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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3회 서울무용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수상자 성승정 감독

글렌다 박 기자 승인 2019.11.13 06:30 | 최종 수정 2019.11.30 12:08 의견 7

어려서부터 명석했던 소년에게 부모님은 그림과 피아노 등 다양한 예능을 접할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딱 하나, 무용만 빼고. 소년은 청년이 되어 서울대에 입학했고 재즈댄스동아리에 가입하며 춤에 푹 빠졌다. 청년은 그가 안무를 만들고, 지휘한 무대가 눈앞에서 실현되는 걸 볼 때면 꿈만 같았다. 사범대학을 졸업한 그는 흔히 ‘철밥통’이라 부르는 안정된 진로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청년은 알았다. 그의 소원은 춤에 있고, 무대에 있고, 관객 사이에 있다는 것을...

제3회 서울무용영화제 최우수감독상 수상자 성승정 감독


지난 3일 막을 내린 제3회 서울무용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늦었지만 축하한다. 수상을 예상했었는지 궁금하다. 지금 소감은 어떤가?

Best 10에 올라간 것도 기뻤었다. 만약 수상한다면 심사위원 특별상만 해도 감지덕지라 생각했다. 왜냐면 다른 작품들은 영화 전공자들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지거나, 예산 투입이 더 많을 거로 예측했기 때문이다. 

다만 아이디어나 집요함 같은 것들만큼은 자신이 있었는데, 특히 춤을 돋보이게 하는 카메라 조작, 구도, 편집 점 선정 등은 비교할 수 없는 독자성을 구축했다고 생각했다. 심사위원 분들께서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잘 봐주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부족하고 아쉬운 점들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상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는데, 오히려 제작에 참여했던 크루 인원이나, 영화제를 보러온 동료들이 ‘‘왱’이 뭔가 될 것 같다’라고 얘기해줬었다. 개막식 이후 부모님은 그새 영화제에 관해 보도된 기사를 찾아보시더니, ‘기사에서 표현한 ’발칙하고 경쾌한 것‘은 너희 작품을 염두에 둔 표현이 아니겠냐’면서 기대를 불어넣으셨다. 나는 그냥 이들이 팔이 안으로 굽어서 하는 말일 것이라고 여기고 애써 기대를 눌렀는데, 수상 후에는 함께 기뻐하면서도 ‘그럴 줄 알았다’라는 반응이 많았다.

서울대 재즈동아리 ‘몰핀’ 동료들이 준비한 축하 자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시상식 때 수상자 발표 순간, 입이 ‘쩍’ 벌어진 것을 놀리듯 흉내 내면서 다 같은 표정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시상식에서는 경황이 없어 못다 한 말을 이 지면을 빌려 하고 싶다. 나를 믿고 참여해준 작곡가와 무용수 친구들에게 감사하고, 마음만큼은 함께 춤춰주시는 부모님과 형에게 특히 감사하다. 이들의 노고에 대해 좋은 결과로 보답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졸업했지만 여전히 직간접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울대 재즈댄스동아리 '몰핀'.
멤버들이 수상 발표 당시 성감독의 표정을 흉내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직 작품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독자들을 위해 '최우수 감독상' 수상작인 댄스 필름 '왱'에 대해 소개를 해달라.

이 작품은 작년 어느 여름날 방 안에서 우연히 친구와 모기를 잡으면서 시작됐다. 모기를 잡기 위해 손바닥으로 ‘짝짝’ 소리를 내는 것, ‘엉거주춤‘ 집중한 듯한 자세가 재미있었고, 이런 것들을 모두 무용 동작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목은 처음부터 ‘왱’이었는데 모기가 날아다니는 소리를 나타냈기도 했지만, 인트로 화면의 갸우뚱한 무용수의 얼굴도 당장 ‘왱?’이라 말할 것 같은 것이 바로 머리에 스치고 지나갔다. 러닝타임은 총 6분 37초이고 다섯 명의 무용수가 순차적으로 주연을 맡으면서 진행된다.

