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겨울, 전라북도 진안군 청년들 사이에서 작은 움직임이 시작됐다. 처음엔 진안에 먼저 귀농귀촌한 선배들을 통해 “청년 귀농귀촌을 위한 행사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던 게 계기가 되었다. 해를 넘겨 2015년이 되어서야 조촐한 행사를 벌였다. 전국에서 귀농귀촌에 관심있는 5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첫 행사는 실험성이 강하다보니 굳이 ‘청년’을 강조하지 않았다. 덕택에 오히려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했던 것이 사람들이 왜 귀농귀촌하고 싶어 하는지, 특히 청년층의 니즈는 무엇인지를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했다. 대도시로 따지면 1개 동의 인구 남짓한 인구 2만 5천 명의 진안군에 사는 청년 입장에서 이렇게 모여든 사람들을 바라보며 큰 의욕을 갖게 되었다. 이듬해부터 청년층으로 초점을 맞추었고, 이것이 ‘진안청년귀농귀촌센터’의 씨앗이 되었다.
“처음에는 300만 원이라는 적은 예산을 지원받아 시작했어요. 저를 포함해 세 명의 청년들이 기획과 운영을 맡았고, 거창한 프로그램 없이 귀농귀촌에 관심있는 청년들이 진안에 모여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것부터 시작했죠.”
■ "청년들에게 농촌은 기회의 땅이다" - 진안청년귀농귀촌센터의 시작
박수우 센터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소박한 시작이었지만, 이들의 활동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청년 귀농귀촌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와 맞물리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름과 달리 ‘진안청년귀농귀촌센터’는 정부기관의 예산지원을 받는 중간지원조직이 아니다. 뜻있는 청년들이 함께하는 임의단체로,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청년들 입장에선 그들을 위한 길잡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주고, 스스로는 중간지원조직 못지않은 책임감을 가지면서도 자율성을 갖기 위해 그리 이름 지었다.
2016년 접어들며 센터는 지원기관으로부터 2천만 원의 예산을 확보해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센터를 중심으로 1년 농사계획과 귀촌에 관한 계획을 잡고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었고, 아예 진안군 구룡리에 논과 밭을 임대해 함께 농사를 지었다.
“기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로운 형태로 운영했어요. 그때그때 공지를 띄우면 멤버로 합류한 전국의 청년들이 진안에 와서 함께 농사를 짓고, 수확한 작물은 다 같이 나눠 가졌죠. 중요한 건 매번 농사가 끝날 때마다 수익과 비용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보여준 거예요. 귀농에 대한 현실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싶었거든요.”
이런 실천적 접근은 성과로 이어졌다. 2천만원 의 예산으로 운영된 2016년 프로그램에는 150여 명이 참여했고, 이 중 4명이 진안에 정착했다. 이중 두 명은 진안에 와서 실제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고, 나머지 둘은 귀촌해 진안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진안군 청년귀농귀촌센터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연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귀농귀촌 희망청년에게 연고가 되어 준 것이다. 센터를 통해 정착한 한 부부의 경우, 처음에는 보다 인구가 많고 생활 인프라가 더 잘 되어 있는 전주나 완주로 갈 것을 고민했지만, 박 센터장과의 인연으로 진안을 선택했다.
“귀농귀촌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옮겨 가는 곳에 아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 거예요. 전혀 모르는 곳으로 가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는 게 정착에 훨씬 도움이 되죠.”
■ 귀농과 귀촌, 분리의 필요성
“귀농과 귀촌은 성격이 전혀 다른데, ‘귀(歸)’자 하나로 묶어서 같은 정책을 펴고 있어요. 이게 오히려 시골 이주를 어렵게 만듭니다. 귀촌하고 싶은데 ‘가면 무조건 농사를 지어야 하나?’ 하고 겁먹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농사를 지으려고 왔는데, 지원기관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으니 다른 일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어 귀농에 흥미를 잃는 경우도 있고요.”
박수우 센터장이 이 일을 시작하던 10년 전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은 귀농과 귀촌 정책의 분리다. 귀농은 농업기술센터 등 전문기관의 지원이 필요한 반면, 귀촌은 지자체 차원의 정착 지원이 중요하다.
“귀촌하시는 분들은 일자리와 주거가 정착의 핵심이에요. 정착 지원금을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단기적인 지원이 아닌 4~5년 장기 계획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귀촌하시는 분들이 지역과 친해지고 일자리와 주거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시행착오를 하는 동안 버틸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일시적으로 큰 지원을 해주려고만 하지 말고, 월 50만 원 정도라도 꾸준히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구소멸을 극복하기 위해 단체장이 의지를 갖고 지원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다면 단체장 임기에 맞춰서라도 적어도 4년은 지속적으로 지원해줘야 해요.”
