A: 주인공이 물리적인 일을 하는 직업에 종사하길 원했다. 쥘리가 서비스업, 그것도 전국적인 파업 기간 동안 조차도 절대 멈추지 않는 종류의 직종에 있길 원했다. 그 다음에 나는 일상의 반복이라는 아이디어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마치 영원한 굴레에 사로잡힌 것처럼 직장과 가정에서 끊임없이 똑같은 제스처를 반복해야 하는 상황말이다. 이런 직업은 쥘리가 그녀의 행위와 얼마 만큼 연계되어있는지, 어느 정도로 숙련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것을 가능케 한다.
고급 호텔의 객실 청소부장이라는 위치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특별한 기술과 관련 지식이 있어야 하고 정확한 일처리가 수반되어야 하며 지켜야할 수칙도 있다. 그리고 결과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해야 한다.
영화를 준비하는 동안 로르 외 몇몇 배우들이 호텔 청소 훈련에 참여했는데, 현직 청소부들이 와서 모든 제스처를 단계별로 일일이 묘사하고 설명해주었다. 모의 시험에서 그들이 수분 만에 베딩을 완벽하게 해내자 모두가 갈채를 보냈던 것이 기억난다. 그것은 마치 무용을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 여성들은 일을 잘 해내기 위해 아주 열정적으로 임해주었다.
Q: 이 영화의 설정 기반이 되는 사회적 맥락은 아주 중요할 것 같다. 이에 대해 설명하자면.
A: 그렇다. <풀타임>은 전국적인 대규모 파업의 와중에 이야기가 전개된다.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이 붕괴되기 시작하며 그것은 주인공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의 이미지로 보여진다.
나는 개인과 집단의 투쟁이 나란히 진행되기를 바랐고 그 과정에서 점차 서로가 연결돼있다는 것을 관객들이 깨닫길 원했다. 그러니까 그들은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이것은 저것의 결과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줄리는 사회의 맹점에 갇혀있다. 그녀는 가장 취약한 노동자의 범주에 속해있지만 그들을 위해 파업에 참가하거나 어떤 형태로든 의견 개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1955년 파리에서 파업 기간 동안 파리의 시내와 시외에 살았던 사람들이 위대한 연대를 보여주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걷고, 히치하이킹을 하고, 서로를 돕는 등 도시 환경에서 다르게 기능하는 방식들을 찾아냈다.
나는 일상의 투쟁과 위대한 연대가 뒤섞인 이런 분위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우연히도 내가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노란조끼 시위가 시작되었다. 내가 사는 부르고뉴의 상스 지역에서 나는 몇개의 회전교차로가 시위대에 점거되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정부 정책이 옳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의 시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시위에는 공식적인 조직에 속해있지 않은 많은 싱글맘들이 참여했다. 나는 그들이 시위 현장에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았다.
Q: <풀타임>은 낮시간의 리듬으로 진행되지만 무엇보다 밤의 리듬도 느껴진다.
A: 나의 이야기는 가을 혹은 초가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한다. 그 시기는 1년 중에 가장 일이 많은데다가 여름 휴가는 한참 뒤이고 밤은 점점 길어지는 시점이다. 직장에서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것은 일찍 출근하고 늦게 귀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줄리가 어두울 때 출근했다가 어두울 때 귀가하는 것으로 설정한 것은 아주 긴 하루를 보여주는 것을 가능케 했고, 시외 거주민들의 애로사항 뿐만 아니라 보육 문제를 꺼낼 수 있게 해줬다.
이런 시간 설정은 대중 교통에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여줄 수 있게 했고, 이로써 이야기의 흐름을 깨지 않고 빠른 속도로 밤과 낮이 교차하는 것을 구조화할 수 있었다.
Q: 특별한 종류의 긴장김을 선사하는 음악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악 편집에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은데.
A: <풀타임>은 감각적인 영화다. 줄리의 스트레스 가득한 일상에 조응하는 음악 배경을 제공함으로써 우리는 일종의 장르 영화에 더 가까워진다. 나는 시나리오 집필 단계부터 일렉트로닉 사운드트랙을 염두에 뒀는데, 그 반복적인 비트가 주인공의 내적 두근거림과 템포 그리고 그녀 일상의 반복성을 반영하리라 기대했다.
배경 음악은 그녀의 내심을 들려주는 음악 같은 것이어서 그 연속적인 파장은 우리를 그녀의 경험속으로 인도한다. 나는 자신만의 시그니처 사운드를 이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가져올 수 있는 일렉트로닉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하고 싶었는데, 그런 면에서 이렌 드레젤의 음악은 그녀만의 사운드로 이 영화의 톤을 잘 전달하고 있다.
