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서울 철거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동네, 옹기종기 모인 집들 사이로 이웃에 대한 정이 피어오르는 동네, 성남시 태평동에서 동네한바퀴 김영철의 네 번째 여정이 시작된다. (KBS 소개글)
사람 사는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동네 기행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4번째 장소는 신도시 분당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남, 그중에서 과거의 흔적을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태평동, 오야동이었다. 성남은 조선시대 도성을 수비하기 위해 축조한 남한산성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고 해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고 태평동과 오야동은 서울에서 이주한 이들이 옮겨와 만들어진 대한민국 최초의 신도시였다. 즉, 과거부터 서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동네였다.
동네 한 바퀴 여정의 시작은 고려 시대로 건립 연도가 거슬러 올라가는 지역의 오래된 사찰 망경암이었다. 이곳은 과거 조선시대 초까지 왕들의 국가의 안정과 번영을 빌었을 만큼 유서 깊은 사찰이고 아직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은 서울의 전경을 살필 수 있을 만큼의 멋진 풍경이 일품이었다. 과거 왕들의 서울을 내려다보면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졌던 것으로 보인다.
망경암에서 시작된 여정은 태평동의 골목으로 이어졌다. 태평동의 골목은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됐다. 아래에서 오르막길을 바라보면 하늘에 길의 끝이 맞닿아 보였다. 태평동은 지평선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물론, 이 길을 오르내리는 이들에게는 힘겨움이 매일 같이 반복된다. 다만,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가면서 하늘과 가까워질 수 있어 그 고단함이 조금을 덜해졌을지도 모른다.
지평선 골목을 오가는 와중에 앵무새 2마리가 주인과 함께 가족처럼 지내는 세탁소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세탁소의 앵무새는 새장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세탁소 곳곳을 오가며 세탁소를 넓은 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앵무새들은 홀로 세탁소 일을 하면서 느끼는 고단함을 덜어주는 친구였다. 또한, 동네의 명물로 주민들까지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덕분에 지평선 골목의 세탁소는 동네의 사랑방같이 이웃들이 앵무새를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작은 소통이 공간이었다.
세탁소를 지나 골목 깊숙이 접어들자 건물 옥상에서 김장을 하는 이들과 만났다. 동네 이웃들과 함께 하는 김장에 참여했다. 이제는 김장 김치를 직접 해먹는 일이 힘들어지는 현실이지만, 이곳 주민들은 김장철이면 모여 김장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랜 세월 이 동네에 함께 살면서 정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 마음이 모여 귀찮고 힘든 김장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김장을 하면서 태평동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태평동은 50여 년 전 서울지역 철거민들의 이주촌으로 그 역사가 시작됐다. 산비탈에 지정해준 20평 정도의 공간에 이주민들은 산을 개간하여 천막을 세워 마을을 형성했다. 이후 이 천막은 판자촌이 됐고 지금의 벽돌집으로 그 모습이 변했다.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게 된 이주민들이지만, 초창기 이곳은 도시 기반 시절이 전무했고 모든 것이 불편했다. 여름이면 장마 피해도 극심했다.
하지만 이곳의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가꾸고 정이 넘치는 동네로 발전시켰다. 정원하나 없는 공간에 집을 지었지만, 동네 주민들을 건물 옥상을 정원, 텃밭 등으로 활용하며 새로운 공간으로 창출했다. 지금도 주민들을 옥상에서 빨래를 널면서 안부를 묻거나 주민들의 모임을 하면서 서로의 마음과 따뜻한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파트가 보편화되면서 이웃 주민들의 삶에 무관심해진 보통의 일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다시 동네 골목을 벗어난 여정은 42년 한 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솜틀집을 거쳐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태평동 중앙시장, 그 안에서 옛날 방식 그대로의 팥죽을 판매하는 가게로 이어지며 사람 사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새로운 것이 최선인 것으로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가게들은 그것만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으 일깨워주었다.
태평동에서의 발걸음은 100년 한옥이 자리한 성남의 오야동과 연결됐다. 오야동은 예로부터 오동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과거 경주 이씨 집성촌으로서 역사와 전통을 함께 품에 안고 있었다. 현대식 건물 사이로 자리한 한옥들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100년이 넘은 한옥은 일상에서 느끼기 힘든 독특함이 있었다. 이 한옥은 전통찻집을 운영하면서 외부인들에게 개방되어 있는데 이곳을 찾는 이들은 예전 방식 그대로의 전통차와 함께 한옥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오야동에서 느끼는 역사의 흔적 또 한 가지는 지금은 그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오야동 공소, 즉, 신부님이 상주하지 않는 천주교 성당이었다. 오야동 공소는 초창기 우리나라 천주교의 형태를 보여주는 소중한 역사의 장소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신자가 10여 명 남짓이고 그들 대부분도 노년층으로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질 운명에 놓여있다. 낡고 오래된 것을 새롭게 바꾸는 것이 미덕이었던 산업화 시대를 거치고도 유지됐던 오야동 공소가 그 원형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오야동 공소는 너무나 소중하게 다가왔다.
