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를 병합하는 과정을 계기로 국가급 행위자를 주체로 실제로 구현되고 성공한 하이브리드전은 국방정책의 실무 차원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미육군 훈련교리사령부(TRADOC)에서 2018년 발간한 『The U.S. Army in Multi-Domain Operations 2028』은 다음과 같이 하이브리드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하이브리드전 전략
러시아는 비정규전과 정보전을 사용하여 모호함을 유발하고 러시아의 적-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의 반응을 지연시키는 기법을 전파해왔다. 지난 10년 동안 러시아는 접근금지 및 영역거부를 가능케 하는 기능과 체계에 대한 투자를 확대했다. 미국과 그 동맹의 합동 전력이 경쟁 지역에 진입하는 것을 거부하고 변경된 형상을 ‘기정사실화하는’(a fait accompli) 공격 조건을 설정했다.
이는 하이브리드전에 대한 미국의 평가인 동시에 미국이 수립한 다영역작전이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한 하이브리드전에 대응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이브리드전은 G2로 급부상하는 중국에게도 미국과 ‘신형대국 관계’를 수립하는데 매우 효과적이고 매력적인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하이브리드전을 회색지대전술로 발전시켜 활용하고 있다.
일본과의 센카쿠 영토분쟁의 대응조치 성격을 띠었던 희토류 수출중단이나 관광제한, 필리핀, 베트남과의 남중국해 영토분쟁과 관광 제한, 우리나라 사드 배치에 따른 경제적 보복 등 중국이 주변국에게 적극적인 비군사적 공격을 감행해온 것은 러시아의 하이브리드전을 참고한 것이다.
◆전통적인 정규전과는 다른 공격
군사적 전면전이 매우 드물게 수행되는 현대사회에서는 점차 군사적 충돌보다는 비군사적, 비전통적 개념의 위협이나 전쟁의 중요도가 커졌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를 병합하는 과정에서 하이브리드전을 펼쳤던 2014년 이전부터 펼쳐진 상황이다. 군사적 수단이 주가 되는 정규전과는 양상이 다르지만, 이전에도 상호 상당한 피해를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공격을 시도해왔기 때문이다. 군사력이 본격적으로 동원되지 않고 있음에도 이러한 공격을 두고 흔히 ‘전쟁’이라 표현해왔다.
하이브리드전의 공격 목표는 전통적인 공격 목표인 군사집단이나 권력집단이 아니며, 상대국의 사회적 가치와 규범이 공격목표다. 사회적 혼란과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는데, 일상의 일부가 된 SNS와 미디어를 이용한 심리전과 정보전이 주요하다. 따라서 하이브리드전은 뚜렷하게 공격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요소다. 상대국이 군사력, 경제적, 국제적 영향력 등 전통적인 영역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경우, 이러한 비대칭적인 힘에 맞서기 위한 도구로 매우 효과적이다.
또한 하이브리드전의 행위자에게는 다양한 인적, 조직적 수단이 동원된다. 중동 테러집단, 마약조직 등 비국가단체 및 집단, 세력은 물론, 하이브리드전을 통해 사회적 가치와 규범에 혼란을 일으키는, 이른바 ‘외로운 늑대(lonely wolf)’로 불리는 테러리스트 개인도 포함된다. 이들은 행위자의 입장에서는 비용이 적게 들면서, 상대방 입장에서는 소재와 책임을 파악하기 쉽지 않고 명확한 주체 파악이 어려워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이처럼 위협의 주체가 ‘비국가 행위자’로 점차 다양화되어 예측하기 어려워지면 위협에 대처하기 비용이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었다. 기술적 네트워크로 고도로 연결된 사회일수록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 따라서 하이브리드전에서는 ‘위기 이전 국면’에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압도적인 미군을 철수시킨 탈레반의 하이브리드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최종적으로 승리하고 미군이 철수하게 된 원인중 하나로 하이브리드전을 꼽을 수 있다. 탈레반은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관련 비용의 급격한 하락, 이로 인한 정보 생산성과 접근성의 확대를 이용해, 정교한 전략에 따른 정보의 공개와 조작을 통해 사이버 공간에서 수행하는 심리전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20년간 진행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유튜브 같은 캐주얼한 미디어 허브와 드론, 모바일 통신기술과 같은 기술적 진전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한 존재가 미군이나 아프카니스탄 군이 아닌 탈레반이었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래, 수염을 기르고 전통 복장을 한 채 ‘AK-47’과 ‘RPG-7’을 이용하는 전형적인 전사의 모습이 탈레반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미국과의 전쟁에서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초연결사회의 성질을 지닌 선진국가를 대상으로 스마트폰으로 제작한 전투 장면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하는 IT전사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심지어 탈레반은 ‘봇’을 이용해 소셜미디어에 자동으로 댓글을 달아, 탈레반의 전투적 성과를 알리고 이미지를 쇄신하는 메시지를 배포하며 오프라인 공간인 전장을 온라인 공간으로 확장해나갔다. 탈레반이 수행하는 전쟁은 노트북과 아이폰을 이용한 하이브리드 전으로 급격하게 진화했고, 이러한 진화는 내적으로는 동기 부여를 통한 응집력 강화를 촉진하고 외적으로는 고도의 심리전의 효과를 가져왔다.
◆전력 우위의 아제르바이전군이 아르메니아에 감행한 하이브리드전
하이브리드 전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수행되는 심리전이 가지는 영향력은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 자원이 열세에 놓인 집단에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2020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갈등을 벌이던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 재발발한 군사적 충돌 국면(제2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군은 SNS를 통해 드론 전투의 전술적 성과를 공개함으로써 전략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아제르바이잔군은 군사 혁신의 상징과도 같은 드론을 활용해 아르메니아군의 주요 전력을 파괴하는 전투 영상을 집중적으로 공개하고, 자신들의 전투 영상을 전 세계와 실시간 공유함으로써 전략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볼 점은 두 국가의 전력차다. 아제르바이잔군은 병력, 전차, 자주포, 전투기 등 전통적인 군사 능력에서 아르메니아보다 우위를 점유하고 있고, 국방비는 아르메니아의 5배를 지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제르바이잔군은 공격 및 자폭 드론을 활용해 전격적인 드론 전투를 수행하는 한편, SNS를 통해 드론 전투 영상을 공개함으로써 적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 고도의 정보·심리작전을 전개했다. 이런 점은 하이브리드전이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 자원이 열세에 놓인 집단에 의해서만 활용되는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이라 할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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