특히 귀농의 경우, 무조건적인 지원보다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타 지자체의 사례를 보면 인구감소가 너무 심해 청년 귀농 유치에 급급하다보니 땅도 주고, 시설도 주지만, 급격한 지원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때가 있다고 한다. 와서 살다가 떠나버리게 되면 지원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 지속가능한 청년 정착을 위한 제언
“처음부터 ‘창농(創農)’을 하라고 밀어붙이면 안 됩니다. 스마트팜 같은 시설농업도 우선 볼 때는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초기 투자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요. 천 평 규모 스마트팜을 하려면 적어도 6억 원이 필요한데, 자금력이 없는 청년들이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대출만 크게 받아 빚만 갚다가 진이 빠집니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연수생' 개념의 도입이다. 청년 농부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경험 있는 농부 밑에서 인턴 생활을 하세요. 1년 정도 농사를 배우면서 100만 원만 받으세요. 기술과 경험을 배우는 게 중요하니까요. 농사일이라는 게 한 달에 한 번 농사짓는 게 아니잖아요? 갑자기 비가 많이 오면 몸이 먼저 논으로 달려가야 하고... 이런 타이밍을 몸으로 익혀야 해요.”
최저임금이 1만 원 넘는 시대에 박 센터장의 진솔한 말을 오해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의 진의를 알고 보면 월급 100만 원이라는 말은 상징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설령 한 달에 100만 원도 못 받는다 하더라도 절대로 손해 보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장사다. 선배 농부의 어깨 너머로 농사기술을 배우고, 반복되는 작업은 경험치를 높여준다. 춘하추동 기후의 변화에 따른 농법을 파악하려면 아무리 짧아도 1년은 투자해야 한다.
일정한 도제수행을 마치고 창농을 시도할라 치면 선배 농부들은 청년농부의 친척 형님 역할도 해 준다. 농사기술의 전수뿐만 아니라 유용한 정보도 준다. 특히 판로 문제를 해결에도 큰 도움을 준다. 이렇게 따지면 월급 100만 원뿐이 아니라, 경험없이 창농에 도전했다가 수 억 원을 날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
이밖에 농업이 아닌 임업 분야의 가능성도 주목할 만하다.
“진안은 산지가 80%예요. 임업을 하겠다고 하면 더 적은 자본으로도 시작할 수 있어요. 산지의 경우, 땅값이 평당 1만 원, 싼 곳은 3천 원까지도 있어요. 표고버섯이나 고사리 같은 품목으로 노력하면 투자 대비 수익성 면에선 농업에 도전하는 것보다 좋을 수 있죠.”
■ 지방소멸 시대, 청년농부의 가능성
2030년 즈음이면 진안군의 인구가 2만 명 이하로 급감할 것이라 부정적으로 예상하지만 박 센터장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의외로 요즘 젊은이들이 농업에 관심이 많아요. 대도시에서 월급쟁이로 살다가 ‘월급 받아 이것저것 다 내고 나니 남는 게 없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죠. 그러다 고향에 농지가 있다는 걸 떠올리면서 귀농을 고민하시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요즘의 젊은 세대는 과거와 달리 화이트칼라가 최고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현실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진안군 청년귀농귀촌센터의 활동 중 한 가지에 대해 매우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다.
“‘청년농부’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게 앞서 설명한 우리의 활동을 통해서예요. 2015년 처음 활동할 때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그전에는 이런 표현이 없었어요. ‘청년농부’라는 말 덕분에 이제는 청년이 농사짓는 게 자연스러워졌죠.”
다만 최근 들어 청년 귀농귀촌이 주춤해진 것은 아쉬운 일이다. 뜻밖에도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이 청년 귀농귀촌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어 버렸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거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을 지원하는 사업들이 많아지면서 청년들 사이에서 굳이 시골로 내려올 이유를 못 느끼게 된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를 정치의 영역으로도 이끌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진안군수에 출마한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진안의 많은 곳을 돌아보면서 인구소멸 위기를 실감했다. 통계상으로는 진안군의 청년 인구가 6~7천 명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발로 뛰어보니 청년들은 없었다. 진안군에 주소만 둔 채 외지에서 사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로 개별 지자체 차원을 넘어선 범국가적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지역에서의 작은 성공사례들이 쌓여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중앙정부에서부터 확실한 정책을 만들어 내려주어야 합니다. 서울·경기 인구가 이미 총인구의 50%를 훨씬 넘었어요. 결국 어떻게든 수도권 과밀화 문제는 해결해야 하고, 그러려면 중앙 정부의 정책 차원에서 청년들의 지방 이주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화학을 전공하고 해수담수화 연구를 하다 30대에 진안으로 온 그의 삶부터가 하나의 귀농 사례다. 10년 전 청년들과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시작된 작은 실험은 이제 더 큰 과제를 향하고 있다. 청년농부의 가능성은 현재진행형이다.