스스로 어렵다고 느끼면서도 가장 즐기는 작업 방식은 무용수 개인의 개성을 담아내는 것인데, 개인에게 어떤 역할이 어울릴지 맞히는 것이다. 무용수의 역량을 알아보고, 끄집어낼 수 있는 능력 역시 나의 장점 중 하나라 생각한다.

이번 작업에서는 모기 잡는 동작을 안무로 해석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개성의 반영’을 중시했고, 같은 맥락에서 주제의 확장성을 크게 염두에 뒀다. 현실에서 똑같이 모기를 잡는다 해도 어떤 이는 쉽게 잡지만, 어떤 이는 온 방 안을 헤매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맨날 자기만 물린다’라고 억울해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마다 모기에 관한 다른 대처와 사고방식을 보이는데, 이것이 다름 아닌 ‘군상’이었고 각각의 개성을 여기에서 찾았다.

또한, 중첩된 목표가 주어지면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하여, 나중에는 별안간 뒤엉켜 다투는 것으로 설정했는데, 여기서도 누군가는 경쟁에 몰입하고 누군가는 이를 즐기며 누군가는 이탈하고자 한다는 것에서 캐릭터를 달리 잡았다.

‘왱’의 후반부에는 사람들이 더는 모기에는 관심이 없고 경쟁상황 자체에 몰입하는데, 누군가가 경쟁에서 빠져나감으로 분위기는 싸늘해진다. 이는 상황 자체에 과몰입하던 사람들이 일탈한 사람을 제2의 목표로 삼는 순간이다.

정작, ‘경쟁의 종식은 아무도 예상 못 한 누군가가 맺을 수도 있다’라는 ‘현실 인식’에서, 가장 늦게 참여하고, 그저 즐기던 사람이 화면의 가장 바깥쪽에서 모기를 잡아버림으로써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게끔 반전을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러한 무용수 각자의 개성의 발현과 모기에게서의 주제 확장이 좋은 평가를 받은 지점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를 잘 소화하고 표현해준 무용수들의 역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무용제 수상작 '왱(zzz)'의 제작에 참여한 댄스크루 '선인장베게'

대학 입학 전까지 무용에 관한 경력이 전혀 없는데, 어떻게 무용에 입문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현재의 작업 세계관을 구축했는지 궁금하다.

워낙 공부만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내왔기 때문에 대학에 입학하고 나자,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시도를 하고 싶었다. 그런 계기로 입학했던 첫 학기인 2011년, 서울대학교 재즈댄스동아리 ‘몰핀’에 가입했다. 당시 동아리 담당이셨던 김민지 선생님은 현대무용 전공에 발레 기본기가 강한 분이셨고, 안 되면 될 때까지 반복해서 학습시키셨는데, 개인적으로 나의 성향과 잘 맞는다고 느꼈다.

처음 춤을 췄던 곳. 서울대학교 중앙 춤 동아리 '몰핀'에서의 첫 안무. (2014년 3월)

사실 당시엔 무용을 취미로만 하게 될 거라 생각했으나, 스스로 춤을 추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고, 안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더 재미있었다. 학기마다 성공적으로 공연을 올리는 나의 적성을 발견하고, 보다 전문적으로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민 끝에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처음 춤을 배운 것이 재즈댄스였기에 지금도 재즈가 가미된 동작이나 연극적 요소들이 작품에 스며들어있다. 현재도 나의 무용 인생 초반에 지대한 영향을 주신 장연실 선생님과 김희정 선생님을 통해 지금도 재즈댄스를 계속 접하고 있다.

서울대 재학 중 학부 내 공연 관련 학부가 없어서 영상매체예술을 복수전공을 하게 되었다. 당시엔 막연히 공연에 쓸 만한 좋은 재료로서 영상물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미디어아트 자체만으로도 배울 것들이 정말 많았고, 미디어 설치나 인터렉티브, 퍼포먼스 등 학부 때 여러 가지 시도를 거치면서, 지금의 작업 스타일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는 ‘댄스필름’ 혹은 ‘스크린댄스’라고 부르는 춤을 담은 싱글채널 비디오를 많이 제작하고 있다.

