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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70주년, 소리없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새연재) 새로운 전장-당신의 머릿속, 그리고 민주주의 _ 프롤로그

윤준식 기자 승인 2023.07.27 23:52 | 최종 수정 2023.07.28 00:59 의견 0

오늘은 6.25일 시작된 전쟁의 정전협정이 맺어진 지 70주년이 된 날입니다. ‘70’이라는 언급하기 쉬운 단위의 숫자가 들어있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조용히 넘어가는 분위기입니다.

반면, 북한은 우리와 사정이 다릅니다. 북한은 1996년부터 정전협정일을 ‘전승절’이라 부르며 국가명절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전승절 분위기는 ‘열병식’을 절정으로 끌어올려집니다. 북한의 군사행사는 보통 밤에 이루어지는데요, 오늘 밤에도 평양에서는 대규모 병력과 군 장비의 행진과 함께 신무기를 공개하며 강성대국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겁니다.

◆정전 70주년, 이쯤이면 종전이 되어야 하건만

지난 정부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통해 현재의 휴전 상태를 끝내고 2018년 내에 종전하자는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는데, 이 논의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은 채 끝났습니다. 당시 남한만의 독자적인 종전선언이라도 추진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자구책을 모색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그럴 정도로 북한에 우호적인 메시지를 전한 정부였음에도 이 메시지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태도는 더욱 강경해졌고, 2020년 6월 16일에는 남북한 간의 소통을 위해 건설했던 개성 공동 연락사무소를 폭파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의 국가원수인 대통령에 대한 폭언은 물론, 지금까지도 미사일 도발은 여전한 상황입니다. 전면전의 징후만 없을 뿐, 긴장상태만 놓고 본다면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인식하게 만들어 줍니다.

최근 묻지마 살인으로 인해 사형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살짝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사형제도가 있는 국가지만, 1997년 이후 25년 넘게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실질적으로는 사형폐지 국가로 일컬어집니다. 정전협정이 맺어진 지 70년이나 되었으면, 숫자만 놓고 본다면 이미 종전상태나 다름없다고 보아도 좋아야하건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무력충돌은 없지만, 전쟁은 지속중

2010년은 남북한의 군사적 행동이 있었던 마지막 해입니다. 3월 26일 천안함 피격,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 이래로 지금까지 10년 넘게 전투에 준하는 사건은 벌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평화에 젖어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침체된 경기, 여기에 엎친데 덮친 듯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유가, 곡물가, 원자재 가격이 올랐고, 외교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동아시아에서의 국제적 공급망 구조 변경 등으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인 현실, 먹고사는 문제에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7월 27일이 정전협정일임을 깨닫고 있는 국민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70년 전에 대한민국이 초토화되었던 전쟁이 벌어졌음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대한민국 현대사는 산업화와 민주화로 점철됩니다. 폐허 속의 나라가 절망을 딛고 일어나 눈부신 산업발전을 이루었고,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경제적 성장은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 지금은 OECD 가입에 이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나라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여권으로 갈 수 있는 국가가 많아졌고, 대한민국을 선망하며 찾아오는 세계인들도 많아졌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국민 스스로 이룬 민주화의 전통을 자랑스러워하며 민주주의의 장점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정치적 결정을 제한받지 않습니다. 누구나 정치적인 주장을 어디서든 눈치보지 않고 펼칠 수 있습니다. SNS, 블로그, 유튜브 등 자신만의 미디어와 채널을 통해 주장할 수 있고, 자신의 정견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함께 집회와 결사와 언론의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독재타도를 외치며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민주주의의 장점을 틈탄 새로운 도전; 인지전

그런데 이런 민주화의 전통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평화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전방에서 총질을 하고 포격을 하지 않을 뿐, 보이지 않는 다른 영역 속에서는 또 다른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연재를 통해 언급하고자 하는 ‘인지전(Cognitive Warfare)’은 발전한 정보통신 기술로 인해 심화되고 있습니다.

