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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전(4)]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평가

새로운 전장-당신의 머릿속, 그리고 민주주의
제1부: 새로운 전쟁의 양상_04편

김형중 기자 승인 2023.08.01 17:22 | 최종 수정 2023.08.15 19:09 의견 0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하이브리드전은 러시아에 의해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병합 과정에서 최초로 국가 규모의 행위자에 의해 수행되면서 전형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 것으로 평가된다. 미 육군 특수전사령부는 그 과정을 게라시모프가 『국가 간 분쟁해결에서 비군사적 수단의 역할』에서 제안한 모델을 바탕으로 세밀하게 분석했다.

◆미 육군 특수전사령부의 게라시모프 독트린 분석

게라시모프는 『국가 간 분쟁해결에서 비군사적 수단의 역할』에서 현대전의 분쟁의 주요 단계를 ①은밀한 기원, ②고조, ③갈등행위의 시작, ④위기, ⑤해소, ⑥평화 회복의 여섯 국면으로 구성한 모델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미 육군 특수전사령부도 여섯 국면으로 전쟁 성격을 분석했다.

1. 은밀한 기원(covert origins)
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초기 단계에서는 적국의 정권에 대한 정치적 반대가 형성된다. 반대세력은 정당, 연합, 노동조합의 형태를 취한다. 러시아는 성공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전략적 억지 조치를 취하고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정보전 영역의 작전을 수행한다. 이 단계에서 군사 활동의 가능성이 나타난다.

2. 고조(escalations)
분쟁이 고조되면 러시아는 문제를 일으키는 정권이나 비국가 행위자에게 정치적, 외교적 압력을 가한다. 이러한 활동에는 상대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경제적 제재 또는 심지어 외교 관계의 중단이 포함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지역 및 해외의 군사 및 정치 지도자들은 발전하는 갈등을 인식하고 공식적 입장을 밝히게 된다.

3. 갈등행위의 시작(start of conflict activities)
세 번째 단계는 분쟁 지역의 반대 세력들이 서로에 대한 대항 조치를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이것은 시위, 항의, 전복, 사보타주, 암살 및 준군사 활동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 분쟁 활동의 강화는 러시아의 이익과 국가 안보에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이 되기 시작한다. 이 단계가 시작될 때 러시아는 분쟁 지역을 향해 군대를 전략적으로 배치하기 시작한다.

4. 위기(crisis)
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면 러시아는 강력한 외교적, 경제적 설득과 함께 군사 작전을 시작한다. 정보전 영역의 작전은 러시아의 개입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관점에서 지속된다.

5. 해소(resolution)
이 단계에서 러시아 지도부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길을 모색한다. 국내 경제는 전쟁 노력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 국가의 노력을 통합하는 방법으로 총력전 기반으로 전환된다. 결의안의 방점은 분쟁 지역 또는 국가의 군사적, 정치적 리더십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서방 측에서는 이것을 ‘정권 변화’라고 하며, 당면 목표는 평화, 질서로의 복귀 및 일상적인 관계의 재개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해 지역의 정치, 군사, 경제 및 사회적 현실을 재설정하는 것이다.

6. 평화회복(restoration of peace)
다시 장기화될 수 있는 최종 단계에서 러시아는 긴장 완화를 위한 종합적인 조치를 감독하고 평화 유지 작전을 수행한다. 이 단계에는 원래의 분쟁 원인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외교적, 정치적 조치가 포함된다.


◆ 크림반도 병합을 위한 러시아의 6단계 과정

미육군특수전사령부는 이처럼 6단계로 구성된 게라시모프 모델을 2014년 러시아의 동부 우크라이나 병합 과정에 적용해 분석했는데 그 결과는 아래 그림과 같다.

첫 국면인 ①‘은밀한 기원’은 1991년 12월 소련으로부터 우크라이나의 독립선언, 2013년 11월 우크라이나의 EU 가입협상 포기로 촉발된 대대적인 민중시위(이를 ‘유로마이단 시위’라고 하며 결국 친러 정부의 수장이던 야누코비치는 2014년 2월 실각한다.), 2013년 12월 시위사태를 완화시키기 위해 푸틴이 제시한 무역·재정적 조치에 이르는 장기간을 포괄한다.

두 번째 국면인 ②‘고조’에서 러시아는 사태진정을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2014년 2월 야누코비치가 실각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주로 사용되는 러시아어가 제2공용어 지위를 박탈되었고 러시아어만을 사용하는 공무원은 파면되는 등 친서방 세력이 완전히 승리로 귀결되었다.

유로마이단 시위가 친서방 세력의 완전히 승리로 귀결되자 ‘작은 녹색사람들’의 등장으로 시작된 세 번째 국면인 ③‘갈등행위 개시’ 활동이 급속하게 다음 국면인 ‘위기’로 이행되었다.

본격적인 ④‘위기’가 벌어지자 러시아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warfare)인 하이브리드전을 수행했다. 러시아는 세바스토폴 해군기지 점령 등을 통해 크림반도 등지에서 우크라이나의 정부기능을 마비시킨 뒤 뒤이은 국민투표를 통해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분리, 위성 국가를 수립한 것이다.

⑤‘분쟁해결’ 국면에서 러시아는 재빨리 크림 반도의 분리독립에 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마지막 ⑥‘평화 회복’ 국면에서 메드베데프 러시아 수상은 크림반도를 방문하여 막대한 경제지원과 함께 러시아 경제권으로의 통합을 약속하는 등 긴장을 완화 시키기 위해 유화적 활동을 개시했다.


◆ 러시아 하이브리드전과 벼랑 끝 핵사용 전술

2014년 크림반도(우크라이나 동부) 병합 과정에서 러시아는 메시지 운용 차원에서 핵전력 운용의 모호성을 활용했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러시아는 핵전력 운용의 모호성을 반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위기’가 절정을 향해 치닫던 2014년 3월 27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지대에 10만명 이상의 병력을 집결시키고 해육상에서 불시 군사연습과 동시에 3대 핵전력(대륙간탄도미사일 전략핵폭격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모두 동원한 대대적인 핵공격 훈련을 실시하며 우크라이나에 압박을 가했다.

우크라이나와의 갈등 기간 내내 러시아 관리들은 “핵무장한 러시아를 건드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달했다. 2014년 8월 푸틴은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핵 강국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어떤 나라도 “러시아에 대해 대규모 분쟁을 시작할” 의도가 없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에 대한 추가 서방 제재 전망을 언급하면서 푸틴은 “러시아를 ‘협박’하려는 시도가 전략적 안정에 극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강대국 간의 불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냉전기 흐루시초프의 핵미사일 벼랑 끝 전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러시아 관리들은 러시아가 새로운 영토를 유지하기 위해 핵 사용 옵션을 유보한다고 암묵적으로 제안했다. 2014년 7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침략의 경우, 러시아는 국가 안보 교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 경우 취할 조치를 매우 명확하게 규제한다”고 언급했다. 이 성명은 러시아가 크리미아로 핵 능력이 있는 군대를 이동시키고 있다는 보도와 러시아가 세바스토폴의 핵 저장 인프라를 개조하고 있다는 우크라이나 공식 성명과 병치될 수 있었다. 그밖에도 러시아 관리들은 크리미아에 핵무기를 배치할 수 있는 권리를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러시아의 핵 결의는 특히 크리미아와 관련하여 강조되었다. 2015년 3월 러시아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은 크리미아 합병 기간 동안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되었음을 인정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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