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인가? 이런 상차림을 전라도식 밥상이라 한 자는???”
구미에서 1탕+12찬 밥상을 대할 줄은 몰랐다. 이건 전라남도의 백반집이나 전주의 막걸리집에서나 볼 만한,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거한 상차림이다.
전라도 지역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삼남지방은 토양이 비옥할 뿐 아니라 연안해로와 내륙수로 덕에 물산이 모이는 곳은 푸짐한 밥상을 대할 수 있다. 그러나 내륙 지방인 구미에서 이런 밥상을 마주할 줄은 몰랐다. 재빨리 지도를 찾아보니... 오호라!!! 낙동강 수계 상류 바로 아래가 구미다.
분명 나는 육개장을 주문한 것 뿐인데, 육개장 외에 12찬이 나왔단 말이다. 신기하고 재밌었다. 이 정도면 한정식집 수준인데 가격은 고작 7천원이라니 레알? 트루? 사실인가???
그러나 막상 음식에 젓가락을 대기 전 잠시 멈칫했다. 그래도 경상도 음식인데 맵고 짜기만 한 거 아닐까, 그런 추측???? 젓가락을 내려놓고 육개장부터 한 숟갈 떠먹는데... 으흠... 짠맛이 조금 강할 뿐 괜찮은 맛이다. 그럼 슬슬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하자!!!
그런데 뭐랄까... 이건... 반찬의 간이 제각각이다. 간이 강한 반찬은 짠맛이 강하다. 그렇다! 이게 경상도 음식이다! 매우 주관적이지만 전라도와 경상도의 맛의 차이를 논한다면, 전라도는 전반적으로 어우러지는 맛이다.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짜임새있고 균형있는 맛이라서다. 특히 전주음식은 단맛을 절묘히 콘트롤 해 단짠단짠, 신단신단의 연속으로 식자를 감동시킨다. 그래서 밥상 위의 것들을 아무렇게나 조합해 쌈을 싸먹어보면 무조건 맛있다.
경상도 음식은 반찬 각각이 개성있다. 그래서 대접을 달라고 부탁한 다음, 적당량을 덜어 고추장이나 참기름 양념을 취향껏 가미해 비벼 먹으면 정말 맛있다. 뭐랄까 정규 음악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자기 나름의 소리를 모아내는 브레맨 음악대 같다고나 할까? 혹은 악보없이 코드진행만 약속하고 시도하는, 재즈밴드의 즉흥 잼이라 하면 좀 더 멋진 표현이 될까?
즉, 전라도식은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게 요리한 사람의 숨은 진심을 맛보기에 즐겁고, 경상도식은 요리한 사람의 개성에 나만의 식성을 부딪혀 튜닝해 먹는 재미가 있다. 이렇게 1탕 12찬을 준다는 건 뭘 좋아하는지는 몰라도 재주껏 알아서 먹고 굶지는 말라는 투박하지만 넉넉한 인심이 담겨있는 거니까.
한편으론 이런 게 로컬의 맛을 즐기는 재미이기도 하다. 일부 전라도 맛부심에 경도된 사람은 "타 지역 음식은 먹을 게 못 된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싱겁고 슴슴한 맛으로 먹는 일부 강원도 내륙 음식은 폐기해야 하는 건가? 여튼 사견이 길었다. 각설하고...
1탕 12찬 중 인상 깊었던 건... 육개장, 석쇠 돼지불고기, 깻잎전이었다. 당연히 메인 요리인 육개장이 스트라이커인데... 저렴한 대중요리치곤 훌륭한 맛이다. 아무래도 전문점만큼의 깊은 맛은 없었지만 시장통 밥집에서 먹는 것치곤 놀라웠다. 특히 뚝배기에 내어 와 많은 양의 음식을 한참 먹는 와중에도 금새 식지 않는다. 후반전까지 지치지 않고 필드를 지배한다고나 할까?
무엇보다 강력한 건 공격형 미드필더인 석쇠구이 돼지불고기의 존재감이다. 그냥 반찬으로 내주기엔 너무나 아까울 정도로 훌륭!!! 육질도 좋고 양념도 좋고 석쇠구이 특유의 불향도 훌륭... 심지어 이거 먹으러 이 가게에 왔고, 돼지불고기의 서비스로 육개장을 준 거 아닌가 착각할 정도... 덕택에 대구 못지않게 고기에 진심인 구미임을 재발견했다.
평범해 보이는 깻잎전은 훌륭한 측면 방어를 하는 호수비수다. 방랑식객인 나의 사이드라인 속공을 간파하듯 맛의 공백을 채우고 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맛난 걸 탐하는 내게 이렇게 패배감과 굴욕을 맛보게 하다니...
무엇보다 철벽 골키퍼는 착한 가격이다. 이렇게 주고도 7천원이라고??? 그나마 최근에 1천원 올린 거란다. 3년 전엔 5천원이었다고...
여튼 이렇게 전라도식 밥상에 사로 잡혀있던 나의 편견을 깨버린 구미 전통시장에서 만난 동네맛집!! 로컬맛집으로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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