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의정부 가능역 앞 골목에 「아국오국」이라는 작은 식당이 문을 열었다. ‘아국오국’은 ‘아침 국’, ‘오후 국’을 부르기 좋게 두 글자씩 따서 만든 이름으로, 이 가게의 메뉴 이름이기도 하다. 아국 3천 원, 오국 5천 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가능역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과 인근 주민들에게 일상의 한 끼를 책임지는 공간으로 입소문 나고 있다.
◆한 달만의 창업 비결? 마음이 시켜서
“방학 중 급식카드를 써야 하는 아이들이 속상해한다는 글을 보고 시작했어요. 자립심이 커가는 사춘기라 남에게 동정받는 것을 싫어하잖아요. ‘그냥 맛있는 국 하나만 있어도 아이들 한 끼는 될 텐데’ 하는 생각이었죠.”
식당 창업을 결심한 건 올해 7월 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방학 중 급식카드를 사용해야 하는 아이들의 사연을 접하면서다. 방학 중이라 학교 급식을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루 9천 원이라는 급식카드 한도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아이들의 현실과 딱한 사정을 알게 되었다. 급식카드를 쓰는 것이 남들에게 알려질까 봐 망설이는 십대들의 마음을 알게 되며, 이들을 위한 식당을 시작해야겠다 생각하게 됐다.
“당장 조달할 수 있는 천만 원으로 시작해보려 했어요. 시작은 버스정류장 앞에 월세 35만 원이고 나온 작은 가게를 발견하면서부터였죠. 그런데 지인 한 분이 ‘이곳은 죽어있는 상권’이라며 만류하셨어요. 차라리 역 근처로 가라고 추천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지금의 가능역 앞자리를 찾게 됐죠.”
신기하게도 창업을 결심한 날부터 오픈까지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부동산 계약부터 시작해 사업자등록, 자금확보, 위생 허가, 주방 공사, 집기와 비품, 식기의 구매 등 모든 것이 20일 만에 숨 가쁘게 진행됐다. 남들이 보기엔 무모해 보일 정도의 빠른 결정과 속도였지만, 결코 즉흥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단지 지금과 같은 F&B 비즈니스만 처음일 뿐이었다.
김지연 사장 자신이 청소년기부터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자립을 위해 노력했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직장 생활을 하며 학교를 다니고, 취업과 창업 등을 반복하며 20여 년간 다양한 비즈니스를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어느 타이밍에 시작하고, 어느 타이밍에 물러나야 할지, 생각과 판단보다 본능이 앞서는 것처럼 느낄 정도가 되었다. 그간의 업력은 김 사장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다양한 비즈니스 인맥과 네트워크로 입증된다. 신속한 출점이 가능했던 것도 인맥들의 도움이 한몫했다.
◆왜 3천 원이어야 하는가?
지금이 바로 「아국오국」을 시작할 때고, 지금 시작해야 원래의 뜻을 이룰 수 있기에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점포를 구했고, 점포가 정해지자마자 본격적인 창업 프로세스를 전개했다.
자신의 결의를 단단히 하기 위해 SNS에 창업 과정을 하나하나 소개하는 과정 속에 외식업계 출신이라는 누군가가 “3천 원, 5천 원이라는 가격으로는 점포가 유지될 수 없다”고 참견하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선 자신 있었기 때문이고, 이 가격을 지켜내야 하는 건 가게가 존재하는 목적이자 이 가게를 찾아올 청소년들을 위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일 나가셔서 아침, 점심을 제대로 챙기기 어렵더라도 급식카드 9천 원 한도 내에서 아침과 점심 두 끼를 8천 원에 해결할 수 있다. 형편이 어려운 한부모가정이나 조손가정 같은 경우, 3천 원짜리 아국을 3개 포장해 가면 급식카드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 이런 김 사장의 마음은 포장 용기의 크기에서도 드러난다. 1인분을 구매하더라도 1.5인분 이상 넉넉하게 담기기 때문에, 3개를 사 가면 5인분 분량이 된다. 식구가 적다면 두 끼도 먹을 만큼 충분한 양이다.
“장기간 단체 식사를 제공해 본 경험이 있어서 겁나지 않았어요. 제주도에서 트레킹 캠프를 운영한 적도 있었는데 때 제법 많은 분들이 참여하셔서 매일 단체 식사를 준비해야 했어요. 게다가 캠프에 오시는 분들이 연세가 있는 편이셔서 한식을 선호하셨거든요. 국은 당연히 매일 식단에 들어가야 하고, 김치도 직접 담아 상에 올렸죠... 이 경험으로 대량 조리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게 되어 이때부터 먹는 장사를 할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또 제가 한때 청년몰 예비창업자 교육을 하던 사람이었어요. 이미 외식업 프로세스나 다양한 성공 사례 등의 지식은 진작에 갖추고 있었으니까요.”
◆집밥 먹는 듯한 맛의 비결
「아국오국」의 가장 큰 특징은 ‘집밥’ 느낌이다. 실제로 가게 벽에 붙어있는 손님들의 포스트잇 메모를 읽어보면 “집밥 같아요”, “조미료를 안 쓰나 봐요”, “시원하고 깔끔해요”라는 반응이다.
