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전이란 기술력, 정치력, 경제력, 군사력 등을 모두 망라한 형태의 군사행동이다. 정치공작, 경제침투, 정보탈취 및 교란 등을 행하는 심리전과 사이버전, 비정규전과 함께 핵무기를 비롯한 정규전이 결합한 형태의 전략이다.
하이브리드전은 비대칭전, 혹은 복합전쟁이라는 용어로 설명되기도 하는데 냉전시대 이후 미국이 독보적으로 우위에 선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 과정 속에서 부상하게 된 개념이다. 소련 붕괴로 인한 냉전 종식 이후 서방세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원이 빈약한 러시아는 구 소련처럼 미국과 견줄만한 힘을 유지하지 못했고, 전력의 비대칭적 상황 속에서 다른 전략요소가 필요하게 되면서 발전시켜 온 개념이다.
◆ 주요 전장은 인간의 마음 속에 존재한다
2013년 당시 러시아군 총참모장이었던 발레리 게라시모프는 하이브리드전을 “선전포고 없이 이뤄지는 정치·경제·정보·기타 비군사적 조치를 현지 주민의 저항 잠재성과 결합시킨 군사 비대칭적 군사행동”으로 정의했다. 이를 ‘게라시모프 독트린’이라 불렀는데, 러시아는 이 독트린에 따라 하이브리드 전쟁을 수행에 최적화된 방향으로 군사 전략을 발전시켰다. (편집자 주: 러시아는 ‘하이브리드전’라는 표현 대신 ‘비선형 전쟁’ 또는 ‘신세대 전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군사 전략을 활용해 러시아는 에스토니아,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사이버전과 분쟁 개입을 수행하는 한편, 나토 회원국에 대해서는 확전의 위협, 경제적 영향력,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 공급 중단 위협 등 가용한 자원을 모두 결합함으로써 나토 회원국이 개입을 포기하게 하는 방법으로 러시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전환해 왔다. 현대전에 관한 러시아의 관점에 따르면 ‘주요 전장은 영토적 경계선’이 아닌 ‘인간의 마음(minds) 속에’ 존재한다.
게라시모프가 저술한 『군대 형태와 방법에서의 주요 추세(the Main Trends in the Forms and Methods of the Armed Forces)』와 『국가 간 분쟁해결에서 비군사적 수단의 역할(The Role of Nonmilitary Methods in Interstate Conflict Resolution)』은 러시아가 구상하는 하이브리드전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모호한 평화, 불확실한 전쟁
게라시모프는 중동 지역 및 북아프리카에서 분출되었던 ‘색깔혁명’ 또는 ‘아랍의 봄’ 사태에서 전쟁과 평화의 경계선이 희미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그 와중에 벌어지는 분쟁으로 정규전 못지않은 파멸적 결과가 초래되는 점에 주목했다. 이를 통해 게라시모프는 ‘전쟁의 규칙’이 변화되어, 정치적·전략적 목적을 성취함에 있어 군사적인 것보다 비군사적인 것이 더 큰 역할을 하는 형태로 현대전의 특성이 변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게라시모프는 “아랍의 봄”에서 비롯된 일련의 사태를 21세기의 전형적인 전투로 판단했다. 사상자수와 파괴의 규모,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아랍 분쟁은 전쟁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이 21세기 전쟁의 양상과 규칙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21세기에는 전쟁과 평화의 상태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전쟁은 더 이상 선언되지도, 시작되지도 않으며, 익숙한 형태로 진행되지 않는다. 특징적 양상으로 정치적·전략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비군사적 수단의 역할이 증가하고, 많은 경우 효율성 면에서 비군사적 수단이 군사력을 넘어선다. 정치적, 경제적, 국제적, 인적 및 다른 비군사적 조치의 광범위한 사용과 더불어 정보전 행위, 특수군의 활동 등 은폐된 군사적 수단으로 지원된다. 재래식 군사력은 종종 평화유지와 위기조정이라는 명목 하에서 일정 단계, 즉 분쟁의 최종적 승리를 위해 공개적으로 사용된다.
◆비군사적 방법으로 전개되는 분쟁과 개입
게라시모프는 “아랍의 봄” 이후 전쟁은 군사력 사용과 더불어 주로 정치·외교·경제 및 다른 비군사적 방식으로 수행된다. 대규모 전면전보다 국지전이나 제한전의 가능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전쟁 상태와 평화 상태의 구분은 불분명해지고, 분쟁의 방식도 변화되어 비군사적 방식이 광범위하게 활용될 것임을 강조했다.
재래식 전쟁에서 군사 작전은 전쟁선포를 시작으로 육·해·공군이 상대방과 대칭적으로 교전해 적을 괴멸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면, 현대전은 공식적인 전쟁 선포 없이 평시 작전부대가 그대로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이 경우 전쟁의 중심은 군사적 대결이 아니라 심리전과 정보전이 강조되고 민간 전투대원이 활용된다.
새로운 전쟁에서는 비군사작전인 여론조작과 대내전투를 담당할 행동대원을 가장한 군의 배치가 중요해진다. 이러한 비군사작전이 성공하면, 다음으로는 인권보호나 질서구축 등 다양한 명분을 내세워 서방국가들이 발전시킨 작전 개념인 이른바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MOOTW, Military operations other than war)’ 형태의 군사개입이 정당화된다.
또한 최근 정보기술, 현대무기와 장비, 첩보와 전자전 기술, 자동화된 통제체계 등으로, 오늘날 전쟁은 군사작전이 총체적으로 통제되는 네트워크 중심전으로 수행된다. 이는 우주작전과 체계적 패턴을 따르는 항공작전으로 이루어지며,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정보기술과 고정밀무기가 대규모 활용된다.
◆육-해-공 이외의 전장도 장악하는 합동전력
과거 육-해-공 3차원에서 싸운 반면, 이제 전쟁은 육-해-공에 더해 정보의 4차원으로 확대되었다. 상대방보다 정보적 우월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승리할 수 없게 된다. 상황에 따라 정보기술을 비롯한 네트워크 체계가 전쟁에서 무기보다 우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통합 정찰력과 정보환경에서 기동성을 지닌 합동군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전술은 인도적 개입이라는 개념으로 서방국가들이 개입한 코소보전 이래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MOOTW 등의 형태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비서방 국가들을 대상으로 반복적으로 수행하며 발전시켜 온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게라시모프는 ‘색깔혁명’과 ‘아랍의 봄’ 이래, 러시아가 정치, 외교, 경제, 정보, 사이버, 심리 및 다른 비군사적 수단의 사용과 연계된 광범위한 다방면으로부터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보았다. 또한 미국과 같은 선진강국의 ‘첨단 전투기술’인 항공, 해상, 우주에서 작동하는 고도정밀‧원거리 무기체계를 보유함으로써 적과 비접촉 통제방식에 의해 군사적 목표를 파괴할 수 있는 능력에도 대응해야 한다고 보았다.
결론적으로 게라시모프는 러시아의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가 재래식 군사력만이 아니라 ‘연성적 힘(soft power)’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힘을 구축,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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