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라시모프 독트린 이전에도 현 시대에 맞는 하이브리드 전쟁 개념은 조금씩 도출되고 있었다.
사실 ‘하이브리드전’이라는 용어는 1998년에 처음 사용됐다. 당시 미 해군대학원에 재학 중이었던 로버트 워커(Robert Walker) 대위의 석사학위논문을 통해 재래전과 특수전 사이에 존재하는 새로운 전쟁형태로 ‘하이브리드전’을 정의했다. 그러면서 하이브리드전이 재래전과 특수전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비록 현재의 하이브리드전과는 다른 정의를 내린 것이지만 하이브리드전의 개념을 처음 도출해낸 것으로 평가된다.
◆하이브리드전의 시작: 체첸 전쟁
2002년 몬트리올 해군대학원의 네메스(W.J. Nemeth) 소령은 체첸전쟁을 분석하는 데 하이브리드전 개념을 사용했다. 그는 체첸사회가 현대 이전의 정치, 사회, 문화와 현대의 정치, 사회, 문화가 공존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The Contemporaneity of the Uncontemporary)’을 띤 국가와 사회구조를 지니고 있었고, 이러한 구조를 이용해 체첸인들을 대대적으로 전쟁에 동원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러한 하이브리드 사회에서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정규전과 비정규전의 요소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전투 형태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체첸인들은 러시아의 움직임에 따라 전쟁의 형태를 비정규전와 정규전을 혼합해서 적용하였고, 러시아군에 대해 심리·정보전을 사용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문화와 언어에 매우 익숙한 이점을 활용해 체첸인들은 러시아를 상대로 정보전을 효율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으며, 서방으로부터 지지와 동정을 받을 수도 있었다.
즉 군사적으로 비대칭적임에도 불구하고 체첸은 하이브리드 사회의 특성에 기초해 러시아를 오랫동안 괴롭힐 수 있었던 것이다. 체첸에서의 하이브리드전은 현대식 정보전 방식을 사용하는 비정규적이면서도 정규적인 전술이 혼합된 전쟁이었다.
상대적으로 약체인 체첸이 이러한 전술을 사용할 수 있었던 데는 체첸사회가 강력한 지도자, 대의에 대한 강한 믿음, 극단적 손실조차 감내하는 사회, 탈중앙집중화된 전술 등의 강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체첸 전쟁은 전쟁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어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분이 없었고, 테러, 학살, 극단적인 비인간적 처리, 범죄행위 등에 의존할 수 있었던 측면도 있었다.
러시아가 구사하는 하이브리드전은 코소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등 반민주 권위주의 체제인 비서방국가의 체제 전복 과정에 대한 간접적인 경험과 체첸에서의 패배와 고착의 경험에서 도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05년을 기점으로 체계화되기 시작한 하이브리드전 개념
2005년 미군 관계자들 역시 부상하고 있는 하이브리드전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기존의 전략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전략적 수단 및 전술은 물론, 전통적인 현대전 외에도 현대 국가가 내포할 수밖에 없는 갈등의 심리전 및 정보전 측면에 대한 연구였다.
이런 요소의 통합을 잘 보여주는 것이 2014년 러시아의 크리미아 침공이다. 미군은 러시아가 ‘작은 녹색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러시아군 소속임을 부정할 수 있는’ 특수부대를 투입함으로써 크림반도에 거주하고 있는 친러 무장 주민, 경제적 영향력, 허위 정보 및 우크라이나의 사회 정치적 양극화를 악용했다고 평가했다.
군사전문가 매티스와 호프만이 2005년에 수행한 연구는 이론적 측면에서 하이브리드전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연구로 평가된다. 이에 앞서 미 국방부는 『국방전략서(National Defense Strategy 2005)』를 통해 장차 미군이 직면할 4가지 위협으로 ①전통적 위협, ②비정규적 위협, ③재앙적 위협, ④파괴적 위협을 제시했다. 매티스와 호프만은 미래전에서 미국의 적이 이 4가지 위협을 혼합해 미군에 도전할 것이라고 보았고, 4가지 위협이 혼합된 형태의 전쟁을 하이브리드전이라고 표현했다.
또 하이브리드전 수행의 주체로 패한 국가, 불량국가, 준군사조직, 테러집단, 비국가행위자 등이 가능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공격형태도 경제전쟁에서부터 군대 또는 금융시스템에 대한 컴퓨터 네트워크 공격까지 다양할 것으로 전망했다. 매티스와 호프만은 하이브리드전을 명확히 정의하기보다는 미래전쟁 양상 중 하나의 형태로 설명하면서 혼합된 공격주체가 혼합된 공격형태를 보이는 형태 수준으로 다소 모호하게 정의했다.
◆모호하면서도 복잡한 전쟁에 대한 체계화
2006년 호프만은 제2차 레바논전쟁에 대한 외교정책연구소(Foreign Policy Research Institute)에 기고한 글을 통해 하이브리드전의 개념을 다시 정의했는데,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제2차 레바논전쟁 등을 ‘복잡한 비정규전(Complex Irregular Warfare)’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같은 해 발표한 다른 논문에서도 동일한 규정을 사용하면서 하이브리드전을 ‘복잡한 비정규전’과 동일시했다.
호프만은 하이브리드전이 조직과 수단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조직의 측면에서 볼 때, 하이브리드전은 국가뿐만 아니라, 테러조직 같은 비국가행위자를 포함하고, 수단의 측면에서 볼 때는 미사일과 같은 재래식 무기에 급조폭발물(IED) 등과 같은 단순한 무기도 함께 사용한다는 것이다.
2006년에 발표된 논문 또한 2005년 연구에서 발표한 정의를 반복한 것으로, 하이브리드전을 ‘복잡한 비정규전’으로 정의했다는 점에서는 문제점이 있다. 즉 하이브리드전을 비정규전의 한 형태로 간주하였으며, 하이브리드전의 주체와 수단에만 주목해 2014년 러시아가 수행한 하이브리드전에서 나타난 회색지대 등의 특징을 포함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특히 전쟁의 목표(objective) 차원에서 하이브리드전은 적 군사력 궤멸, 주요 지형 확보 등이 아닌 인간지형에 대한 통제를 핵심적 목표로 삼는다는 점을 간과하는 문제가 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 합병 시 우크라이나군의 궤멸보다는 우크라이나군의 전투의지 소멸과 크림 반도 주민에 대한 통제를 핵심목표로 설정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래식 전장과 인간지형의 전장에서 모두 승리한라
한편 호프만은 2007년 발표된 저술에서 하이브리드전을 “전쟁형태와 전쟁 주체가 모호하고 다양한 기술의 사용으로 발생하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전쟁”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하이브리드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장소로 도시지역과 같은 복잡한 지형을 지목했다.
호프만의 정의를 이론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머큐언(John J. McCuen)이다. 머큐언은 2008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호프만과 같은 맥락에서 하이브리드전을 “대칭전과 비대칭전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가운데 전통적인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한편, 보다 결정적으로는 피침략국가의 국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작전을 수행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브리드전은 물리적 차원(physical dimension)과 개념적 차원(conceptual dimension)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발생하는 전쟁이라고 보았다. 특히 개념적 차원의 요소인 분쟁국가의 국민, 자국민, 그리고 국제공동체를 ‘인간지형’(human terrain)으로 정의하고 하이브리드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재래식 전장과 인간지형의 전장에서 성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머큐언은 그동안의 하이브리드전의 정의, 즉 전쟁수단의 혼합, 전쟁 주체의 혼합 등에서 인간지형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전쟁의 목표를 포함한 정의를 시도함으로써 하이브리드전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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