오야동에서 태평동으로 다시 옮겨온 여정은 45년간 동네 주민들과 함께한 이발관, 동네 어르신들의 장수 사진을 무려로 촬영하면서 동네 한 편에 자리한 사진관으로 이어졌다. 이발관은 세월의 흔적과 함께 길양이들의 안식처로 사람과 동물이 교감하는 장소였고 사진관은 젊은 사진가가 오래된 동네의 모습에서 영감받아 작품 활동을 하위 위해 만들었지만, 그 한편에서는 동네 주민들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또 다른 사랑방이었다. 사람과 동물, 세대 간의 차이를 넘어선 소통의 장소 2곳은 태평동의 또 다른 명소였다.
이렇게 태평동과 오야동에서 만난 풍경, 사람들은 과거 힘들었던 시대의 애환과 그 과정을 거쳐 마을과 도시를 일군 의지, 가난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까지 긍정의 에너지가 가득했다. 아울러 물질의 풍족함이 행복의 절대 조건이 아님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살갑다 지평선길 - 성남 태평 / 오야동]
대한민국 최초 신도시인 성남. 성남하면 분당과 판교를 떠올리지만, 신도시 성남에서 이주민들이 최초로 정착한 곳은 태평동이 있는 수정구 일대였다. 1970년대 산을 깎아 만든 가파른 부지에 사람들은 새 터전을 일구고, 판자촌 부락을 조성했다. ‘신랑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살았다’던 그들은 20평짜리 주택들을 나란히 나란히, 바둑판 모양으로 세웠다. 50년 세월이 흘러 신도시는 오래된 원도심이 됐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는 길들은 하늘과 맞닿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지평선길’이란 별명도 얻었다.
집에 마당 한 평 들여놓을 공간이 없어, 옥상을 마당과 정원으로 만든 사람들. 옥상에서 품앗이 김장을 하던 주민들이 동네 탐험을 하던 김영철을 초대한다. 번갈아가며 김장을 돕는 공동체 문화가 살아있는 옥상에서 김영철은 소매를 걷고 김장을 돕는다. 앵무새 두 마리와 함께 일하는 세탁소 여주인부터 길냥이들을 보살피는 이색 이발사까지 유쾌하고 신기한 태평동 사람들. 동네를 걷다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김영철은 따뜻하고 인정 넘치는 태평동의 매력에 빠진다.
수십년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솜틀집에 이끌리듯 들어간 김영철. 친정어머니 따라 시작한 일이 벌써 올해로 42년이 됐다는 솜틀집 아주머니와 그 시절 집 반 채 값을 주고 산 솜틀기계를 분신처럼 여기며 청춘을 바쳤다는 솜틀 아저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바쁜 일상에도 틈틈이 글을 써서 벽에 걸어 놓은 솜틀집 아주머니는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태평동 시인이다. 아주머니의 시를 읽고 가슴 뭉클해진 김영철이 솜틀집 낡은 책상에 앉아 따뜻한 시 한 편을 써서 선물한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낡은 건물에 3면이 창문으로 되어있는 아담한 사진관. 사진관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김영철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특별한 사진관에는 동네 어르신들의 장수사진을 찍어주고,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채집하는 젊은 사진작가가 있다.
그녀의 밝은 미소와 살가운 인사는 태평동 어르신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사진관은 순식간에 동네 사랑방이 된다. 동네의 어제를 기록하고 오늘을 담아내는 이 특별한 사진관에서 김영철은 일일 사진가가 되어 어르신들의 사진을 찍어준다.
지난 50년간 격변의 시기를 겪은 성남시지만, 100년 세월을 간직한 곳이 있다. 오동나무가 많았다는 동네, 오야동. 마을 곳곳 오래된 한옥들이 있는데, 400년 된 터에 90년 전에 지어진 유서 깊은 한옥이 압권이다. 15대째 이곳에 살고 있는 한옥의 주인은 한옥을 지킬 방법을 고민하다 카페로 개방해서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김영철은 이곳에서 차를 마시며 오야동의 고요한 정취를 느낀다. 그리고 건너편에는 120여년의 세월을 간직한 아담한 ‘공소’가 우뚝 서있다. 신부님이 상주하지 않아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 예배를 드리는 공소는 신앙의 중심이자 마을의 구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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