군사전문가들은 복잡한 개념정의를 통해 ‘인지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정리하면 “전쟁 또는 전투에 참가하는 전사와 민간인들의 인지 메커니즘을 조직함으로써 전쟁 및 전투의지를 훼손시키고, 말살시키는 비살상전투”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참고: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제1423호. 2023.03.13.) 오늘은 이 개념을 단순화 해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라고 표현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적들은 인터넷을 통해 발신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혼란시키고, 교란시키고, 분열시키고, 나아가 우리 자신도 모르게 어떤 행동을 하도록 조종할 수 있습니다. 빠른 산업화를 통해 정보통신 기기와 정보통신 인프라의 보급이 뛰어난 대한민국의 상황, 민주화의 열망을 통해 더 많은 자유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민주적 의사결정이 존중되는 장점을 파고드는 위협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국제관계의 복잡성 - 누가 우리의 적인가?

70년 전의 6.25 전쟁상황은 여전히 재현되고 있습니다. 당시 동맹을 결성했던 참전국가들간의 관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도 지속되는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는 ‘UN군 vs 인민군’의 구도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해방 당시에 이런 말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말자, 일본은 일어난다” 이 말은 언어유희를 통해 이익에 따라 돌변하는 국제관계의 본질과 비정함을 표현하는 적절한 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은 조선이 패망하는 시기부터 외세가 개입하는 역사적 상황을 몸으로 겪었기 때문에 이런 단순한 말로도 국제관계를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제관계를 잘못 해석하고 북한의 입장에 무조건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으로 인식하고, 남북한의 통일을 반대하는 국제관계의 이해당사자로 미국과 일본을 간주하는 식인 거죠. 이들의 주장과 설명을 듣다 보면, 부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그거나 6.25 전쟁의 진실을 알게 되면, 전쟁을 시작한 장본인은 소련과 당시 북한의 지도자였던 김일성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책을 뒤져보면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위치와 중요성은 주변 국가들로부터 지속적으로 견제당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습니다.

중국 본토가 통일을 이루면 변방의 세력들과 투쟁할 수밖에 없었고, 동쪽에 위치한 한반도는 견제나 협력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대륙 북쪽의 유목민족이 강성해지면 국가를 형성하며 중원을 향했고, 그 뒤통수를 칠 수 있는 한반도를 견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다 건너 왜의 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륙을 향하는 과정 속에서 한반도는 경유지가 되는 곳이기도 하고, 부족한 자원을 조달하기 위한 교환과 약탈의 장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할 것들

이는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직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나던 당시 냉전의 당사자 중 하나였던 소련은 미국과의 대결 속에서 완충지대로 한반도를 염두하고 있었습니다. 선제적 조치로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이 남침할 수 있도록 전차와 전투기, 무기를 제공했고, 비공식적으로 전투기 조종사들을 파병했습니다. 전세가 역전되며 미군을 중심으로 한 UN군이 중국 국경까지 북상하자, 미국과의 완충지대가 필요하다 여긴 중국도 참전을 결정합니다.

70년 전의 상황만 그랬을까요?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한반도의 세력구도는 지금도 여전합니다.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 속에서 총성없는 전쟁은 인지전의 형태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다만 각국의 병사들이 대치중인 전선이 보이지 않고, 무기를 사용해 공격하고 응전하지 않기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이런 징후들은 한국 사회 속에서 여러 차례 나타났으나 입증하기 애매한 상황들이 계속되며 새로운 이슈 속에 묻혀가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당신의 마음 속에서, 아니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서 벌어지고 있을지 모르는 전쟁 ‘인지전’에 대한 긴 연재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먼저 ‘인지전’의 개념이 등장하게 된 현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내용으로 출발합니다. 오늘 이후 2~3개월 간 지속되는 긴 연재가 되겠습니다만, 연재를 위한 준비과정이 연재할 기간의 몇 배 이상으로 매우 길었습니다. 반년 이상의 자료수집, 수개월간의 집필을 통해 연재할 원고의 대부분이 완성된 상태로, 현재는 결어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연재 순서]

제1부. 새로운 전쟁의 양상
1장. 하이브리드전
2장. 회색지대
3장. 다영역(통합 전영역)작전
4장. 모자이크 전

제2부. 인지전의 중요성
5장. 사이버전
6장. 정보심리전
7장. 인지전
8장. 인지전과 민주주의
9장.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시 전장, 인간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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