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 매니아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는 유진식당에 왔다. 너무 오래간만에 오다보니 낯설게 느껴진다. 평냉이 먹고 싶어서도 아니고, 유진식당에 와보고 싶어서도 아니고, 늦은 시각 종로통에서 용무는 마쳤는데 시장함을 견딜 수는 없고 해서 늦은 시간 뭔가 먹을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물론 좀 더 올라가면 낙원상가 포차거리도 있고, 그 위로 익선동으로 가면 더 늦은 시간까지 하는 음식점이 있지만, 무거운 짐과 힘든 여정으로 인해 여기까지가 이동한계점이었다.......는건 내 본심이 아닌 함께 온 사람에게 둘러 댄 핑계다.
사실 반대방향으로 틀어 광장시장을 가도 되고, 동대문까지 가면 더 많은 선택지가 있지만 내향형인 나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사람이 북적대는 곳에 가면 기빨리는 느낌에 심적으로 힘들어, 뭔가 맛있는 게 차려졌는데도 맛도 모른채 꾸역꾸역 먹다 나올 것 같아서다.
여튼 오랜만에 유진식당에 왔고, 혼자가 아닌 먹성 좋은 2명이기에 임의대로 3종세트를 구성해 주문했다. 일단 물냉면, 돼지수육, 녹두지짐이다. 돼지수육이 먼저 나왔고, 다음으로 녹두지짐, 물냉면은 조금 시간이 지나 나왔다.
마침 냉면은 우리의 주문이 마지막이 되어 다른 손님들에게 마지막 냉면이라며 추가 주문이 있는지를 물어물어 오더가 들어갔다. 그 때문에 가장 늦게 나왔는지도...
유진식당의 평양냉면은 육수가 진하다. 색도 진하지만, 바디감도 묵직하고, 맛도 찝지름하니 강하다. 개인적으로 장충동 평양면옥의 메밀향과 슴슴함을 선호하다보니 유진식당의 맛은 소소한 거부감이 있다.
하지만, 평양냉면은 평양냉면만의 매력이 있어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후루룩 끌어 마시게 된다. 매번 투덜대면서도 완면하고 가는 걸 보면 나도 참 까탈스럽다.
녹두지짐은 '지짐'이라고 이름붙어 있지만 사실 한 치나 되는 기름연못 속에서 부쳐, 지짐이 아닌 튀김이라고 보아도 될 듯 싶다. 이건 광장시장 빈대떡도 마찬가지고 거의 대부분의 전집들도 이리 하니, 일종의 국룰이 아닌가 한다. 빨리 조리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이게 빈대떡의 클리셰가 되어 더더욱 그렇다. '부쳤다'는 의미에 맞게 빈대떡을 내주는 곳은 내가 가본 곳 중에선 사당역 ‘종로빈대떡’ 뿐이다.
그러나 유진식당의 녹두지짐이 다른 곳과 다른 점은 식용유를 쓰지 않고 돼지기름을 쓴다는 점이다. 요즘 세대에서 돼지기름을 쓴다고 하면 삼겹살 구워먹고 불판에 남은 하얗게 붙은 지방을 생각할 지 모르는데, 라드(lard), 혹은 라드유라고 부르는 기름으로 일반 식용유보다 음식맛을 내는 데는 더욱 좋은 기름이다.
하지만, 동물성 지방이 몸에 나쁘다는 썰과 하얗게 굳는 기름에 대한 불쾌감 등으로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피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실제로 많이 사용되지 않게 된 이유는 일반 식용유가 양산되며 가격이 저렴해졌고, 라드를 많이 사용할 경우 라드가 식으면서 굳어 주방 하수구가 막히게 되기에 이런저런 이유로 사용을 안 하게 되어 버렸다는...
그런데 어쩌다 가끔 라드를 활용해 만든 빵, 볶음밥, 튀김 등을 먹을 기회가 생기는데, 표현을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묘하게 맛있다. 얼마 전 ‘샤카스바비큐’에서 먹었던 햄버거 런치도 버거 빵을 라드를 사용해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빵이 입에 착착 붙어 빵만 더 추가해 달라고 요청하고 싶었다. 다만 시간 관계상 얼른 나와야 해서 그러지 못했다.
설명이 길었는데... 어쨌든 매우 맛있었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광장시장 빈대떡보다 여기가 1.5~1.8배 정도 맛있다는! 광장시장 빈대떡이 보통 5천원인데, 유진식당 빈대떡이 9천원이니 맛의 차이도 그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마지막으로 돼지수육은 생각보다 양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3종류의 돼지부위를 맛볼 수 있다. 잡내 안 나고, 식감도 괜찮다. 아쉬운 점은 매번 소 수육 시키려다 돼지수육만 시키게 되는 통에 많은 사람들이 유진식당 소수육을 추천함에도 불구하고 여태 한 번도 못 먹어봤다. 다음에는 꼭 소수육을 먹어보자. 근데 오늘의 후기는 꽤 미식가스러운걸? 평소의 나는 먹기에 바쁜데... 기록을 남기다보니 나도 진화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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