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영공을 지킬 차기 국산 전투기 KF-21이 땅을 박차고 날아 오른지 1년이 지났습니다. KF-21의 초도비행 소식은 그간 국산 전투기 개발의 유용성에 대한 찬반 논의를 불식시킬 정도로 희망을 안겨주었죠. 제작은 매우 순조로워 시제 1호기의 초도비행 이후 11개월도 되지 않아 시제 6호기까지의 제작과 비행이 완료되었을 정도입니다.
KF-21 개발이 상당히 순조롭다는 것은 지난 5월 15일 방위사업청의 발표를 통해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을 획득했다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에 따라 2024년부터 KF-21 양산이 시작되며, 공군에 인도되어 전력화되는 것은 2026년으로 정해졌습니다.
◆넘쳐나는 KF-21 국뽕... 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KF-21의 순조로운 개발은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기쁨의 표현도 어느 정도지, 최근까지의 분위기만 놓고 보면 샴페인을 지나치게 일찍 터뜨린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 ‘피프티피프티 사태’로 인해 유튜브 여론이 그쪽으로 쏠려 그렇지, 그 직전까지만 해도 과도하게 많은 양의 KF-21 콘텐츠가 범람했습니다. 국뽕 정서로 관심을 끄는 유튜버들에게는 아주 좋은 소재였기에 재탕삼탕 형태의 콘텐츠가 넘쳐났죠. 심지어 지상파 방송국마저도 KF-21 관련 뉴스를 장시간 노출시키기 위해 나섰습니다. 그동안의 KF-21 관련 뉴스를 모두 이어 붙여 3시간짜리 동영상을 자사의 유튜브 채널에서 제공하는 등 정말 이래야 하나 싶을 정도로 볼썽 사나울 지경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선 이런 일을 조장하는 배후에는 방위산업청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나날이기도 했어요. 특히 공동개발국인 인도네시아의 분담금 납부 마감일인 지난 6월 30일을 앞두고 약 2달간은 이건 너무 앞서간다 싶을 정도의 KF-21에 대한 희망찬 계획들이 발표되었습니다.
진정한 국익을 위해서는 냉정해야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시제 1호기기 출고가 이루어진 2021년 4월 9일, 시제 1호기의 초도비행이 이루어진 2022년 7월 19일, 시제 6호기의 초도비행이 이루어진 6월 28일 등의 일정만 놓고 보면, 역시 ‘빨리빨리’의 나라답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요. 여기에 2023년 3월에는 함재기형 KF-21N의 설계연구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블록-3까지의 개발로드맵을 발표하며 현재 4.5세대 전투기에 불과한 KF-21이 블록-2 시점에선 5세대 전투기, 블록-3 시점에선 6세대 전투기가 될 것처럼 떠들어댔습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는 분담금 납부에 대한 의견을 약속된 날짜까지 내놓지 않았고, 신기하게도 그 직후부터 장밋빛 계획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는 더 이상 양산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침묵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요? 이럴 땐 모종의 위기의식에서 오는 집단지성일 거라고만 해두죠. 그편이 더 편할 것 같아요.
◆KF-21의 시급한 과제: F-5계열 전투기의 대체
사실 KF-21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전투기가 아닙니다. 1999년부터 국산 전투기 개발계획을 놓고 정책적인 논의가 시작되었고, 2003년 타당성 분석을 통해 2010년부터 탐색개발이 이루어졌습니다. 본격 개발은 2016년부터로 이때부터 시제기 출시까지만 놓고 보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추진되고 있는 것은 맞아요. 최초 제안에 해당하는 1999년부터 지금까지를 놓고 보면 약 25년이나 걸린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인 것을 놓치고 가진 말았으면 합니다. KF-5, KF-16 등의 면허생산을 통한 항공산업 인프라 축적, KT-1, T-50, FA-50 개발 등을 통한 개발경험 등이 이런 성과를 이루게 한 것 아닐까요?
제가 보는 시각에선, 지금까지 발표된 블록-3까지의 로드맵도 연구개발이 거듭되는 상황 속에 공군의 미래 전력증강을 위한 소요분석이 합쳐진 것이겠지만,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는 시행착오의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까지는 항공선진국과의 무역과 교류를 통해 선행기술들을 도입하고 습득할 수 있었지만, 블록-3까지의 로드맵을 밝힌 이 시점에서는 적대국과의 정보전, 우방국의 경우라도 세계 군수시장에서의 무한경쟁에 돌입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자력으로 기술을 확보해야 하며, 여기에는 수많은 실험과 위험,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적대국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KF-21에 대한 기밀정보를 입수하기 위한 공작을 해올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상당한 수준의 대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만 보아도 블록-2, 블록-3 등의 로드맵, 한국형 항공모함에 탑재할 KF-21N 등에 빠져있을 때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잊지 않고 명심해야 하는 것은 하루라도 빨리 노후화된 F-5 계열 전투기를 대체해야 한다는 점이예요. 지난 2022년 1월 경기도 화성에서 한 대의 F-5E가 추락해 1명의 조종사가 순직하는 일이 벌어져, 노후화된 기체를 교체하지 않고 무리하게 운영하는 데서 오는 인재라고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기도 했어요. 현재 남아있는 F-5 계열 기체는 대략 80기 규모라 알려져 있는데, KF-21 블록-1 40기가 모두 출고되는 시점을 2028년까지로 보고 있기 때문에 불안감을 떨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2028년까지 남은 5년이라는 긴 기다림도 그렇지만, F-5 80기에 상응하는 전력을 KF-21 40기가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을 얻는 것도 필요하다 봅니다. F-5 계열 전투기들은 수원비행장, 강릉비행장 등에 배치되어 휴전선 너머를 위협하는 북한전투기에 대한 즉각 대응에 나서는 요격임무를 수행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50년대 중반에 개발된 이래 70년이나 된 F-5에 비하면 월등한 성능을 지닌 KF-21이겠지만, 최전방 초병의 임무를 지닌 F-5를 대체하는 만큼 임무수행에 공백이 없으려면 40기의 기체수량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안심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어지는 KF-21의 과제들: F-4, KF-16, F-15K 대체 수요를 채울 수 있을까?
