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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고현학] 하지의 고현학

방랑식객 진지한 승인 2024.06.20 14:05 | 최종 수정 2024.06.26 10:49 의견 0

고현학(考現學)이란 '현대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유행의 변천을 조직적,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현대의 참된 모습을 규명하려는 학문'을 의미합니다. [일상의 고현학]은 일상생활 속에 벌어지는 사안 하나를 주제로, 언제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펼쳐보는 이색코너입니다. 인터넷 검색 정보를 중심으로 정리한 넓고 얇은 내용이지만, 일상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지식의 층위를 높여가 보자구요!

스웨덴 미드소마 축제에 등장하는 메이폴 기둥 (출처: 픽사베이)


요즘은 ‘하지’라고 하면 하지정맥류를 떠올리시는 분이 많은데요. 농경문화가 중요했던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걸 챙기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夏至)는 여름 ‘하(夏)’, 이를 ‘지(至)’로 ‘여름에 닿았다’는 뜻을 지닌 24절기 중 하나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북반구에서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밤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을 말하는데요. 반대로 밤의 길이가 가장 길고,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을 동지(冬至)라고 합니다. 마침 이번 주 금요일, 6월 21일이 하지입니다. 오늘은 하지의 고현학입니다.

1. 대체 낮이 얼마나 길까?

낮의 길이를 알려변 해가 뜨는 시각과 지는 시각을 알면 되겠죠? 다행히 한국천문연구원 천문우주지식정보 홈페이지에 가시면 알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 서울시청을 기준으로 이번 하지에 해 뜨는 시각은 새벽 5시 11분, 해가 지는 시각은 저녁 7시 56분, 낮의 길이가 무려 14시간 45분이나 되는데요... 정말 길죠?

그런데 낮의 길이는 위도, 즉 남북의 위치에 따라 달라집니다. 남한 기준으로 가장 북쪽이라 볼 수 있는 강원도 고성군의 경우, 서울보다 9분 빠른 새벽 5시 2분에 해가 뜨고, 3분 빠른 저녁 7시 53분에 해가 집니다. 계산해보면 14시간 51분으로 서울보다 6분 더 오랜 시간 해가 떠 있다는 겁니다.

2. 그럼 북쪽에 있는 나라일수록 낮이 더 길어지는 걸까?

우리보다 한참 위쪽에 있는 유럽 도시랑 비교해보면 큰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영국의 수도 런던이 북위 51.5도에 있습니다. 서울시청의 위도는 북위 37.3358도니까, 런던은 대략 14도 정도 북쪽에 있는 도시입니다. 런던의 경우 하지 날 새벽 4시 40분 경 해가 떠서 밤 9시 20분 경 해가 진다고 합니다. 하루 중 낮의 시간이 16시간 40분이나 된다는 건데, 상상이 되시나요?

런던보다 더 높은 위도에 있는 북유럽 도시들은 이보다 해가 더 빨리 뜨고 밤 10시나 11시에 해가 지기도 하는데, 위도가 높아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현상을 백야현상이라고 하는데, 보다 정확히는 해가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걸 백야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유럽 사람들은 하지날을 기념하는 특별한 풍습이 많습니다.

3. 런던 이야기 나온 김에... 영국에선 뭘 하나요?

혹시 영국의 고대 유적 스톤헨지를 아시나요? 직접 가보시지는 못했어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신 분들 많으실 거에요. 거대한 비석 모양의 바위가 원을 그리며 세워져 있는 신기한 모습을 기억하실 겁니다. 신석기 시대의 신전으로 추측하고 있는데, 이 스톤헨지가 하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스톤헨지는 바깥쪽 원을 셰일 서클이라 부르는데, 이 셰일 서클 바깥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힐스톤(발뒤꿈치 돌)이라 불리는 돌이 홀로 서 있습니다. 이 힐스톤이 왜 있을까 관찰해보니, 하짓날 스톤헨지의 ‘힐스톤’이 태양과 정확히 일직선을 이루는 걸 발견했습니다. 이게 매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짓날이 되면 태양이 힐스톤을 통과하여 스톤헨지의 중심 중앙제단을 비추는데, 중앙제단에는 슬로터스톤(도살석; 屠殺石)이라 불리는 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로 추정해 봤을 때 하짓날 종교의식이 거행되었을 거라고 볼 수 있는 거죠.

현대에 이르러서는 하짓날 수 많은 사람들이 스톤헨지에서 일출을 보고, 춤과 노래를 즐기는 축제가 열립니다. 요즘은 페스티벌(festival)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공동체가 함께 즐기는 단합행사라는 의미로 변화되었는데, 원래 ‘축제(祝祭)’라는 표현을 많이 썼죠? 축제라는 단어에 ‘제사 제(祭)’자가 들어간다는 점으로 과거를 추측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또 영국이 자랑하는 국보급 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로맨틱 코미디가 있어요. 이 작품이 하짓날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영국 곳곳에서 셰익스피어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합니다.

4. 더 북쪽에 있는 나라에서는 하짓날 뭐하고 놀까요?

스웨덴에서는 미드소마라고 하는 하지 축제가 스웨덴 전역에서 열립니다. 그도 그럴게 스웨덴에서 하지는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가장 큰 명절이며, 무려 국가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ㅍ세계의 하지 축제 중 가장 규모가 큰 축제가 벌어집니다.