서울대 영상매체예술전공의 졸업전시. 미디어설치이지만 내용은 춤언어이다. <초급댄스어1>의 사용례인 <마지막 문장> - 선인장베개의 독자적 움직임 언어인 ‘댄스어(빨리 발음하면 댄서(dancer)’는 향후에도 여러 형태로 작업화될 예정이다. (2018년 12월)

사범대학 출신으로 복수전공인 영상매체예술 또한 그렇고 학부 전공이 지금 하는 일과는 전혀 다르다. 안정된 교사(공무원)의 길을 버리고 한예종 진학을 선택했을 때, 성공이 보장되지 않은 분야의 리스크와 본인의 의지를 떠나, 무엇보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을 것 같다.

부모님은 처음엔 나를 설득하시려 하셨지만, 내가 뜻이 확고했고, 오히려 내가 ‘다들 공무원 하려고 하면 예술은 누가 하냐’며 ‘무용 예술이야말로 미래의 인류가 분명 찾게 될 분야’라고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들먹이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점점 늘어가는 상장들,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교내 축제 때 기타 공연과, 졸업식 때는 성적우수자로 표창을 받았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 아마 교양을 키우라는 의도를 위해서였겠지만, 그림, 피아노 등 다양한 예능을 접하게 해주셨는데 어머니는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물론, 무용은 시킨 적이 없었으니, ‘남들은 어릴 때부터 했는데 너는 아니지 않냐’고도 하셨다. 하지만, 나는 나름대로 몸을 정교하게 쓸 때의 감각을 어느 정도 경험한 뒤였으니, 분명 ‘다른 배경에서 오는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대치하며 대학원 입시에 도전했다.

다만, 대학원 입시는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치르겠다는 의지가 있었는데, 무엇보다 반대하시는 부모님 손 벌리기도 민망했고, 그렇다고 입시 학원에 다니자니 벌이가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여러 워크샵과 특강, 수업을 찾아다녔고, 검색도 많이 하고, 혼자서 연습도 정말 많이 했다. 그 결과 수석 입학을 했고, 지금은 이렇게 무용영화제와 같은 여러 성과가 있어서인지 부모님도 믿어주시며 다시 이전처럼 아낌없이 지원해주신다.

서울대 졸업식 당시 삶에서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시는 부모님과 함께.

학부 전공에 관해 설명하자면, 사회교육과 학부 4년 내내 배운 것이 민주주의이다. 나는 내 팀이 권위주의적으로 운영되는 것이나 각자의 의사에 반해 작품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또한, 미술 작업과 비교하면 무용 작업은 그 과정 자체가 대단히 사회적인 행위들로 점철돼있어다. 미술에서 재료를 구입하는 단계로 비유하면, 무용은 시작단계부터 사람을 구해야 한다.

나는 학부과정에서 얻고, 쌓은 인문·사회학적 감수성이 절대로 무용지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사범대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교생실습과 같은 교육은 안무자가 연습을 진행할 때 요구되는 리더십과 매우 닮았다.

이번엔 무용이 아닌 미술에 대해 잠깐 이야기 해보자. 서울대에서 사회교육과 미술을 복수 전공하였는데 문과와 예체능계열이다. 미술은 대학 입학 이후에 수상도 두 번이나 하였다. 언제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나?

서울대학교 영상매체예술은 전공 진입은 자유롭지만, 졸업전시를 하며 심사가 엄격하다. 주로 미대 전공생도 많이 오지만 평소에 미술에 관심이 많거나 취미로 그림을 그리던 친구들이 많이 온다.

나도 어릴 때 그림에 관심이 많았고 초중고교 시절에도 대외활동으로 그림 관련한 행사를 주로 나갔다. 아파트 동사무소에 개설된 미술 수업을 종종 나갔으나 오래 하진 못했고 주로 혼자 많이 그렸다. 흔히 말하는 미술 ‘실기’라 할 정도의 기본기나 테크닉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되는대로 머릿속의 이미지를 끄집어내는 것은 오래전부터 한 셈이다.

학부 재학 당시 출전한 서울메트로 미술관 미술대회 입선작
학부 재학 당시 출전한 문학의집 주최 '그림으로 보는 한국 문학' 입선작

그동안 많은 안무 경력을 쌓았다. 본인만의 무용과 특별한 안무 스타일이 있는가?