처음에 음악없이 오직 주인공의 리듬에 따라 영화를 편집했다. 이것은 이렌이 일할 공백을 남겨둔 셈이 되었기에 내가 어떤 톤을 제시함 없이 그녀가 콘서트에서 하듯이 꽤 유기적으로 자신만의 시그니처 사운드를 적용할 자유를 주게 되었다. 이런 과정으로부터 진정한 콜라보가 발생했고, 그것은 전체 영화를 관통하는 일종의 감각과 매끄러운 음악적 연속성을 만들어냈다.
Q: 연출하는 방식을 보면 항상 주인공에게 극도로 가까이 가는 경향이 있는 듯 한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A: 나는 이 영화에서 생동감 넘치는 카메라워크를 원했기 때문에 돌진하거나 획 틀거나 하는 그녀의 모든 움직임을 탐지해 그녀의 마음속을 그려내고 싶었다. 나는 이 영화가 매끄럽던 거칠던, 트랙킹 샷이던 줌인/줌아웃이던 간에 최대한의 자유로움 속에서 마치 액션영화처럼 그녀와 가능한 가까이 함께 있길 원했다.
나는 자주 시야를 그녀에게 제한시키곤 했다. 그렇게함으로써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은 외화면의 감각적 소재가 돼버렸다. 나는 특히 그녀가 거리에 있을 때 망원렌즈를 사용했다. 그것은 도시에 밀도를 더해줬고 파리를 더욱 불안한 곳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줄리가 도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기도 한데, 그녀는 기차에서 내리는 매순간마다 즉각적으로 도시의 전방위적인 폭력과 맞닥뜨린다. 이것은 또한 그녀가 왜 아이들을 위한 또다른 삶을 소망하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녀는 자신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어도 좀더 인간적인 리듬을 가진 평화로운 영토에 그녀의 안전한 보금자리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나는 관객들이 그 점을 헤아려 그녀를 심판하지 않기를 바랐다.
Q: 파리가 통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촬영됐다. 비록 파리가 본질적으로는 돌과 금속으로 된 도시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곳은 유달리 날카롭고 금속성을 띤다.
A: 사실 내가 영화 속에 담아낸 도시 환경은 전형적인 파리가 아니며, 그것은 다른 도시일 수도 있다. 나는 뉴욕이 1970년대 영화들에 담겨진 방식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 파리의 색조는 주황빛 회색 톤인데, 나는 그것을 좀 더 차갑고 거칠게 만들어서 줄리가 그 적대적인 영역에 발을 내딛는 순간의 심리 상태와 잘 맞아떨어지도록 했다.
또한 나는 고급 호텔에서 벌어지는 시퀀스들에서 이러한 시각적 접근법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룸마다 변화하는 좀 더 넓은 범위의 다양한 컬러들을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거기도 차가운 톤이 주도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여주기 위해 아늑하고 따뜻해야 할 그 공간에 대한 지각을 바꿔버린 것이다.
Q: <풀타임>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캐릭터를 담은 영화라 생각한다. 주인공의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나?
A: 그녀는 전사다. 그녀에게는 모든 수단이 수용 가능하고 그것은 때때로 작은 편법을 포함하기도 한다. 줄리는 일상을 살아가는 주인공이고, 나는 그녀의 모든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그녀가 자녀들, 동료들,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또 그녀가 취업 면접을 보는 것도 보게 된다. 매번 그녀는 똑같지 않으며 궁극적인 그녀의 정체는 그 여러가지 모습의 집합체다. 그녀는 자신만의 결점을 가지고 있고, 그녀 자신이 최악의 적일 수 있으며, 극도로 완고할 수 있다.
그녀는 강하면서도 실수 투성이다. 로르는 육체를 고도로 사용하는 배우로서 그녀가 공간을 장악하는 방식을 보면 그녀의 연극 무대 경험을 감지할 수 있다. 우리는 그녀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리듬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작업했지만 영화의 리듬이 그 이상에 달했을 때 굳이 제약을 두지 않았다.
사실, 영화는 많은 씬들을 포함하고 있고 편집 과정에서 많은 것을 생략해버리지만 캐릭터의 에너지와 심리는 시퀀스 사이에서 일관성있게 유지되어야 한다. 줄리는 그녀가 당면한 문제들 때문에 끊임없이 한걸음 더 앞서 가서 미래를 위한 계획를 세워놓아야 한다. 마치 체스를 두듯이 그녀는 몇 수 앞을 내다보아야 하는 것이다.
2022년 8월 18일 국내 개봉을 확정지은 <풀타임>은 전국적인 교통 파업으로 지각 위기에 놓인 싱글맘 쥘리의 절박한 심정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일상에서 느끼는 애환과 장르적 긴장감을 동시에 선사할 예정이다.
[사진=(주)슈아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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