그런데 스웨덴의 하지 축제는 조금 전 설명 드린 영국의 축제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선 크리스마스 다음 가는 축제가 된 것부터 이유가 있습니다. 스웨덴 하지 축제는 사실 예수의 사촌이기도 한 ‘세례 요한’의 탄생일 축제에서 비롯됐습니다. 예수의 탄생일인 크리스마스가 동지 무렵이고, 세례 요한의 탄생일이 하지 무렵이기 때문에 예수와 세례 요한의 탄생일이 각각 동지와 하지를 기념하는 의미가 된 거예요. 스웨덴 사람들은 이날 절인 청어와 삶은 감자 등 전통 음식을 먹고, 메이폴(Maypole)이라는 십자가 형상에 고리와 끈을 연결한 나무 기둥을 세워놓고, 기둥 주변을 돌며 노래와 춤을 즐긴다고 합니다.

또 러시아에서는 백야 축제가 열립니다. 러시아 제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긴 겨울이 끝난 것을 기념하는 축제를 개최하는데, 굉장히 문화적인 행사가 많다고 해요. 백야 축제 기간에는 오페라와 음악 공연이 펼쳐지고, ‘스칼렛 항해(Scarlet Sails)’라는, 주홍빛 돛을 단 배가 강을 항해하는 이벤트가 진행되는데, 동시에 강 위로 아름다운 불꽃놀이가 펼쳐진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장관이라 수 많은 관광객들이 모인다고 합니다.

5. 우리 나라의 하지 풍습에는 뭐가 있을까? (속담으로 알아보는 하지 풍습)

하지와 농사의 관련성은 속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하짓날에 남쪽이 적색을 띠면 나라가 태평하고 곡식이 풍성하다.

우리 나라는 농사를 중요시 여겨 하지가 되면 기우제를 지냈습니다.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이다보니 일조량과 비의 양이 그 해 농사를 결정짓는데 가장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예로부터 비가 오지 않으면 임금의 덕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기우제를 지내는 일은 하지에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답니다.

- 하지가 지나면 오전에 심은 모와 오후에 심은 모가 다르다

과거에는 농사를 시작하는 일 그리고 못자리를 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는데요. 전삼일, 후삼일이라고 하여 모심기의 적기를 놓치면 그 해의 농사를 망친다는 생각이 가장 자리를 많이 잡고 있었습니다. 모심기가 늦어지지 않도록 서둘러 모내기를 해야 한다는 속담입니다.

- 하지가 지나면 구름장마다 비가 내린다

하지에 지내는 풍습으로는 기우제가 있지만 장마가 찾아오는 것도 이 시기입니다. 단오를 전후로 하여 모심기를 시작하는데, 하지 무렵에는 끝을 내야한다는 중요성을 강조하는 속담입니다. 하지가 지나가면 여름이 시작되어 장마가 시작되기 때문에 모심기의 때를 놓치면 구름이 지나가기만 해도 비가 내린다는 뜻으로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모내기를 끝내야 한다는 거죠. 하지가 지나면 같은 날에 심은 모도 햇볕의 일조량이 달라지기때문에 오후에 심은 모가 차이날 정도로 모심기의 적기를 놓치지 않고 모내기를 하라는 당부가 담긴 속담입니다.

- 하지가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산다

모내기가 끝난 논에 물이 마르지 않도록 계속 물을 대야 한다는 뜻이랍니다. 또 햇감자 수확, 메밀 파종, 고추밭매기, 그루갈이용 늦콩 심기, 병충해 방재, 누에치기 등을 모두 이 시기에 한답니다.

-하짓날은 감자 캐먹는 날이고 보리 환갑이다

우선 보리 환갑부터 말씀드리면, 하지가 지나면 보리가 마르고 알이 잘 배지 않는다고 해서 생겨난 속담이라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지금과 달리 평균 수명이 짧았잖아요? 그래서 60세가 되는 환갑날 잔치를 열었을 정도니까요. 또 한편으로는 ‘감자 환갑’이라고도 했습니다. 이건 햇감자 재배와 수확이랑 관련이 있는 건데요. 햇감자는 4월 초에 심어 6월 중순경에 수확합니다. 그래서 햇감자를 ‘하지 감자’라고도 하는 거죠. 바꿔 말해 하지가 지나면 감자 싹이 죽기 때문에 ‘감자 환갑’, ‘감자 캐먹는 날’이라 부른 겁니다.

6. 그럼 하지에는 감자를 먹어야 겠군요?

실제로 강원도 평창지역에선 하지에 밥을 지을 때 감자를 넣어서 짓는데, 그렇게 해야 그해 감자농사가 풍년이 든다는 말이 구전되고 있습니다. 또 그래서 하짓날에는 '감자천신한다'라고 하며 감자를 캐어다가 감자떡을 해먹거나 전을 부쳐먹는 풍습이 있습니다.

‘천신(薦新)’이라는 말은 새로 농사지은 과일이나 곡식을 먼저 사직(社稷)이나 조상에게 올리는(薦) 의식을 뜻하는데요... 감자천신은 하짓날 조상이나 사직에 감자를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감자천신 말고도 밀 천신, 배 천신, 햇밥천신, 참외 천신, 청어 천신, 조기 천신 등 지역 특산물 별로 여러 가지가 있다는 점 참고하세요.

이런 이야기를 종합하면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하지 무렵 감자를 즐겨 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감자의 수확시기가 하지 무렵이라 이때가 감자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기도 하지만, 건강을 위한 조상님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구석도 있어요.

감자는 비타민C와 칼륨이 풍부해 피로 해소에 좋고, 열을 식혀주는 성질이 있어 우리 몸의 자연 치유력을 높여준다고 합니다. 탄수화물만 있는 게 아니라 식이섬유도 풍부해 여름철 든든한 건강식으로도 좋은데요. 풍부한 포만감에 비해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 음식으로도 좋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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