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0월 30일, 서점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 폐간되었던 《창작과비평》이 5년의 침묵을 깨고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기 간행물이 아니었다. 검열을 피하기 위해 '부정기간행물 1호(통권 57호)'라는 기형적인 형태로 출간된 이 책에는, 경제학자 박현채의 도발적인 논문이 실려 있었다.

제목은 「현대 한국사회의 성격과 발전단계에 관한 연구(Ⅰ)-한국자본주의의 성격을 둘러싼 종속이론 비판」. 같은 책에 경제학자 이대근의 반론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에 관하여: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붙여」도 나란히 배치되어 논쟁의 불을 당겼다.

1970년대와 80년대 한국에서는 군사정부가 산업화를 추진하며 고도성장을 이뤄내고 있었다. 하지만 전태일 열사의 죽음이 보여줬듯, 그 성과는 고르게 분포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라진 뒤에는 신군부가 광주에서 학살을 자행하며 권력을 다졌다. 평등과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진보주의자들은 대체 한국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진단해야 했다.

"한국 사회는 무엇인가?"

이 단순해 보이는 질문이 이후 10년 가까이 대학가를 지배할 격렬한 논쟁의 시작이었다.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혁명의 방향이 달라졌고, 동지가 적이 되었고,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 진보 진영의 분열로 남아 있다.

2025년, 그 논문이 발표된 지 40년이 되었다. 사회구성체 논쟁은 끝났지만, 그 유산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진보당과 정의당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이유, 통일 문제를 둘러싼 시각 차이, 경제 민주화 담론의 뿌리, 모두 이 논쟁에서 시작되었다.

40년 전, 대학가 자취방에서 사회과학 서적을 돌려 읽던 청년들은 무엇을 꿈꿨을까? 그들의 논쟁은 무엇을 남겼을까? 그리고 그 논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