“MSG를 넣으면 아무래도 끝맛이 느끼해요. 주로 꽃소금, 국간장, 고춧가루, 후춧가루 같은 기본 양념 위주로 써요. 육수는 파, 양파 등 채소를 듬뿍 넣어 우려내고요. 가끔 가쓰오부시(가다랑어포)도 사용하죠. 실은 딱 한 번 조미료를 써본 적 있었는데 국을 해놓고 나서 엄청 후회했어요. 이후로 좋은 재료를 듬뿍 넣어 승부를 내는 쪽입니다.”
‘아침국’은 아침 빈 속에 먹기 좋은 편안한 재료와 맛을 추구하지만, ‘오후국’에는 반드시 고기가 들어간다. 이는 성장기 아이들에게 필요한 단백질을 고려해서다. 또 매일 오더라도 질리지 않도록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를 번갈아 가며 먹을 수 있도록 식단을 짠다. 야채도 듬뿍 들어간다. 맛과 영양 균형 모두를 맞추기 위해서다.
◆적자 없는 운영의 비결
“손님들이 항상 물어보세요. ‘이렇게 해서 남아요?’ 저는 ‘많이 팔면 남는다’고 계속 오시라고 답해요. 하루 평균 50~70인분, 많을 때는 100인분까지 나가고 있어요.”
보통 ‘아침국’은 25~30인분, ‘오후국’은 30~40인분을 준비한다. 인기 메뉴는 오후 2시 30분 즈음 일찍 완판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재료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한 번 더 조리해 저녁까지 영업한다.
이미 이 식당은 3천 원과 5천 원이라는 가격이 공개되어 있어 김지연 사장의 대화 속에서 매출액이 얼마인지 예상할 수 있었다. 결국 「아국오국」의 수익이 유지되려면 효율적인 매입과 재고, 인건비 절감에 달려있다고 여겨졌다. 추측대로였다.
“어젯밤 어느 식자재 마트에 갔더니 얼갈이배추가 한 박스에 7천 원하더라고요. 보통 시세가 9,900원 정도인데... 이런 걸 보게 되면 ‘소고기무국을 해 볼까?’ 생각하게 되죠. 몸 편하자고 거래처 몇 군데 정해놓고 재료를 받는 게 아니라, 발품을 팔아 이 시장, 저 마트 돌아다니면서 좋은 재료를 싸게 들여와요. 몸은 힘들지만 이게 재미예요.”
가장 저렴한 곳에서 그날 필요한 만큼만 구매한다. 매일 장을 보는 ‘무재고 경영’도 비결이다. 다음 날 쓸 재료를 전날 밤에 구입하고, 하루만에 모든 재료를 소진시킨다. 신선도도 지키고 재고 부담도 줄이는 전략이다. 작은 점포이기에 냉장고나 창고 공간도 부족해 이 원칙을 지켜나가는 게 핵심이다.
“고기도 덩어리로 사서 직접 손질해요. 누군가의 손을 빌리면 그만큼 비용이 올라가니까요. 내 몸을 귀찮게 하면 원가를 낮출 수 있어요. 나 편하자고 하면 원가는 올라갈 수밖에 없죠.”
김 사장의 노력과 고생 덕에 「아국오국」의 단골들은 한우가 듬뿍 들어간 소고기무국이나 육개장, 설렁탕을 5천 원이라는 부담 없는 가격으로 먹게 되지만, 가끔 가격 때문에 즐거운 촌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처음 오신 손님 중에 가격만 보고 “소고기무국인데 소고기는 들어가나요?”라고 질문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 그때마다 증명서를 보여주며 “저희는 한우를 사용해서 끓이고 있어요”라고 설명드린다고... 이 때문에 「아국오국」 단골들은 이 가게가 없어지면 안 된다고 응원하고 있다.
◆가치와 수익의 균형을 찾아서
개업 두 달이 지난 10월에 접어들며 「아국오국」은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시작했다. 다만 홀로 분투하는 김 사장의 인건비를 제대로 고려한다면 여전히 빠듯한 수준이다.
“물론 적자 나는 날도 있어요. 그래도 재미있고 즐거워요. 이게 아니어도 저는 다른 일로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여기서 마이너스 나면 다른 데서 번 걸로 메꾸면 되죠.”
가능역 앞 「아국오국」에선 국집 김 사장이지만, 전국 여기저기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축제에서 감독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끔씩 「아국오국」의 문이 하루 정도 닫히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일일 아르바이트로 「아국오국」을 지킨다. 대표적인 건 『구로 G페스티벌』로, 2023년에는 기획과 총감독으로 2024년에도 공연 연출자로 합류해 구로구민을 위한 멋진 가을을 책임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매일 아침 5시 30분이면 「아국오국」의 문을 열어 식사 준비를 하고, 밤늦게는 다음날 국 재료를 사러 다니는 고된 일상이다. 하지만 김 사장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없다.
“우리 애들이 소중한 만큼 남의 아이들도 소중한 거고, 내 가족이 소중하면 남의 가족도 소중한 거잖아요. 먹는 것만큼은 행복하게 먹게 해주고 싶어요.”
이윤보다 가치를, 편리보다 정성을 선택한 김지연 사장의 도전은 5개월 째로 접어들어가고 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정성과 책임감으로 한 끼 한 끼를 만들어가는 ‘착한 장사’가 지역 사회와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속가능하고, 더욱 확산되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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