패턴화된 움직임과 반복을 좋아하는 편이다. 춤은 철저한 시간예술이라서 한 번의 동작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 두 번의 반복과 세 번의 반복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동작이나 ‘non-verbal language’, 표정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춤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패턴을 활용하면 박자 분배나 군무를 만드는 것이 매우 수월해진다.

이번, 서울무용영화제의 수상작인 ‘왱(zzz)’의 군무는 3가지 패턴의 움직임의 순서를 5명이 세 개의 패턴 순서에 맞추어, 그 경우의 수(3!)는 6가지이므로 반드시 2명 혹은 3명이 동시에 같은 패턴을 추게 된다. 각각의 패턴에도 귓가의 모기를 쫓는 동작, 모기향을 뿌리고 떨어진 모기를 밟는 동작 등이 형상화돼있다.

안무도 하고 안무한 작품에 직접 무대에 오르고, 촬영, 편집 등 영상제작도 하는 등 다양한 직업을 수행한다. 본인 자체를 무엇이라고 정의하는지 궁금하다.

굳이 수많은 직업 중 하나의 틀 안에 나를 묶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분야를 진득하게 파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생각했고, 그런 분들을 동경해왔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이제는 꼭 한 길만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호기심이 많은 나의 스타일과 맞지 않고, 100세 시대에 하나만 파기에는 삶이 너무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대신, ‘넓고 얕게’를 10년을 하면 얕았던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주의다. 또한, 다양한 분야 간 협업이 요구되는 지금 시대에는 오히려 소위 말하는 ‘융합형’ 인간이 현장에서 소통이 더 빠른 것 같다. 아쉽게도, 기회비용이라 한다면 워라벨(Work-life balance)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점인 것 같다.

성승정 감독은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박성춘 교수를 중심으로 꾸려진 ‘춘 앤 춤’의 일원으로 중국 뤼순을 방문해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댄스필름 <그날이 오면>을 제작했다. (2018년 8월)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댄스크루 ‘선인장베개’는 앞으로도 계속 댄스필름, 공연,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활동할 계획이다. 내년 2월 초~중순 경 아트스페이스 ‘오시선(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로6길 26)’에서 열린다. 주제는 ‘선인장베개’가 만든 몸짓 언어 ‘댄스어’에 관한 내용. ‘왱’을 비롯해 ‘댄스어’ 또한 궁극적으로는 읽히는 춤,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춤, 나아가 소통하는 춤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개인적인 바람은 우리의 쉽고 유머러스한 작품들을 통해 사람들이 무용 자체에 대해 더 친숙함을 느끼고 다른 무용영화, 공연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모든 분께 감사하다. 앞으로의 활동에 많은 관심 부탁한다.

안무가, 무용가, 영상제작가, 1인 크리에이터인 성승정은...
1992년 4월 27일 생
대전서원초-대전삼천중-충남고-서울대 사범대학 사회교육학/미술대학 영상매체예술 복수전공-한예종 무용원 창작과 석사과정 수석입학 및 재학 중
2011~2018 서울대 중앙 재즈댄스 동아리 ‘몰핀’ 안무가
2017~ 댄스필름&퍼포먼스팀 ‘선인장베게’(cactuspillow) 비디오그래퍼
2018 Cactuspillow x Osisun-아트스페이스 ‘Osisun’ 개막공연 ‘오지선다’ 안무
2019 무용가 김백봉 아카이브전 ‘2019 춤의 얼굴’ 영상감독
2019 선인장베게 댄스필름 ‘왱’ 서울무용영화제 최우수감독상 수상

성승정 개인 유튜브: www.youtube.com/channel/UCJgcSjYps-4XMEK-iN4su9g
선인장베개 인스타그램 : @cactus_pillow
선인장베개 유튜브 : www.youtube.com/channel/UCUkjbHMcdQ5SKX4EGo7qn0A
선인장베개 페이스북 : www.facebook.com/cactuspillowdance

사진 제공: 성승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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