또한 제공 임무를 위해 도입되어 최근까지 전술폭격 임무를 담당하던 F-4 전투기들도 상당히 노후화 되어 퇴역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술폭격 임무로만 놓고 보면 폭장량이 큰 F-15K가 기존 임무를 이어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2028년 F-35A 60기 전량 도입이 완료되어 제공능력과 은밀타격 능력 등으로 공군 전력이 강화되는 시점에서 남아있는 F-4 전투기도 전량 퇴역의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F-35A를 믿고 방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때 즈음이면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도입계획을 통해 도입된 F-16계열 전투기와 F-15K도 퇴역 시점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시점에서 KF-21에 대한 추가소요가 제기될 것이고 블록-2 등 업그레이드 문제가 심각하게 재평가될 겁니다.
이 시점부터는 F-5 대체라는 수준으로는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선 F-4는 8톤의 무장탑재량과 더불어 휴전선 이남에서 발사해 평양까지 공격가능하다는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인 AGM-142 팝아이 장착이 가능한 전투기였습니다. F-15K는 제공전투기로서도 훌륭하지만 13톤의 무장탑재량에 정밀직격탄인 JDAM, AGM-65 매버릭 공대지 미사일, AGM-84 하푼 공대함 미사일 등을 탑재가능해 폭격기를 보유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가치를 지닌 기종이죠. 그러나 KF-21의 무장탑재량은 7.7톤에 불과해, 퇴역을 앞둔 F-4보다 조금 부족하고, F-15K에는 훨씬 못 미칩니다.
즉, 4.5세대 전투기냐 5세대 전투기냐의 논의보다도 대한민국 공군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역량을 지니고 있는가를 검증받는 시점이 바로 이때가 될 것입니다. 또한 징병 가능한 인구도 상당히 줄어든 시기일 것이기 때문에 이전처럼 인간의 노동을 갈아 넣고, 어느 정도 눈감아줄 수 있는 선에서의 희생을 감내하는 위험천만한 운영방식은 배척당할 것이다. 점잖게 돌려 말했지만, 기체결함으로 의도치 않은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거나 정비 소요가 급증한다면, 국산전투기를 개발하는 것보다도 검증된 기체를 수입하는 게 훨씬 나았다는 후회를 하게 될 지 모른다는 거죠.
◆스텔스 기술 이외에도 국산엔진 개발, 무기체계 통합 등 난제는 가득
필자가 이런 우려를 말하는 이유는, 순조롭게 개발되고 있다고는 해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몇 가지 요소가 있어서입니다.
우선 기체의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음에도 엔진이 2기나 탑재된다는 점부터 지적하고 싶어요. 이는 제작 및 정비를 위한 소요와 비용이 상승함을 의미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산 엔진 개발에 착수한다고는 하지만, 이 과정에서 획득할 기술력에 대한 기대에 미리 취하는 건 위험하다고 봐요. 이미 K-2 전차 파워팩 개발과정에서 보았듯이 동력을 전달하는 핵심부품을 개발하는 건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대한민국 최초의 제트엔진 개발이라는 점에서 감내해야 할 시간과 비용을 섣불리 잡아서는 곤란해요.
다음으로 BVR(Beyond Visual Range; 시계외/視界外) 공중전에 대한 불안요소 때문입니다. 현재 유럽 컨소시엄이 만든 중거리 미사일 미티어 장착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실전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진 건 미국제 AIM-120 암람입니다. 홍보에 주안점을 둔 KF-21 자료만 보면 한국형 공대공 미사일 개발을 시사하면서 유럽제와 한국제 등 다양한 무장이 가능해 타 전투기보다 월등히 유리하다는 긍정의 표현을 쓰고 있지만, 달리 해석하면 무기체계 통합을 위해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자인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AIM-120 암람을 비롯, 공대지 무장 또한 실전에서 검증된 것들을 탑재할 수 있도록 미국과 항공선진국들과의 관계를 잘 풀어내는 것도 필수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공중전에서 2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검증된 무장을 장착할 수 있는 상태에서 써드파티라는 다양한 선택지를 줄 수 있어야 당연히 수출에도 유리하지 않겠어요?
국뽕 콘텐츠는 조회수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언론과 미디어는 여기에 혈안이 되고, 여기에 호도된 독자들은 국뽕최면에 취해버립니다. 몇 밤 자고 일어나면 바로 블록-2, 블록-3가 나오고 적의 레이더에 전혀 발각되지 않는 유·무인 전투기 복합체계가 날아올라 대한민국 하늘을 지켜줄 거라 착각하게 만듭니다. 이런 발상과 생각은 이제 겨우 날개짓을 시작한 지 한 해를 맞는 KF-21의 발전에 백해무익합니다.
특히 보이지 않은 곳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는 개발진과 기술진들에 대해선 자칫 모독이 될 수 있다고 봐요. 국내 기술의 확보는 조금 느리고 여유롭게, 대한민국 국방을 위해선 좀 더 신속하고 넉넉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언제 또 기회가 닿을 때, 필자만의 분석으로 KF-21과 항공무기체계에 대한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